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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Feb 03. 2016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서사의 고향에서 문학의 풍경을 만나다 0.5


여행을 떠나며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여행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4월, 바람이 봄꽃 향기를 싣고 거리에 퍼졌다. 강변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들어서자 버스커버스커의 봄 캐럴송 ‘벚꽃엔딩’이 들려왔다. 노랑, 분홍, 하늘파랑, 여러 빛깔의 표를 손에 쥔 사람들의 표정에는 저마다의 기쁨이 깃들어 있었다. 나 역시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매표창구에 다가가 말했다. 


“경북 군위 한 장이요.”


군위라니. 군위라는 단어를 입으로 발음해본 것은 아마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단어를 발음하게 된 연원을 살펴보자면 한 달 전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나는 동네에 있는 유명한 만화 도매상 ‘북새통’에서 발견한 한 권의 만화책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 만화책의 이름은 『도련님의 시대』 다니구치 지로라고 하는 극화풍의 그림체를 구사하는 일본 만화가의 작품이었다. 그 내용은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일본 근대 문학가들의 고민과 삶을 그린 것이었다. 마침 나는  그즈음에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감명 깊게 읽고 여운이 남아 있던 차였다. 『도련님의 시대』 역시 한달음에 읽어내려갔다. 감탄이 절로 나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 한 권의 만화책 속에서 일본 문인들의 정신 속에 흐르는 미묘한 이야기의 강줄기 같은 것을 느꼈다. 강한 질투심이 일었다.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메이지 시대 문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 『도련님의 시대』


일본은 『겐지모노가타리』를 내세우며 일본의 문학이 8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음을 자랑한다. 심지어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11세기라고 하면 10세기 이전의 시대, 즉 천 년 전이다. 그 아득한 시기부터 그들은 소설을 써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소설은 아마도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으로, 이 작품은 16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그마저도 근대적 의미의 소설(즉, 개인의 심리와 인물의 갈등이 묘사되어 있는)로 엄밀하게 기준을 잡는다면 우리의 첫 소설은 춘원 이광수의 『무정』으로 보는 것이 문학계의 정설이다. 아시다시피 『무정』은 20세기의 작품이다. 


나는 일종의 정신적 허기를 느꼈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가난한 역사를 지닌 것일까.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은 어디일까.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 검색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이야기. 답은 금방 나왔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곰과 호랑이가 동굴 속에 들어가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었다는 이야기. ‘단군 이야기’가 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우리의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군 이야기는 바로 우리 민족의 처음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이야기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책은 바로 일연이 쓴 『삼국유사』이다. 나는 솔직히 『삼국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도 주입식 교육의 폐해일까. 적어도 내게 『삼국유사』는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역사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하나의 답안처럼 여겨져 왔었다. 

복원된 『삼국유사』의 원래 모습. 우리에게 역사서로서 기억되고 있는 이 책은 사실 우리 서사문학의 자존심이었다.

서점에서 『삼국유사』를 찾고, 구입해서 나오는 내 모습은 스스로에게도 무척 낯설었다. 손에 든 『삼국유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래도 12세기에 쓰인 『삼국유사』라면 『겐지모노가타리』에 시기상으로는 견줄 만하다.”라는 묘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만화책 한 권에서 발생한 자존심의 흠집을 메우기 위해 나는 정성껏 『삼국유사』를 3월 한 달 간 읽어내려갔다. 『삼국유사』를 읽으며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역사서에 수록된 몇 편의 설화들은 『신라 수이전』이라고 하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책에서 따와서 수록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신라 수이전』은 약 10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드디어 『겐지모노가타리』를 앞선다. 


하지만 결국 이 자존심 싸움(?)은 근원적으로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겐지모노가타리』는 말 그대로 근대적 소설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문학작품이지만, 『삼국유사』는 세간의 이야기를 모아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이야기 모음집 정도인 것이다. 단,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삼국유사』 자체는 요즘에 와서 읽기에 그리 흥미로운 텍스트가 아니었으나, 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몹시 궁금증이 일었다. 일연은 어째서 이 이야기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했을까. 일연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단군의 이야기를 알 방법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3월 말. 내  마음속에서 모종의 여행 계획서가 작성되었다. 일연을 만나러 가자. 그리고 이야기, 곧 서사문학이 시작된 그 지점에서부터 시간 여행을 하듯 다음 시대로 또  그다음 시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보자. 그렇게 작품과 그 작품이 태어난 장소에 따라 여행지를 정하고 이들을 서로 잇자 묘한 지도가 나왔다. 나는 그 지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반도를 이루는 팔도 중에 한 곳에 모든 여행지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경상북도였다. 미처 몰랐던 사실. 경상북도는 명실상부한 한국 서사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내가 정한 이야기 여행 루트는 다음과 같았다. 


삼국유사 / 군위 - 공방전 / 예천 - 금오신화 / 경주 - 설공찬전 / 함창 - 삼한습유 / 구미 - 을화 / 경주 



서사문학의 기원부터 근대소설의 태동까지 그 모든 이야기사의 핵심적 인물과 사건들을 경북이 품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경상북도의 산하와 거리 곳곳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몰랐다. 4월, 나는 드디어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 있었다. 내 가방 속에는 여벌의 옷과 여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 1화에 계속




『힐링로드 2 - 서사의 고향에서 문학의 풍경을 만나다는 경북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도서출판 '이야기의 숲'에서 출간된 저의 책입니다 :  )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 실물을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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