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누가 물어봐줬더라면

by 이프루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조용한 아이는 아니었다. 일단 모범생이라고 분류는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공부를 잘했으니까. 1등은 못하더라도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면 평균 90점대 초반 정도가 나왔다. 고등학교 때도 내신 점수는 별로였지만 모의고사를 점점 잘 보게 되었고, 입시라는 이름 아래 (서로 절대 친하지 않지만) 묶인 소수의 '견제 라인업'에 포함되기도 했다. 선생님이 지시한 일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여기서 큰일은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것이었다.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가 있기는커녕 대학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으면서.


문제는 선생님들도 내가 하는 일은 웬만하면 옳은 줄 알았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 밑에 공책을 깔아 놓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고, 자습 시간에는 나만 아는 일본 밴드 노래를 들었다. 같은 반 애들과는 대부분 잘 지내지 못했으며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울거나 화를 냈다. 단체로 하는 행사에는 끼고 싶지 않으면서도 아예 빠질 용기는 못 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히 어딘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내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같은 반 애들은 아주 친한 애들이 아니면 전혀 모르는 애들로 나뉘었다. 취미 일부나 성격이 맞는 친구들하고는 3년 내내, 다른 반으로 갈라져도 서로 만나고 함께 놀러 다니며 잘 지냈다. 어떤 친구에게는 울고불고 매달리고,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의 혼란스러움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반면에 그 외의 애들과는 통성명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 반에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애들과 성격이나 취미가 맞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항상 다른 할 일이 있어 바쁘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서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주 좋아했던 친구를 감정 조절 실패로 지치게 만들어서 멀어졌다. 이미 그때쯤부터 가슴속에 뭔가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뱉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게 뭔지 전혀 몰랐고 그걸 다룰 여유나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괴로워만 했다. 주변에 사람이 있든 말든 울고 소리를 질렀다. 종이를 꺼내 박박 찢기도 했다. 단짝 친구를 잃었고, 학년이 올라가 들어간 새로운 반에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고, 내가 사람들에 관심이 없었던 만큼 그 사람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별로 안 좋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이상했을 테니까.


내 주변에는 어른이 많았다. 부모님이 있고, 선생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쯤에는 부모님에게 조절하지 못한 감정을 내보이는 일이 많이 줄어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밖에서 울고불고한다는 걸 몰랐다. 나도 그걸 들키는 건 창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밖의 모든 사람에게는 비밀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도 내가 이상해져 가는 걸 봤다. 다만 '남'은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남이니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학교에서 가끔 했던 집단상담에서도 나의 이상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의 특징을 한 가지 골라서 닉네임으로 붙여 보세요."

전혀 친하지 않고 결이 맞지 않는 반 친구들과 같이 들어간 집단상담. 애들이 너는 '음침'이라고 해,라고 해서 포스트잇에 '음침'을 써서 가슴에 붙였다. 자기 세계에 빠진 애들이 많이 그랬듯 앞으로 쏟아진 숱 많은 머리카락이 내 특징이었으니까. 그게 괴롭힘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고, 내가 '음침'이라는 말을 크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있긴 했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그게 옳지만은 않다는 걸 아셔야 했지 않나요. 왜 그런 말을 가슴에 붙였는지 물어보셨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때 나는 그냥 가상 세계에 빠진 청소년이 흔히 겪는 시기를 지났고 있었을 뿐일까? 아니면 그때 누군가 전문가를 만났더라면, 아니면 누구라도 내가 얘기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지금의 내 마음과 기분과 정서는 좀 '정상 범위'로 되돌려져 있을까?


나는 여전히 감정을 다루는 게 어렵다. 어떤 상황에 들어섰을 때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의 정체를 알 수 없고, 한참이 지나서야 '화낼 만했구나', '속상할 만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자주 감정이 가라앉고 의욕을 잃고 눈물을 흘린다.

내 이모는 '라라랜드'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모네 가족은 넷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러 가서 잘 운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나는 좀 부럽기도 했다. 우리 집은 절대 울지 않는데. 울더라도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는데. 우리 가족은 함께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도 많지만, 그런 만큼 서로가 우는 것은 머쓱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충분한 어른이다. 그러니 지치고 피로하고 우울하고 도망치고 싶고 화나고 눈물이 나는 것은 비밀이다.

그렇게 혼자 눈물을 닦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내가 이상하게 구는 상황들의 기저에 어떤 감정적 부글거림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나라도) 알아챘다면. 그랬다면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어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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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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