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병원을 좋아하는 이유
둘째 방톨이 태어나고 조리원 들어가자마자 뉴스에서 처음 들었던 '코로나19 환자 발생'!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 외에는 마스크에 가려져 입모양을 볼 수 없는 사람들과 지냈다.
그때는 코로나환자 발생이 많은 도시는 격리되던 심각한 상황이었고, 코로나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는 어릴 때부터 외부활동도 많이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나마 언어자극을 많이 시켜줘야 할 주양육자인 나는 집에서 아이에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니, 언론에서 말하던 '코로나로 인해 영유아 언어발달 지연'이 바로 내 아들 방톨에게 나타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둘째 방톨이 생후 18개월, 가정 어린이집에 처음 들어갈 때가 되자 나는 걱정에 잠 못 이루기 시작했다. 선택사항 없이 그 당시 직장을 다녔던 나는 복직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기관에 맡겨야만 했다.
첫째 베라가 첫 어린이집에 보낼 때에는 딸(대부분 아들보다는 딸이 언어가 빠르다고 함)이고 코로나 시기가 아니여서인지 말이 빨리 트여서 언어소통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방톨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엄마, 아빠 두 단어였다.
다행히 방톨은 나의 많은 걱정과 달리 어린이집에 아주 잘 적응했다. 그리고 비약적인 언어 폭풍성장이 일어났다.
"방톨아, 양치해야지."
아침식사 후 다람쥐처럼 움직이며 노는 방톨에게 양치질 이야기를 하면
"알았다고요."
라며 약간은 엄마를 열받게 하는 말투를 구사하는 능력(?)까지 획득했다.
가정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집에서 조잘조잘 첫째와 같이 노는 방톨의 말소리로 가득 찼다.
어느 날은 책을 자세히 보면서 읽길래 방톨이 벌써 글씨를 아는가 싶어서 놀라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누나가 오늘 우리 모두 키즈카페 간다고 했다. 사탕과 까까를 먹는다고 했다."
"풉. 방톨아 너 책 거꾸로 들고 뭐라고 하는 거야? "
"나 책 봐. 웃지 마 엄마!"
"그래? 알았어."
'네 마음의 소리를 읽는 거 같은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그러던 방톨이 결국 코로나를 앓았다. 그 후 폐렴, 비염 등 합병증으로 병원을 자주 다녔다. 그나마 컨디션 좋게 병원을 간 어느 날, 방톨은 이제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익숙하게 잘 따랐다.
"아 하고 입 벌려 보자."
"아~"
"코도 보고, 배도 한 번 봐볼까?"
"여기요."
코랑 배도 순순히 내어준다.
"형님 되려고 말 잘 듣는구나."
의사 선생님의 칭찬에 방톨은 씩씩하게 대답까지 한다.
"응!"
방톨이 진료가 끝나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진료실에서 내 손을 잡고 나가면서 손 흔들며 더 씩씩하게 말한다.
"다음에 또 올게요! 안뇽~!"
예측불허의 말에 나는 순간 '헉'하고 숨을 참았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는 빵 웃음이 터져 버렸다.
'다시 또 올 곳을 또 온다고 해야지.'
나는 이마에 살짝 땀이 나는 것을 느끼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서둘러 방톨을 데리고 나왔다.
"방톨아."
"엄마! 빨리 약국 가야지!"
방톨에게 한 마디 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가 병원 건물 아래 약국으로 내 손을 잡아당기며 재촉하는 바람에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약국으로 쌩 들어간 방톨은 내가 처방전을 내자마자, 휙 방향을 튼다.
그리고 제2의 마트 장난감코너를 방불케 하는 여러 가지 물품 진열대로 어느새 가 있다. 다시 내 앞으로 온 방톨의 양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로봇 캐릭터의 비타민C였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반짝이는 눈과 오늘 본 것 중에 가장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엄마. 나 이거 사줘~"
"아.."
집에서도 잘 안 보여준 방톨의 세상 무해한 환한 웃음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깨달았다.
너의 진짜 목적이 이거였구나.
병원을 또 오고 싶은 이유가.
방톨의 언어발달 지연을 고민하던 과거의 내가 무색하리만큼 자란 방톨이였다. 이제는 아이 말에 숨은 생각까지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아이에 대한 발달 걱정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라더니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방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처방받은 약과 그래도 건강에 좋은 거라며 방톨의 비타민C를 함께 구매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서 뽀얀 얼굴에 웃음이 방실거리는 방톨.
방톨의 따뜻하고 조그마한 고사리 손을 잡고 약국 문을 나선다. 아이의 손의 온기가 맞잡은 내 손을 통해 간질간질 마음까지 퍼져 왔다.
아프지 말고.. 아들..
병원은 다음에 또 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