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밤 Nov 14. 2024

앞니가 이렇게(?) 올라온다고? 1

딸의 첫 발치 기록

딸 베라가 7세경 아랫니 중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림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다. 나는 성장기 아이의 발치 시작이려니 생각했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베라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어릴 적 나의 발치 기억은 단순했다.

앞니부터 이가 하나씩 차례대로 흔들렸다. 순서에 이변은 없었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부모님은 나에게 깨끗한 손으로 수시로 이빨을 좌우로 흔들어서 더 흔들리게 만들라고 하셨다. 겁이 많았던 나는 이를 더 흔들리게 힘을 줄 때마다 느껴지는 아픔에 엄살을 떨곤 했고...


"많이 안 흔들리면 치과 가서 빼야 해. “


엄마의 엄포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열심히 손에 힘을 줘서 이를 살살 괴롭히며 흔들곤 했다.


그러다 정말 빠질 듯이 이가 흔들리면 아버지가 집에서 흰 실로 뺄 이를 체포하듯 묶으시곤 팽팽하게 잡아당기셨다.

그러면 그 순간 나의 두근두근 심장소리는 긴장감으로 최고조가 되었다.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아버지는 나의 이마를 탁 소리와 함께 손바닥으로 내리치셨고.

나는 순간 이마의 충격(절대 아픈 건 아니었다)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입 안의 시원해진 느낌에 눈을  떴다.


아버지 손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하얀 조각.

처음 본 빠진 이는 신기하기도 하고 묘했다. 겉으로 드러난 둥근 모양의 이가 다가 아니라며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뿌리가 보였다. 마치 숨겨져 있던 다듬어지지 않은 내 모난 성질처럼.

이가 빠진 곳은 시원하면서도 얼얼했다.  입가에 묻은 것을 손으로 닦아 보면 보기만 해도 겁나는 피가 묻어 나왔고. 그렇게 빠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시일이 조금 지나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해주는 좀 더 크고 새로운 이가 올라왔었다.

앞니, 송곳니, 어금니 등등 빠지는 이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었지만 이 루틴은 변함이 없었는데...


나의 딸 베라는...



 그날따라 첫째 베라가 유독 더 식사시간이 길었다. 브로콜리, 치킨, 숙주나물 등 특별히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식단이었는데도 말이다. 시계를 보니 밥 차려준지 벌써 1시간이 다 되어갔다.


"좀 빨리 먹자. 베라야!"

내가 못 참고 독촉하자 베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 먹을 때 입 안이 따끔거려서 빨리 못 먹겠어."

"어디? 봐봐."


아이가 먹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건 아닌가 살짝 의구심을 가지며 베라의 입 안을 봤다. 베라가 가리키는 곳은 3주 전쯤부터 흔들린다고 했던 아래 두 개의 앞니 안쪽 잇몸이었다.


3주 전 앞니 두 개가 동시에 흔들렸지만 하나가 더 많이 흔들려서 순차적으로 빠질 거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부어있는 잇몸 안쪽에서 희미한 하얀 점이 두 개가 보였다!

헉! 이 올라오는 거 같은데!


"베라야! 빨리 치과 가자!"

"엄마는 가지 마~나랑 놀아."


베라보다 먼저 밥을 다 먹고 놀고 있던 둘째 방톨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나의 다리에 매달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 과니가 다시 베라의 잇몸을 보더니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는지 직접 가겠다고 자처했다.


"내가 베라 데리고 치과 갔다 올게. 자기는 방톨이 보고 있어."

"알았어."


내가 직접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집에서 방톨을 케어하기로 했다.


급하게 병원을 향하는 베라와 남편을 배웅하고, 방톨과는 웃는 낯으로 자동차 놀이를 했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은 초조함으로 가득해져서 놀이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베라와 남편이 언제 돌아오나 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부녀가 돌아오자마자 나는 베라 먼저 살펴봤다. 동생 방톨과 희희낙락하며 들어오는 베라의 입 안 앞니가 그대로 보였다. 궁금함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응? 아무것도 안 하고 왔어? 의사가 뭐래?"

"지금 이가 많이 안 흔들려서 2주 뒤에 오래."


남편 과니의 말에 나는 황당함에 어이가 없어졌다.

"잉? 이가 지금 안쪽으로 이상하게 나오려고 하는 거 같은데 그때 가면 늦지 않아?"

나는 마음이 더 초조해지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몰라. 2주 뒤에 오라는데."


의사의 말을 맹신하는 듯한 남편의 말에도 나는 이해가 안 되고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덧니로 나오면 어떡하려고!"

"의사가 이미 이가 나오는 방향이 틀어져 있으면 유치를 뺀다고 해도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 나중에 교정하든가 해야 한대."


남편의 말에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딸의 처음 나오는 앞니가 이상하게 삐뚤게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으면 바로 인상을 결정하는 앞니는 평생 사용하는 영구치인데..


조금 빨리 알아차렸으면 덧니로 나오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미리 신경 쓰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미워졌다. 깊은 후회와 아이가 이가 삐뚤게 나오는 게 내 탓인 거 같은 자책감이 들었다.


다음 날은 주말이 이어졌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있는 느낌에 나는 아이를 계속 주시했다.


그렇게 이틀 후.

"엄마 입 안이 따끔거리고 이상해."

눈물을 글썽이며 베라가 외쳤다. 나는 안 좋은 예감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봐봐."


아래 앞니 안쪽 잇몸에서 선명하게 하얀 이 두 개가 머리를 내밀고 베라의 생살을 뚫고 까꿍하고 올라왔다. 나오지 말아야 할 곳을 뚫고 성격 급하게 이가 나왔으니.. 보기만 해도 아이의 아픔이 느껴졌다.


귀엽고 가지런한 유치가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잇몸 안쪽에 난 영구치 머리 두 개는 도깨비 뿔처럼 정말 기이했다.


 나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에 마음이 속상해져서 나 스스로에게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틀 전에 치과에 갔을 때 뺐어야 했는데!


"이 올라왔어! 당장 병원 가자!"

"무서워. 엄마. 으앙!"

아이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 채 베라의 울음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나의 딸 베라의 첫 발치는 나의 어릴 적 발치경험과는 이렇게 다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 2탄으로 이어집니다.      -




이전 13화 다음에 또 오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