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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밤 Oct 27. 2024

너무 무거운 아이들과 인생4컷

포토부스 속에



 오랜만에 여름휴가로 2박 3일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은 여행 가기 전부터 들떠서 여행 날이 언제 오는지 매일매일 손꼽아 기다렸고.

나도 틈틈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 위주로 여행일정을 짜 놓았다.


그런데 날씨신이 우리를 저버렸다.

여행 가는 첫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2박 3일 마지막 여행날까지 비가 주룩주룩.

여행일정을 최대한 간소하게 줄여서 실내 위주로 다녔는데 마지막날까지 비라니.


리조트 창문 바깥에 잘 꾸며졌을 정원수들도 우중충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처럼 흐리고 침울해 보였다.


"오늘도 비 내리네?"

내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하자 첫째 베라가 툴툴거렸다.

"이번 여행 재미없어!"

"엄마 심심해~"

둘째 방톨은 내 품에 파고든다. 남편은 피곤한지 아무 말이 없다. 뭔가 이 분위기를 깨야겠다는 의무감에 나는 외쳤다.


"일단 아침밥 먹고 오늘 여행 마지막날이니까 리조트 내부 구경해 보자. 오락실 같은 것도 있는 거 같던데?"

애써 텐션을 올리려 말했지만 저혈압인 나도 아침부터 축축 쳐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오락실이라는 말에 의도대로 베라의 눈이 반짝이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침식사 후 리조트 내부 여기저기 구경 다니던 우리는 오락실에서 오락게임도 신나게 부숴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베라가 가장 신나 했다.

그리고  또 배회하다가 마지막에 시선이 머무른 곳은 실내에 있는 인생4컷 포토부스.


"사진 찍어서 우리 여행 기념할까?"

"별로일 거 같은데."


나의 말에 툴툴거리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베라와 방톨이 재미있겠다며 끌고 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토부스 안으로 끌려갔다.


오랜만에 들어온 포토부스였지만 나는 차근차근 원하는 심플한 디자인과 다른 그림으로 설정을 마쳤다.

남편은 대부분 나의 의견을 주로 존중해 주는 편이어서 내가 원하는 쪽으로 빠르게 고를 수 있었다.


"자! 찍습니다. 10, 9, 8 , 7."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카메라가 켜지고 화면을 제대로 응시한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어! 화면에 얘들 안 보이고 우리 둘만 보이네!"

"헉. 아이들 발판이 없어!"

"엄마 나 화면 안 보여!"

"나도! 나도!"


베라와 방톨은 화면에 얼굴이 나오게 하기 위해 점프를 시작했다. 물론 작디작은  아이들 키로는 아무리 점프를 해도 화면에 머리끝도 비칠 턱도 없었다.


"6, 5, 4, 3!"

기계음의 카운트다운이 우리를 독촉했다. 남편 과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쳤다.

"한 명씩 얘들 들어 올려!"

그렇게 과니는 첫째 베라를, 나는 둘째 방톨을 들어 올렸고.


“찍는다 찍어! 웃어 웃어!”

"2, 1! 찰칵! 찰칵!"


아이들을 앞에서 안을 때와 달리 앞에 얼굴이 보이게 뒤에서 들어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자세도 많이 불편했다.

반면 아이들은 싱글벙글 재미있어하며 신났다.


"아! 힘들어!"

나보다 힘이 센 과니가 베라의 무게에 힘들어했고.

"아. 아직 7장 더 남았어. 버텨!"

나는 나도 힘든 와중에 7장을 더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응원 아닌 응원을  했다.

팔이 계속 부들부들, 바들바들 떨렸다.


"10,9,8,7,6,5,4,3,2,1 찰칵찰칵"   X 7


등에 땀이 보송보송 나고 팔에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사진 촬영 설정 시 컷을 '다 다르게' 설정을 한 과거의 내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엄청 미워질 때였다.


인고의 나머지 7장의 사진 촬영이 끝났고.

저절로 끙 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내려놓았다.

8장의 사진 중 잘 나온 4장의 사진을 힘이 풀려 떨리는 손으로 추렸다.


"엄마 사진 촬영하는 거 너무 재미있어! 다음에 또 하자!"

"나도 나도!"

베라와 방톨의 말에 나는..


"응?......"  

대답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땀이 흥건한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삐뚤어진 웃음을 지었다.

“여행 추억 제대로 남겼네. “

과니가 말했다.


부스 하단에 출력된 포토사진은 정말 힘들었지만 만족스럽게 잘 나왔다.


"힘든 내색 없이 잘 나왔네."

남편의 감탄 어린 말에 나도 응수했다.

"그러게!"


나는 아직 남아있는 묵직한 팔 저림으로 좀 전 부스 안에서 있었던 짧은 순간의 극기훈련(?) 여파를 아직도 느끼고 있었다.


고통 후의 빛나는 결과물이라니.

하아.. 진짜 인생 알려주는 4컷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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