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키가 안 크는 이유
"엄마 배불러. 그만 먹을래."
통보하듯이 말하며 식탁에서 내려가는 아들 방톨이. 식판을 보니 밥은 한 숟가락을 먹고 반찬도 자기가 좋아하는 버섯반찬만 다 먹은 상태였다.
나는 그런 방톨을 다시 불러 세웠다.
"밥 반만 먹고 내려가."
"배부른데..."
투덜대며 식탁에 다시 앉는 방톨을 보며 나는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잔소리를 애써 삼켰다. 식사시간마다 늘 되풀이되는 상황이었다. 밥 먹이는 시간은 늘 거의 1시간이 걸렸다.
밥을 잘 먹이려고 육아서에 나오는 방법을 따라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아이가 안 먹는다고 하면 아예 식판을 치워버리기.
시간제한을 둬서 제한시간을 넘기면 아이가 얼마나 먹었던지 간에 무조건 치워버리다든가.
알록달록한 식판을 사용해 보기.
하지만 결국에는 늘 원점으로 되돌아왔고. 나는 무정하게 점점 말라가는 아이를 방치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첫째 베라를 키울 때의 경험이 나를 첫째 키울 때보다는 덜 초조하게 만들었다.
베라도 잘 안 먹는 아이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말랐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전보다는 잘 먹게 되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방톨이 발달검사 결과지가 집으로 왔다.
방톨은 키, 몸무게가 하위 30프로도 안 되었고 유치원 안에서 아이들 중에서는 거의 꼴찌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수치로 접하고 보니 속상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
방톨은 식탁에 앉아서 밥은 제대로 안 먹고 느타리버섯 하나를 입에 물고 장난을 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엄마 이것 봐. 나 나팔 불어. 뿌뿌"
밥도 그대 로고 반찬은 헤집어 놓아서 식판 주변이 정신없었다.
"방톨아! 장난 그만! 밥 좀 많이 먹자!"
목소리가 다른 때보다 높자, 아이가 눈치를 보더니 장난을 멈췄다. 하지만 여전히 젓가락으로 반찬을 휘젓기만 할 뿐 입에 들어가는 건 거의 없었다.
다른 때보다 나는 아이 발달결과 평가지를 보고 난 후의 답답한 마음에 더 잔소리가 흘러나왔다.
"밥 잘 먹어야 키도 크고 튼튼해지지! 오늘 유치원에서 방톨이 키랑 몸무게가 나왔는데 너무 낮게 나왔어."
나의 말에 방톨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엄마!"
"응?"
"나 키 많이 크면 엄마가 나 안기 힘들잖아!"
"뭐라고? 아니야! 너 키 커도 엄마 번쩍 안을 수 있어!"
아이의 말에 순간 내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어났다.
방톨이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 올릴 때 내가 무심코 '아이고 무거워.' 하며 끙 소리를 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이 아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걸까.
"내가 엄마 힘들까 봐 키 안 크는 거야."
당당하게 나를 보며 말하며 반찬을 끼적이는 방톨.
'그래서 네가 키를 안 키운단 거니.'
나는 본전도 못 찾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점점 사용하는 말발이 늘면서 점점 애늙은이 같아지는 아들이었다.
며칠 후. 유치원에서 하원 후
"엄마, 나 다리 아파. 안아 줘."
그날은 유치원에서 체육수업이 있던 날이어서 피곤한지 나에게 방톨이 매달렸다. 다른 때와 같으면 조금만 더 걷자면서 달랬겠지만.
"알았어."
나는 방톨을 번쩍 안아 올렸다. 힘든 표정도 끙 소리도 참았다. 지난 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방톨아. 엄마는 방톨이 키가 많이 커도 번쩍 안을 수 있어. 그러니까 밥 잘 먹고 튼튼하게 자라야 해."
나의 말에 웃으며 큰 소리로 외치는 방톨이였다.
"응! 헤헤"
방톨이 따뜻하게 내 품에 더 폭 안겨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며 운동을 좀 더 해서 몸의 근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면야 이 정도 무게쯤이야.
아들. 덕분에 엄마도 튼실해지겠어!
귓가에 방톨의 깃털 같은 작은 웃음소리가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