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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16. 2016

아직도 기린의 뿔은 이야기를 만들고 1

힐링로드 2 - 서사의 고향에서 문학의 풍경을 만나다

아직도 기린의 뿔은 이야기를 만들고 1

- 일연 『삼국유사』편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에 내려섰다. 서울에서 고속버스에 오른 지 3시간 만이었다. 공기와 풍경이 사뭇 달랐다. 어쩐지 타임슬립을 한 기분마저 들었다. 길게 직선으로 쭉 뻗은 제법 잘 포장된 길 곳곳에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라는 표식이 보였다. 나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했던 그때, 오래전 고려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군위에 도착하면 이 표시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글씨체와 구름 위의 기와집 문양이 나쁘지 않다.


포장된 길을 한 십여 분 정도 걸었을까. 도로의 좌우로 드넓은 논밭이 펼쳐졌다. 왼편의 논밭 너머에 읍이 있었다.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 읍으로 향하는 대로변에는 ‘삼국유사교육문화관’, ‘삼국유사도서관’ 등 삼국유사를 브랜드로 내세운 커다란 현대식 건물들이 성처럼 세워져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표지석 같았다. 일연 스님이 오늘날 살아서 그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삼국유사도서관을 지나 직선 대로가 끝나는 즈음의 사거리에서 읍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벚나무 길이 펼쳐졌다. 마침, 군위에 도착했을 때가 벚꽃이 절정일 무렵이었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음악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선곡은 당연히 ‘벚꽃엔딩’이었다. 가사처럼 봄바람이 휘날렸다. 햇살을 받은 꽃잎들이 화사하게 반짝이며 흐드러졌다. 풍류를 즐기는 옛 선비가 된 듯 꽃구경 삼매경에 빠져 한동안 넋을 잃은 채 길을 걸었다. 



읍에 이르자 주민들이 나를 주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일의 여행객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가까스로 찾은 숙소는 숙박을 하면 사우나 시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한숨을 돌리며 이제 어디로 가볼까 생각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라는 인각사에 가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아까 지나쳐온 두 거대 표지석(삼국유사교육문화관과 삼국유사도서관) 속에나 한번 들어가 볼까 싶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카메라와 보조가방만 들고 숙소를 나섰다. 해가 조금씩 기울며 거리를 고즈넉하게 만들고 있었다. 몸이 가벼워지자 거리도 새롭게 보였다. 드넓은 하늘을 고스란히 펼쳐 놓아주는 나지막한 집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기와지붕과 다양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건물 양식들을 보니 다시금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느긋하게 길을 돌아 걸으며 표지석 건물들 쪽으로 향했다. 먼저 ‘삼국유사교육문화관’에 들렀다. 삼국유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친절한 공무원에게 각종 자료집도 받아 나올 수 있었다. 다음으로 들른 ‘삼국유사도서관’에서는 재미난 일이 하나 있었다. 



삼국유사도서관 내부에 마련된 삼국유사 자료관은 불이 꺼진 채로 굳게 잠겨 있었다. 문에 부착된 안내물에 따라 사무실을 찾아 자료관을 이용하고 싶다고 하자 직원 분들이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평소에는 거의 이용하는 분이 없어서요. 귀한 자료들이라 보관 문제 때문에 문을 잠가두고 있어요.”


서울에서 찾아온 시간여행자(웃음)에 의해 오랜만에 삼국유사자료관의 불이 밝혀졌다. 


“자료가 별로 없죠? 저희가 이제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만...”


담당 사서의 겸손한 말과는 달리 자료실에는 상당한 정도의 자료들이 갖춰져 있었다. 만화책으로 만든 어린이 삼국유사부터, 각 출판사에서 출간된 다양한 이본의 『삼국유사』번역서들. 그리고 학술논문과 삼국유사를 주제로 다룬 인문서 및 여행서까지. 거기에 더해 일연의 자료들도 충실한 편이었다. 게다가 제법 근사한 공간이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마치, 일연 스님의 집필실에 방문한 것 같은 느낌도 났다. 


오랜만에 자료관을 찾은 이용자가 뽑아 든 책은 역시 ‘어린이 만화 삼국유사’였다. 자리에 앉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만화책을 읽어내려갔다. 어느 새 3권의 고주몽 이야기에 이르렀을 무렵,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열린 문 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마치 삼국유사자료관 담당자라도 된 듯이 그들의 출입을 허락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 자료관을 둘러보더니, 내가 만화 삼국유사를 뽑아 든 자리에 서서 책을 한 권 뽑았다. 곧 서로 키득거리며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국유사』는 또 한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연 스님과 나와 두 중학생은 800여 년의 나이 차와 관계없이 지금 동일한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나와 그 학생들의 나이 차만 해도 20년은 족히 될 것이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은 1206년에 태어났으니 2015년에 살고 있는 나와의 나이 차이는 무려 809살이나 된다. 고려왕조가 두 번 세워졌을 세월의 차이다. 일연 스님과 두 중학생의 나이 차는 829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연 스님과 나와 두 중학생은 800여 년의 나이 차와 관계없이 지금 동일한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준다. 어떤 이야기를 함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벗이 되고 이웃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민족’이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일 수도 있다. 


이 자료실에서 우리는 세대를 뛰어넘어 일연과 만났다


후삼국 시대라는 분화를 거쳐 다시 ‘고려’라는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고려의 승려였던 일연 스님에게 이야기를 모으는 일은 흩어진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과 같았으리라. 원이라는 강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키고 싶었던 그는, 그리하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단군신화로부터 삼국유사를 시작한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시조들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으로 남긴다. 어쩌면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유대감은 바로 이『삼국유사』가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서울에 살고 아이들은 군위에 살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다. 단지 국적이 같아서가 아니라, 만화 삼국유사를 읽으며 함께 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창 밖에 해가 지는 것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관을 나섰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을 따라 도서관을 나서자 온 세상이 귤빛이었다. 노을 질 무렵의 들녘에서는 늘 묘한 뭉클함이 느껴졌다.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 오래된 풍경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탓일까. 읍으로 다시 들어서자 작은 간판들이 저마다의 빛으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라는 군위읍의 홍보 문구가 무색하지 않았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렸다.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걸려 거리를 밝게 비췄다. 800년 전, 일연 스님도 이 고장의 어딘가를 달빛에 의지해 걸으며 평생에 걸쳐 모아 온 이야기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한 발 걸으면서 웃고, 또 한 발 걸으면서 울었을 것이다. 나는 일연 스님의 마음이 되어 거리를 걷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품은 채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인각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목욕재계를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군위에는 아직 교통편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정보도 부족했다. 가까스로 알아낸 방법은 무성리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다시 화북 1리로 가는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었다. 인각사는 화북 1리에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3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그런데 타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교통 카드 리더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요금은 천 원에 불과했지만 지갑에 남아 있는 현금이 딱 천 원 한 장이었다. 환승을 하려면 현금을 미리 바꿔야 했다. 무성리에 은행이 있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버스는 나를 싣고 출발해버리고 말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가다가 은행이 보이면 내려서 택시로라도 바꿔 타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은행은 보이지 않고 버스는 점점 더 오지를 향해 달려갔다. 불안해진 나는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운전기사에게 혹시 은행이 있을 법한 곳으로 가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운전기사는 딱 잘라서 “없어요.”라고 말했다. 대절망. 


이곳에서 인각사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어데 가는데요?”

“인각사요.”

“거 삼국유사 절이요?”

“네, 맞아요.”

“고 그냥 앉아 계세요. 쫌 한참 걸리도 고쪽에 가긴 갑니다.”


그제서야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봄볕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창을 살짝 열자 바람이 간질간질 코끝을 스쳤다. 버스의 주 승객은 평균 연령 60세 이상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었다. 마을을 하나 거칠 때마다 어르신들이 버스에 탔는데 신기하게도 이 마을 어르신과 저 마을 어르신이 서로 다들 알아보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버스는 그분들에게 움직이는 카페였다. 약속도 하지 않고 만난 이들이지만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는 편안한 일상의 공기가 깃들어 있었다. 두 달 전에 태어난 검둥이의 새끼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새로 심은 작물들의 싹이 잘 돋아났는지, 아침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들이 어찌나 괘씸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정다웠다. 사람과 사람은 이처럼 나이가 많든 적든, 멀리 떨어져 있든 가까이에 있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간다. 일연 스님은 천 년 전, 전국을 유랑하며 이와 같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메모했다. 그 수천 개의 메모들이 모여 바야흐로 『삼국유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글은 경상북도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이야기의숲에서 발간한 <힐링로드 2 - 서사의 고향에서 문학의 풍경을 만나다>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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