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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밤 Oct 31. 2024

공짜로 선물 받는 법

캐치 ㅇㅇ핑이 그렇게 갖고 싶니?

"으아아 앙! 꾸르핑(?)이 없어졌어!!"

베라가 7세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린이집 하원 후 내가 간식을 준비하는 동안 어김없이 베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또 시작이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남편 과니와 나는 집에서는 TV를 아이에게 잘 안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베라가 하원 후 잠깐 친정부모님 댁에 있는 동안 TV를 통해 주기적으로 접한 후로 베라는 '캐치 ㅇㅇ핑' 시리즈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온갖 핑 시리즈의 피규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 등 온갖 찬스를 이용해서...


 그렇게 해서 모아진 피규어는 어느새 30개가 넘어가고 있었고 개수가 많다 보니 완벽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놀다가 피규어 하나가 어디론가 굴러들어가거나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하면서 놀다가 떨어뜨리는 등 베라는 툭하면 피규어를 잃어버렸다.

 그러다가 장난감을 정리하려 개수를 세다가 없는 피규어를 확인하고 대성통곡을 하며 웃는 게 어느 사이에 일과가 되어 버렸다.


 "여기 있네."

하고 내가 금방 찾아서 주면 울음을 그쳤지만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 안 보이면 울음이 멈출 때까지 진땀을 흘리며 달래야 했다. 그날은 아무리 찾아도 꾸르핑(?)이 나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울지 마. 베라야. 엄마랑 다시 한번 찾아보자."


나는 우는 베라를 달래며 결심했다.

'아이고. 이렇게 우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차라리 없는 게.. 더 이상 사주지 않는 게 낫겠어."


그날은 베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울음을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며칠 뒤

"엄마, 새로운 방글핑이 나왔대. 사 줘~"

"안 돼. 피규어 많이 있잖아."

"힝. 나 갖고 싶은데..."

"안 돼. 엄마 피규어 살 돈 없어."


아이에게 피규어를 안 사는 이유를 좀 더 현명하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단호하게 말한다고 급하게 나온 말이 현금문제라니..


나의 말에 베라는 잠시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서랍의 색종이를 꺼내 열심히 끄적이기 시작했다.

"베라야, 뭐 하는 거야?"

"편지 써. 엄마."

"응?"


나를 보며 말하는 베라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엄마 나 정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공짜로 선물 받는 방법이 있어!"

"응? 뭔데?"

"바로바로 산타할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하는 거야! 미리 편지 쓰려고!"

"잉?"


잔뜩 신나서 말하는 베라의 말에 순간적으로 내 머리에서 뎅뎅뎅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게 무슨 소리라니.


"나 정말 똑똑하지? 엄마? 엄마는 돈 걱정 안 해도 돼. 히히"


자신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에 한 껏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베라.

그리고 다 쓴 편지를 나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방문에 붙여놓았다.



= 산타 하라버쥐 방구핑 꼭 크리스마수 선물로 사주새요         - 베라 -  =



나는 편지를 읽고 살짝 식은땀이 나는 걸 느끼며 베라에게 애써 웃어 보였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꼭 사주시겠지?"


한껏 진지해져서 나에게 기대에 가득 차서 묻는 아이의 눈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


신이 나서 들떠있는 베라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직 산타를 믿고, 크리스마스를 벌써부터 기다리며 기대에 가득 찬 아이의 모습.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옆집 친구가 받은 것과 내가 받은 차이 나는 크리스마스선물을 비교하고,

한 밤중에 몰래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 머리맡에 놓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날.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벼락 맞은 것 같이 깨달은 나의 동심이 슬프게 파괴되던 날이.


이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기도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젠가는 너도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래. 산타엄마가 사줄게. 너의 동심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지켜줘야지.


베라의 행복한 기대로 가득 찬 보석 같은 눈과 빛나는 웃음.

아이의 산타할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고이 내 눈과 마음에 담았다.



'근데. 베라야 설마 다 알고 일부러.. 는 아니겠지? '

하지만 장난스러운 아이의 눈빛에 한 점의 의혹이 고개를 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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