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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an 11. 2016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서른의 한 가운데를 들여다보다

시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서른의 한 가운데를 들여다보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세상에는 이제서야 이메일이라는 것이 생겼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다음 카페를 개설했었다. 그 무렵 나도 '별의 강 간이역'이라고 하는 나만의 공간을 웹상에 만들었다. 나의 친구들, 고교시절 출간된 소설 작품집 덕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 그리고 우연히 간이역에 멈춰 선 사람들 30여 명이 그곳의 회원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주로 내게 일어나고 있는 청춘의 사건들에 대한 수필을 썼다.  그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글이다. 


서점에서 시와의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나는 자연스레 그 글을 떠올렸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불행의 종합 백화점이었고 그 시절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인간에게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인간은 불행해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불행 속에서 살다 보면 어느덧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이 '완전한 불행'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일이든지 행복과 불행은 패키지로 오기 마련이었다. 결국 어느 쪽을 볼 것인지의 문제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시와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이 사람도 나처럼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본 사람이구나 그리고 여리지만 강하게 마치 봄의 바람처럼 그 길을 통과해온 사람이구나 싶었다.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에는 특수학교 교사에서 음악인 시와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소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챕터를 하나씩 넘기며, 플롯은 뚜렷하지 않지만 화면에 담긴 감성만으로도 많은 말들을 전해주는 일본의 센티멘털 무비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가만히 그녀의 삶을, 선택을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처음 들은 시와의 음악은 '화양연화'였다. 아, 이 사람은 어쩌려고 이렇게 많은 말들을 무겁게 담고 있는 제목을 붙였을까. 제목을 먼저 보고 떠올린 생각.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다시 한 번 듣고, 또 듣게 되며 어느새 칩거해 있던 집을 벗어나 밖으로 나서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힘이 있는 사람이다, 기저에 깔린 슬픔을 얼마간 밀어내면서도 감싸 안을 줄도 아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 그렇게 '화양연화'에 푹 빠져 지내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 '길상사에서'를 들었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멍한 표정으로 길을 멈출  수밖에 없는 노래라니. 


세상에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내가 너희들을 힐링해주마!"라고 호언하는 듯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어떤 어른들은 따끔하게 혼을 내주겠다며 직사각형의 말들을 던져대고, 어떤 어른들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동글동글한 말들을 굴려간다. 모든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류의 책들이 대체로 망각하고 있는 공통의 요소가 있었다. 


타인에게 충고를 하기 이전, 자신을 들여다본 흔적이 없다는 것. 


나이가 들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꼰대가 되어버린다.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는 서른의 한 가운데에서 한 여성이 자신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남을 힐링시키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쓰면서 자신을 힐링시킨 글이다. 




시와라는 음악인의 음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당신이 서른의 어느 시점을 지나가고 있거나, 앞으로 지나갈 예정이거나, 지나왔지만 돌아보게 된다면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당신도 책장을 덮으며 "그래...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라고 읊조리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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