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정신 없는 대학원생

by 이프루


고시는 그만두었다.

단 13일. 그건 고시 준비를 했다고도 볼 수 없는 기간이었다. 그게 싫고, 아무리 여러 사람이 권유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그때 학과 전공과목 중에 좋아하는 분야가 있었고, 막연히 '저걸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관련된 내용으로 다중전공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길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금방 부모님에게 말했다. 그대로 선언했다. 교수님이나 대학원생 선배에게 조언을 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게 먼저였던 것 같다. 다행히 부모님은 '네가 하고 싶다면......' 하고 받아들여 주었다.


큰 문제없이 다중전공을 수료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는 너무 좋은 언니오빠친구가 많아서 꼭 동아리방에 출석하는 것처럼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일단 내 책상이 있다는 게 좋았고, 좋아하는 교수님의 연구실에 소속된다는 게 좋았고, 다 같이 밤에 퇴근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거나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좋았다. 연구로서의 공부를 잘 못한다는 게 스스로 너무 잘 느껴져도 마냥 좋았다. 석사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의 기준이 점점 올라가고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많이 웃었던 만큼 많이 울었다. 다들 '석사논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라고 말하면 나는 어렵다고 말하면서 울었다. 연구실에 데스크탑을 놔뒀으면서 그걸 방치하고 출근하지 않았다. 매일 집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밤을 새우고 낮에는 잤다. 명확한 연구주제도 계획도 갖지 않은 채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진학이라는 결정을 내린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마음도 없이 관성만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다른 곳에도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석사학위논문을 쓰기가 어려웠던 것에서 시작한 마음이 점점 스스로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고 있었다.

논문을 못 쓰는 내가 문제였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며칠에 한 번씩 고쳐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게으르고 무능하고 나태한, 그래서 나쁜 나'였다. 그런 내가 힘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일까?

그 질문을 떠올렸다면 좋았을 텐데. 이성적으로, 그리고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면 뭐가 바뀌었을까.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선배들은 정 그렇다면 (어디라도 갈 거라면) 토익시험부터 보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토익조차 보러 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부모님께는 비밀이었다. 매일매일 아주 늦게 일어나 겨우 밥을 먹고 방에 처박혀 뭘 하는지도 모르게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는 겉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걱정의 말도 쉽게 건네지 않았다. 다만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나는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 실제가 어떻든 나는 점점 떳떳하지 못하고 또 동시에 지레 공격받는 것처럼 느끼고 화가 났다가 슬퍼졌다 하는 상태가 되어 갔다.

딱 한 번, 엄마에게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라는 말과 함께 '헝그리 정신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더 간절하게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다른 걸 노력해서 갖춘다고 해도 간절함만은 절대 없었던 나는 그 말에 발끈해서 짜증을 냈다. 하지만 집에 틀어박혀서 잠깐 공부하고 또 우울해하는 데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과는 계속되었다. 내가 아는 나는 바뀔 수 없는 인간이었다. 대학원에 소속된 채 살아 있는 것만이 삶의 최종 목표인 것 같은 인간.


그것이 우울이었는지 정당한 피로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를 움직이는 것은 관성이었고, 안 할 수 없는 일들만을 겨우 하면서 지냈다.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날들을 어찌어찌 버텨서 석사학위논문을 쓰고 다시 입시를 거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겉보기에는 관성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야망이 없고, 근성이 없고, 다만 걷던 길을 마저 걸을 힘밖에는 없었다. 다만 멈추지만 않았을,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라앉은 나는 그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나까지 왔다. 겉으로는 점점 개선되지만 속은 계속 무능력한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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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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