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겨울,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저녁 6시 홈페이지에서 합격 발표를 보고, 기쁨을 느끼기 전에 불안에 떨었다. 뭔가 잘못돼서 내 눈에만 '합격'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린다는 할머니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섣불리 기뻐하면 취소될 것 같았다. 나에게 긍정적인 큰 이벤트가 발생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커다란 행운을 받아 안고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어쨌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환영회에서 선배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자니 점점 받아들여지기는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갈 다음 학교가 여기라는 게.
수시 합격이라 12월 초부터 2월 말까지 통째로 세 달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나는 물론 마음대로 컴퓨터도 쓰고 드라마도 보고 만화도 보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지만, '그냥 놀기만 하면 아깝다'는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신촌에 있는 외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영어 회화 반 하나와 일본어 회화 반 하나. 거기 다니는 언니 오빠들은 대부분 직장인이거나 취준생이었다. 내 또래는 없었다. 그것도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학원에 온 애는. 막내로서 귀여움을 받으면서 즐겁게 다니긴 했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황당했을 뿐. 무슨 학원을 또 다녔나 하고.
대학교 소속이 되는 3월이 되자마자 학원 대신 교내 언어교육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갓 입학한 학부 신입생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일이지만 어쨌든 부모님의 권유에 의한 거였다. 아침 일찍 강의를 듣고 과제를 통해 영어 글쓰기를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그때 신입생이라고 하자 선생님께서 '박사과정 신입생이냐'라고 물어보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였나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학부 신입생이 그 수업에 올 이유가 없었던 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어교육원은 1학년 여름방학 때도 다녔다. 이번에는 영어 회화 강좌였다. 정말 너무 싫어서 억지로 갔던 기억이 있다. 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1학년 겨울방학에는 다시 신촌의 외국어 학원에서 토플 강좌를 들었다. 높은 토플 점수를 만들어 놓고 그걸 이용해서 국제 교환학생에 지원하라는 권유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집에서 통학하는데 갑자기 외국에서 한 학기나 일 년 혼자 살면서 대학 다니기? 하고 있던 동아리 활동도 다 그만두고? 교환학생은 지원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린 마음에 그러는 것으로 치부되고, 사실 나도 '내가 어려서 그런가 보다......'라고 납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안 갔지만...) 나중에 보니 교환학생은 3~4학년 때나 많이들 가는 것 같았다. 방향성도 간절함도 없는 상태에서는 토플 공부를 해 봤자 점수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1학년 한 해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해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밤새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갔다. (살지도 않는) 기숙사 식당에서 리포트를 쓰고 입석 버스에 끼여서 대성리로 MT를 갔다. 좋아하는 애가 생겨서 마음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마음껏 읽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 고시 공부를 할 준비를 했다.
외무고시가 있던 시절이었다. 외무고시 혹은 행정고시를 치라는 권유가 있었다. 고3 때 서울대에 합격한 뒤 교장 선생님이 교장실로 불러 커피를 내려 주면서 '너는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걸 잘하니까 고시에 도전해라'라고 말했다. 친척들도 다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전 세계로 출장 다니는 멋진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외무고시를 추천하고 여성 외교관의 자서전을 사 왔다.
행정고시에 무슨 직렬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공부 계획을 짰다. 휴학은 당연히 없었다. 6과목 18학점을 모두 들으면서 저녁에는 '학교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계획으로 합의되었다. 아빠는 '국제법'이라고 적힌 커다란 책... 아니, 법전 그 자체를 사 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학원에 가든지 인강을 듣든지 최소한 시험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교재를 사기라도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우직한 나의 아빠와 그것밖에 경험한 적 없던 나는 그냥 '혼자서 꾸준히' 법전을 한 줄 한 줄 읽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사회탐구 과목으로 '정치'를 선택했을 때도 아빠는 '그냥 헌법을 외워 버려'라고 말했고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시험의 유형에 맞는 전략적인 공부를 하지 않은 채 냅다 치렀던 외고 입시 시험에서 그랬듯이.
커다랗고 두꺼운 노란색 표지의 국제법. 그걸 안고 다녔다. 법대에 다니던 동아리 동기가 비웃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오늘부터 고시생'이라는 막연한 역할극이었을 뿐이었다. 전략도 무엇도 없이 국제법 제1조......를 읽고 (판례라도 봤으면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페이지 위에 소설책을 겹쳐 놓고 조금 읽다가 다시 국제법으로 돌아갔다가...... 자괴감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방향성이 없고 멍한 날들이었다.
단 13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려 13일이었다. 14일째가 되던 날은 법전을 든 채 소주를 마시러 갔다. "에이씨, 모르겠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깊은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뿐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