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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정우 Aug 01. 2021

포옹의 일상화, 그 따스함에 대하여

"할로!“


저 멀리 보이는 친구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다가온다. 그러면 나도 얼른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안길 준비를 한다. 평균 신장 170 센티미터에 달하는 독일 친구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란 나의 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친구들의 품 안에 포옥 안긴다. 가슴께에 얼굴까지 파묻혀 잠깐 동안 두 팔은 길을 잃고 버둥대다, 간신히 친구의 등에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놓고 토닥토닥한다. 그런 다음 얼굴을 마주 보고 „잘 지냈어? 요즘 좀 어때?“라는 인사말까지 덧붙이면 우리들의 '만남 제1장‘을 여는 의식은 끝이 난다.

 

독일에 온 후로 가장 생경했던 것은 음식도 언어도 아닌 '인사‘였다. 눈을 마주치면 손을 흔드는 한국식 인사에 익숙했던 나는 독일인들의 인사 예절이 어딘지 조금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상황과 관계에 따라 독일에도 여러 가지 인사법이 존재하지만, 보통 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만나고 헤어질 때 포옹을 한다. 길 위의 이곳저곳에서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리는 모습, 감싸 안은 두 팔로 서로의 등등 톡톡 두드리는 모습은 내게 가장 익숙한 독일의 풍경이다. 


포옹의 세기가 곧 서로에 대한 그리움 혹은 아쉬움의 크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언젠가 아주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 그가 나를 으스러지도록 두 팔로 꽈악 감싸 안아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누군가 내게 독일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냐고 물으면, 아마도 그때의 그 포근한 품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친구들과 헤어질 때 하는 포옹은 마음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며 괜스레 서로를 껴안고 몸을 양쪽으로 흔들흔들 뒤뚱거리거나 품에 안겨 곯아떨어진 척을 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아이가 응석 부리 듯 축 늘어지기도 한다. 미련이 남는 아쉬운 순간을 포옹의 무게로 갈음하는 것이다. 내 무거운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오히려 어렵거나 불편한 관계에 더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정작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질 땐 알은체에 지나지 않는 아주 최소한의 행위만 했던 것 같다. '네가 거기 있음을 내가 지금 확인했다.‘ 정도의 수준이랄까. 만나기 바로 직전까지도 메신저 앱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얼굴을 보고 본격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뭔가 낯간지럽기고 인위적이지 않나. 언제 만나도 바로 몇 시간 전에 본 것처럼 늘 익숙하고 편안한 친구들과 갖추는 '예‘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이곳에서 일상적인 인사로 통용되는 포옹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잘 들어갔냐고 연락도 할 거고, 며칠 후에 뭐하고 지내냐는 아주 가벼운 안부 문자도 나누게 될 텐데 왜 이렇게까지 거창한 의식을 치르는지! 적응기에는 왠지 모르게 민망하고 어색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쭈뼛거리던 기억이 한가득이다. 마치 큰 일을 앞둔 드라마 속 주인공이 "한 번 안아보자! “하고 비장하게 팔을 벌리는, 그런 낯부끄러운 장면이 연상되어서다. 언젠가 독일 친구와 이 인사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물었다. 


„며칠, 뭐 빠르면 다음 날 다시 볼 건데 그렇게 인사하는 게 좀 어색하고 민망하지 않아?“ 

친구는 아주 간단하다는 듯 답했다. „그냥, 반갑잖아!“


포옹을 안 하는 것이 되레 어색해질 만큼 시간이 지난 지금, 이 부담스럽고도 특별한 의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얼마나 진실되게 만드는지 이제는 안다. 만날 땐 반가움을, 헤어질 땐 아쉬움을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충분히 전달하는 것. 그 거창한 의식이 마치 꼭꼭 눌러 담은 마음을 봉하고 펼치는 첫 시작점인 편지의 인장처럼 느껴졌다. 발신자의 다정함과 수신자의 설렘이 오롯이 뭉쳐있는 결정체, 이 모든 것들을 꼭꼭 눌러 담은 단 하나의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포옹일 것이다.


우리가 친밀한 사람과 신체적인 접촉을 할 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일명 '포옹 호르몬‘인데,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를 구하는 아이언맨은 못 되더라도, 소중한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 그리운 이들을 만나면, 찰나의 민망함은 용감하게 견디어내고 기꺼이 몸이 으스러지도록 꽉 껴안아 주어야겠다. 


그냥, 반가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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