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다 준 <얀 이야기 1>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때일지언정 소중히 여기 않으면 안 된다.
복잡한 도쿄 시부야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오데사 이스탄불'을 떠올린다. 도쿄의 계획 도로 건설을 위해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를 오데사 이스탄불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망명지. 마치다 준은 자신의 머릿속을 잠시 망명지 삼아 사라져간 장면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오래 한 곳을 지키며 머물러 있는 얀과 강물을 따라 흘러 다니며 늘 떠나기를 반복하는 카와카마스, 이 둘의 오랜 마음에 대해 글은 시종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냥 그런 이야기가 그 초원에 머물렀더라고.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래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은 가슴에 품어보아도 좋을 이야기라고.
듬성듬성한 행간과 문단의 여백 사이에 놓인 삽화 속에서 얀과 카와카마스는 참 다정해보인다. 언제 찾아올지도 모를 벗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소담한 말들을 준비해두는 얀. 계절의 소소한 변화를 지켜보며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얀의 깊은 마음 덕에 카와카마스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냥 그런 이야기가 그 초원에 머물렀더라고.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래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은 가슴에 품어보아도 좋을 이야기라고.
무엇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얀, 카와카마스와의 기억마저도 그저 그런대로 놓아버리고 다시 미소 지으며 작은 평화를 이어가는 얀은 본받고 싶은 성자다. 나는 누군가를 그토록 맑게 기다려본 적이 있던가. 그 사람이 다시 올 것인가, 말 것인가. 그 마음이 진심인가 아닌가. 보다 좋은 사람은 없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과 계산, 욕망으로 나는 내 기다림의 맑음을 유지하지 못했다.
인생 또한 맑게 기다릴 때 그 바라던 바를 펼쳐보여준다. 담백한 지혜에 우리는 늘 맛이 없다며 투정하고 젓가락을 대어보지도 않는다. 꾸밈없이 담백한 이 책에 손을 대어 보길 바란다. '어른을 위한 동화' 따위의 수식어는 무시하는 게 좋겠다. 다만 표지 속의 얀과 카와카마스를 60초 정도 진심을 다해 들여다보아주길 바란다.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았다면 찬찬히 이 책을 넘겨보아야 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겠지만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당신은 잠시나마 마음속에 품을 수 있으리라.
2011. 1. 1.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