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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기술, 그리고 달과 6펜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리고 상위 1%가 돼라.

by 김열매


처음 그를 만난 건 15년 전,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조금 전이었을게다.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뭔지도 몰랐을 때, 괜히 멋있어 보이는데 분석하고 글을 쓰고 잘만 하면 돈도 많이 준다길래 겁도 없이 여의도로 들어와 매일 깨지고 매일 새벽별을 보던 시절이었다. 건축공학을 전공해 학부 때는 아예 주식의 주자도 몰랐던 나는 노가다를 탈출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야간 경영대학원을 다니며 재무제표를 배웠고, 그걸로 어찌어찌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 여의도에 입성했더랬다. 매크로는 아예 모르는 일자무식, 건설업 담당 주니어 애널리스트였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이코노미스트와 투자전략 스트러티지스트의 보고서를 찾아 읽었다. 눈길을 끄는 보고서가 있었다. 이 사람은 뭐지? 왜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매력적으로 잘 쓰는 거지?


그는 토러스투자증권이라는 이름도 낯선 증권사에서 투자전략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였다. 같은 셀사이드 애널리스트로서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펀드매니저 고객님(?)에게 나 이 사람 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셀사이드 애널리스트가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단지 그의 글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냐 묻고 싶어서,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아 부끄러움도 모르고 다짜고짜 만났다.


존재감도 없는 주니어였던 나는 그의 글을 보면서 나보다 훨씬 어른(?) 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만나보니 고작 한 살 많았다. 대화를 해보니 글에서 본 느낌 그대로, 매우 스마트하고 재치 있었다. 그는 여의도를 주름잡는 탑 애널리스트였는데 팬이 많아 나 말고도 이렇게 만나 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그는 문과대를 나왔고 독서를 즐기며,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자를 업으로 해보기도 했는데 여의도에 와서 애널리스트가 되고 보니 애널리스트가 가장 좋은 직업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더 이상 명료할 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당 원고료가 가장 쎈 직업이잖아요.”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소설가였고 글 쓰는 직업을 찾아 ㅇㅇ일보 시험도 봤었다. 40대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님을 인생 롤모델로 삼고 살며 지금은 비록 내가 월급쟁이지만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작품을 꼭 써야지,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그의 답변, 한 문장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애널리스트를 하는 십수 년간, 보고서 쓰는 게 너무 힘들 때, 그 말이 떠올랐다.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돈도 제일 많이 주는 직업이라면, 더 열심히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열심히 살던 시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별로 많지 않았을 수 있는 보상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가장 비싸고 값진 원고료를 받았으니까, 시간이 흘러서도 후회는 없다.


#부자의 기술


박승영 팀장님, 그가 책을 썼다. 잠시나마 같은 팀에서 일했던 김수연과 함께다. 제목은 ’ 부자의 기술‘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부자를 동경한다. 어떻게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 애널리스트들 답게 통계에 기반해 근거를 제시한다. 주식을 사라, 부동산을 사라, 이런 단편적인 얘기가 아니다. 물론 대중은 부자가 되려면 비트코인에 투자하라, 같은 책에 더 눈길이 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이 사라는 걸 따라다니기만 해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진짜 부자가 되는 길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30대, 40대, 50대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때로는 뼈 때리는 말을 거침없이 던져준다. 나에게 특히 와닿는 문장은 직업에 대한 조언이었다. 돈이 되는 일을 찾지 말고 좋아하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을 열심히 해서 상위 1%에 들어선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직업에 대해, 투자에 대해, 자산배분과 은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딘가, 무엇인가 든 도움이 될 것이다.


여의도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쓴다. 지인이 많다 보니 종종 추천사를 써달라거나 홍보(?)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나는 나만의 소신이 있는데 진짜 믿을 만한 저자, 내게 와닿는 책이 아니라면 추천을 잘하지 않는다. 내가 공감한 글이라 해도 추천하기를 망설이는데 내게 임팩트가 없었던 책을 추천하는 게 솔직히 매우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나도 안다. 웃기는 짬뽕 소신이다. 나 따위의 추천사나 추천 포스팅이 뭐라고 이걸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워하나. 그래도 나는 그렇다. ’ 부자의 기술’ 추천은 진심이다. 학교 동문 모임이나, 친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저자 초청 강연을 부탁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해줄지는 모르겠다.)


#달과 6펜스

그와 중에 예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 국어 수행평가로 ‘달과 6펜스’를 읽고 시험을 봤다. 런던의 증권 중개인이었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떠나 그림을 그리는 얘기, 고갱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막연히 나도 주인공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 버리고 떠나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는 삶, 미쳐버릴 만큼 나를 이끄는 어떤 일에 빠져들어 진짜 미쳤다는 말을 들어도 어찌할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삶.


책을 읽고 시험을 보고 온 아이는 이 책은 주인공도, 주변인들도 다 이상해,라고 말했다. 엄마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럼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런던베이글뮤지움, 그리고 료


올해 초 전정신경염이라는 요상한 증상으로 난생처음 119에 실려간 이후, 증상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종종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고 뭘 해도 에너지가 완충되지 않는 기분, 내 배터리가 고장 난 게 아닐까, 충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도 사춘기일 수 있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는 내 마음을 알아버린 듯, 유튜브는 나에게 런던베이글뮤지움 창업자, 료의 인터뷰를 띄워주었다.


부자의 기술과 달과 6펜스, 그리고 런던베이글뮤지움 료의 영상은 이스터에그일까? 셋이 모두 나에게 말한다.


“그만 투덜대고 하고 싶은 일을 해.”


책을 추천하는 포스팅이 산으로 갔다. ‘부자의 기술’에서 적어둔 문장들로 마무리한다.



#부자의 기술 중 기록한 문장들


부자는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고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근로 소득을 높이려면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노력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못 이기고, 똑똑한 사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을 못 이긴다.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은 미쳐 있는 것 같다.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다 빠져든 것이 아니라, 원래 미쳐 있었는데 그 일이 와서 붙은 것 같다.


돈보다 적성을 따라라. 신입 때 돈을 더 받는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건 길게 봤을 때 손해다. 적성에 안 맞으면 업무 능력이 더디게 성장한다. 그리고 신입한테까지 돈을 많이 줄 때엔 업황이 고점인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어떤 직업이 유망해질 것인지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확실한 사실은 어떤 직업이든 깊은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성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다.


상위 1%가 돼라. 예전 같으면 좋아서 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에서 상위 1%가 되는 게 중요하다.


30대는 성장하는 시기여서 근로 소득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하는 일에서 상위 1%가 되는 게 중요하다.


30대에 잘 벌어서, 40대에 이를 자산으로 바꾸고,

50대에 자산을 충분히 쌓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조언 그룹을 만들어라. 조언 그룹은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하는 게 좋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이 부의 50% 이상을 결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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