밑줄 긋고 싶은데 펜은 어디에 - 네 번째
이 책은 1948년 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 출간되기 하루 전 다자이 오사무는 내연녀와 함께 투신자살하여 서른아홉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꽤나 자전적인, 그리고 유서와도 같은 소설입니다.
국내의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출간하였는데 그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일전에 A출판사 출간본을 읽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이후 요조의 책을 읽다가 다시 한번 <인간실격>을 찾아 읽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서관에 가서 서너 가지 판본을 살펴본 다음에, 마음에 드는 책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더디 세계문학에서 나온 얇은 책입니다.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430매 정도의 중편이랄까 경장편 소설이지만 정독해서 읽으니 꼬박 하루가 걸렸던 책입니다. 그래도 독서의 즐거움이 컸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깁니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来ました。」
恥の多い = 부끄러움이 많은
生涯を送って来ました =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더디 세계문학, 이은정 옮김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느낌이 있는 책, 전미옥 옮김
"참으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문학동네, 김난주 옮김
*
어느 날 저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절 데리고 동묘로 가던 기차 안에서 객차 통로에 있는 가래통에 오줌을 누고 만 실수담(그러나 그때 저는 가래통인 줄 모르고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철없는 아이로 가장해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을 참으로 슬프게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호소한다는 그 수단에는 조금의 기대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께 호소해도, 어머니께 호소해도, 순경에게 호소해도, 정부에게 호소해도, 결국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의, 목소리 큰 사람의 변명만 들어줄 게 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배우로서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소는 고향 극장으로, 게다가 친인척 모두가 앉아 있는 곳세서라면 아무리 명배우라도 연기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고향에서 연기해 왔습니다. 게다가 꽤 성공했습니다. 그 정도로 보통내기가 아닌 놈이 타향에서 연기에 실패할 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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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바보 동급생 한 명이 유일하게 오다 요조의 거짓 연기를 알아차리는데)
"거짓, 부렁이." 「嘘つき、ペテン師。」
嘘つき = 거짓말쟁이
ペテン師 = 사기꾼, 협잡꾼 (한국어 번역에서는 “부렁이”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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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끌어당겼다가 밀어내고, 또 남이 있는 곳에서는 저를 업신여기고 매정하게 굴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꽉 껴안고, 죽은 듯 깊이 잠자고.
여자는 잠을 자기 위해 사는 게 아닐까. 그 외에도 여자에 대한 다양한 관찰을 유년 시절부터 해왔지만 동일한 인류인 듯하면서도 남자와는 전혀 다른 생물이라는 느낌으로, 그래서 이해 불가능하고 방심할 수 없는 생물인 그들은 기묘하게 저를 보살폈습니다.
편지라니 속이 너무 빤히 다 들여다보인는구먼. 글자로 사람 얼굴이라도 그리면서 낙서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보여줘 봐."
죽어도 보기 싫으면서도 그렇게 말하자, 어머, 싫어, 어머머, 싫다고, 라며 기뻐하는 꼴이라니. 참으로 보기 흉하고 환멸을 느꼈습니다.
……
"날 친누나라고 생각해."
그 꼴값에 치를 떨면서도 저는, "그럴게요"라고 우수에 찬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어쨌든 화를 내는 것은 무섭다.
*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때 초밥이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 이름도 또 얼굴 생김새조차 기억에서 멀어진 지금도 그 초밥집 아저씨의 얼굴만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때 초밥이 상당히 맛이 없었고 추위와 고통에 떨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 남이 맛있는 초밥 가게라며 절 데려가서 사줘도 맛있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초밥이 너무 큽니다.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로 꽉 쥐어줄 수 없을까 늘 생각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함 조차도 두려워합니다. 솜으로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제 눈앞에서 호리키에게 맹렬한 키스를 당할 쓰네코가 가엽게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리키에게 더럽혀진 쓰네코는 나와 헤어질 것이다. 게다가 나도 쓰네코를 말릴 정도로 긍정적인 열정은 없다. 아아, 그래, 이걸로 끝이구나,라고 쓰네코의 불행에 한순간 깜짝 놀랐지만 바로 저는 순순히 포기하고 호리키와 쓰네코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실실 웃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실로 생각지도 못한, 더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안 할래!"
호리키는 입을 비틀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궁상맞은 여자한테는……."
팔짱을 끼고 불쾌하다는 듯 쓰네코를 노려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술 줘. 돈은 없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쓰네코에게 말했습니다. 술통에 빠지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른바 속물이라는 인간의 눈에도 쓰네코는 취객이 키스할 정도의 가치도 없는 그저 초라하고 궁상스러운 여자였습니다.
*
등 뒤의 높은 창에서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이고 기러기들이 '여자(女)'라는 글자 모양을 만들며 날고 있었습니다.
*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제부터."
……
넙치는 그때 그저 이렇게 말하면 좋았습니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일단 4월부터 아무 학교나 들어가십시오. 당신의 생활비는 학교에 들어가면 고향에서 더 보내준다고 합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만, 사실은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랬다는 저도 그 말에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넙치가 불필요하게 돌려 말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묘하게 꼬여서 제 인생도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성실하게 상담할 생각이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
"어떻습니까? 뭔가, 장래희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도대체 사람 한 사람 건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모르지요."
"죄송합니다."
"진짜 걱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의 고향집에 당신을 보살핀다고 한 이상 당신이 이도저도 아닌 마음으로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갱생의 길을 가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장래의 계획에 대해 제게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해 온다면 저도 얼마든지 상담을 해줄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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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과학적 미신'에 협박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몇 십만 개의 세균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일 겁니다. 그와 동시에 그 존재를 완전히 묵살하면 저와 전혀 관련이 없어지거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과학적 유령'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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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 그래서 큰 슬픔이 뒤따라온다 해도 좋다. 폭풍같이 큰 기쁨을 평생 한 번이라도 좋다. 처녀성의 아름다움은, 바보 시인의 달콤한 감상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역시 이 세상에 살아서 존재하는구나. 결혼해서 봄이 되면 둘이서 자전거로 아오바의 폭포를 보러 가자고, 그 자리에서 결심하고 이른바 '한판승부'로 그 꽃을 훔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결국 결혼했고 그래서 얻은 기쁨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 후 찾아온 슬픔은 처참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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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괴물 새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찾아와서 기억의 상처를 부리로 후벼 팠습니다. 순식간에 과거의 수치와 죄의 기억이 눈앞에서 제멋대로 선명하게 전개되더니 으악 하고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돈이 좀 남아서 그 돈으로 요시코에게 소주를 사 오라고 해서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가서 스미다가와 강에서 가끔 희미하게 불어오는 시궁창 냄새나는 바람을 맞으며 진짜 구질구질한 피서 겸 술자리를 벌였습니다.
* * *
작가 자신의 지독한 자기혐오와 비관적인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승화하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정말 표현력도 좋고 문장력이 좋습니다. 번역본이어서 작가가 쓴 일본어로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첫 번째 수기, 두 번째 수기, 세 번째 수기의 첫 문장만 봐도. 시기적절하게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도 아마 교과서적인 분류에 따르면 일본의 '무뢰파' 소설가 중 한명일 것입니다.
<일본 무뢰파 단편소설집>이라는 책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후지 백경>, <비용의 아내>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는 이 책에서 다나까 히데미쓰의 <여우>라는 소설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도 비슷하고 스탠드바니 유곽을 오가는 퇴폐적인 소설가, 시인들의 이야기가 많았던 시절이지요. 아마도 무뢰한 같은 작가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반듯하게만 살아야 하는 재미없는 요즘 세상에 자기 파멸적인 이런 작가의 글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