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무엇인가가 내 뒷덜미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그날 밤이 되기 전에 끝내야 하는 약속된 일이 있어서였기도 했고, 어쨌든 나는 점점 '공부(만) 잘하는 애'가 되어 갔으니까 그 방면에서는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도 했다. 난 그날 안 돼, 난 못 가, 난 길게는 못 있어. 그렇게 말하고 잠깐의 시간 동안 밖에서, 친구 집에서 깔깔 웃다가도 '아... 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일을 하다 말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적절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는 매년 예술제를 열었다. 공연 동아리에 속하지 않았다면 제법 경쟁이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했다. 그리고 그 예술제에 나가지 않으면 음악 과목 점수는 95점이 만점이었다. 5점이 예술제 출연에 프로모션으로 걸려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디션이 더욱 치열해졌을 수도 있다. 1학년 때는 친구 여러 명과 함께 올라가서 백스트리트 보이즈 노래를 불렀고, 2학년 때는 오디션에서 떨어졌으며, 3학년 때는 음악 점수를 포기했다.
1학년 때의 일이다. 여러 명이 방과 후에 모여서 공연 연습을 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었지만 파트도 나누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충실하게 연습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중학생들은 여러 스케줄로 정말 바빴다. 어느 날은 내가 학원에 가야 하는 날 연습 일정이 있었다. 학원 가기 전까지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길어졌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나는 불안해져서 말했다.
"... 나 학원 가야 되는데."
"나도 학원 빠졌어."
친구의 단호한 대꾸에 말문이 막혔다. 이미 이 연습 때문에 학원을 빠졌다잖아? 그렇다면 나만 학원을 간다고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동시에, 학원을 빠진다는 것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어린이(에 가까운 학생)였기 때문에. 불안하고 집중도 안 되는 상태로 어찌어찌 연습을 하고, 학원에는 지각했다. 그리고 아빠가 화를 냈다.
나도 화가 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늦게라도 학원에 간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공부를 소홀히 하고 대신 한 그 연습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는, 죄책감과 조금 닮은 감정이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책상에 앉아 글자와 숫자로 하는 공부가 아닌 것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점점 많은 일들이 의미 없어지고 하찮아졌다.
"프루야..."
중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단짝 친구가 집에 전화를 걸었고 내가 받았는데, 친구가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 얘기를 들어 보니 심각한 일이었다. 중학생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달려갔어야 했다. 걸어서도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멀었다. 나는 전화로만, 말로만, 어떡하냐고, 울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영영사전을 필사하고 있던 중이었으니 마치 다른 곳에 출근해 있는 것 같은 상태였다. 하던 일을 멈추는 게 더 큰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세운 나의 가치관에서 그건 정말 별로인 선택이었다. 아주아주 늦게 그 일을 다시 떠올리고 오랫동안 후회했다.
이런 것까지 주변 환경을 탓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의리 있는 애였다면 아무리 주어진 공부가 무거웠어도 당장 친구네 집으로 뛰어갔을 것이다. 그냥 나는 서른 살이 되기 직전에 친구에게 그때 얘기를 하고 내가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하는지 말했다. 그때의 어렸던 네가 너무 안쓰럽고, 내가 가지 않아서 혼자 있었을 시간이 자꾸 생각난다고. 그런 일이 다시 있으면 안 되겠지만 또 너한테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진짜로 바로 뛰어가겠다고.
그런 기억은 지금도 나를 좀 부끄럽게 만드는데, 때로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내가 제일 기대한 날들은 이유가 있어서 허락받고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날이었다. 학교 시험이 끝난 날, 그리고 생일 기념으로 친구들과 놀았던 날. 어느 일요일인가에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분식집에 갔었다. 거기에 어떤 약속이나 제약이 처음부터 걸려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아침 10시쯤 만나서 놀고 집에 왔더니 오후 5시가 좀 넘어 있었던 것 같다. 분식집에서 조금 찜찜한 마음으로 시계를 봤던 기억이 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에게 들은 말도 기억이 난다.
"너 7시간이나 놀았어."
해도 지기 전에 들어왔는데. 어디 이상한 곳에 몰래 갔던 것도 아닌데. 중학생에게 일곱 시간은 과한 외출 시간이었을까? 부모님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공부할 시간을 까먹으면서 늦게까지 놀고 왔구나'라는 말로 들렸다. 그게 그렇게 짜증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또 '너무 늦게 왔나'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마냥 반항심만 들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공부를 하는 게 결국 옳긴 하다는 생각.
그래서 높은 기준에 따라 '보기에 확실히' 공부를 하는 것 같지 않은 애들을 아주 멀게 느꼈던 것도 인정한다. 지금 보면 참 어리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땐 그게 세상을 보는 유일한 틀 같았다. 그냥 모두가 서로 다른 한 명 한 명의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냥 우리는 모두 다른 채로 섞여서 사는 친구들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가끔 중학생 때로 돌아가서 모든 애들과 무난하게 잘 지내고 모든 애들에게 적당히 친절하게 대하는 꿈을 꾼다.
중학생도 사회생활을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