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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29. 2016

꽃이 늦게 핀다 하여 다그칠까

인디언 교육 5

고깔 모자를 쓴 미크맥 부족 할머니의 모습에서 동북아시아 샤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고깔 모자의 패션은 우리 한민족의 신라계에서도 나타난다


5. 꽃이 늦게 핀다 하여 다그칠까


"미크맥어에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없어. 인디언은 시계가 말해주는 인위적 시간에는 관심이 없다네. 또 무엇을 하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 만일 자네가 무슨 일을 한다고 가정해보세. 그러면 자네는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그냥 계속하면 되는 거야.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거지. 시간 제한은 없어. 일이 끝나면 끝나는 거지!"


- 에반 티 프리처드 <시계가 없는 나라> 61쪽 - 



대학교 2학년 여름 무렵부터 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해보겠다고 이런저런 책을 읽고 다녔다. 비빔밥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혼자 허공에 이상한 손짓을 하며 멍 때리고 있는 나를 아마 가게 주인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이 1916년의 일이니, 벌써 한 세기가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주창한 '시공(時空)'이라는 개념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문명의 방식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라는 가상의 개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쉬운 예를 들면 수명이라든지, 결혼 적령기라든지 하는 것에서부터 가장 일상적인 1월~12월이라는 표현, 또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365일과 같은 표현의 형태로 시간은 우리 삶에 어떠한 표준을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절대적인 시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라는 물리적인 공간 이동에 따른 변화이다. 우리가 시간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법 또한 시침과 초침이 일정한 간격으로 공간을 옮겨가는 방법이다. 


근원적으로 들어가보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그 세포 속의 입자들이 움직인다는 것(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이다.)이 시간을 만들어낸다. 입자들이 운동하지 않으면 시간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시간이 멈춘 순간, 즉 죽음을 뜻한다. 


'시간이 멈춘다'는 현상은 시계 바늘이 멈추는 것으로 표현된다. 곧 물질의 흐름, 공간의 이동이 사라진다는 것


자연에는 시계가 없다. 꽃은 3월 1일에 피기로 하고 피어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피어날 때가 되었을 때 피어난다. 꽃들은 일제히 피어나는 법이 없다.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가장 적절한 시기에 피어난다. 히말라야에서 바이칼로, 바이칼에서 철원으로, 철원에서 이즈미로, 이즈미에서 다시 히말라야로 이동하는 두루미는 시계를 보고 날아오르지 않는다. 다만, 저마다 날아오를 그때를 알 뿐이다. 


사람도 오랜 시간, 적어도 시계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가상의 시간을 설정하고, 시간별로 미세하게 구획을 나누어 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해가 뜰 때, 해가 중천에 있을 때, 그리고 해가 질 때, 달이 뜰 때를 크게 나누어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살았다. 


분, 초 단위의 미세한 시간 구분은 산업생산의 효율성을 증대시켰지만(효율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근대 이후 생겨난 표현이다.) 사람을 시간에 쫓기어 살도록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우리는 흔히 초등학교 1학년 정도가 되면 한글을 다 읽고 쓸 수 있어야지, 중1 정도면 복잡한 수학계산이나 영어 문장 몇 개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지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대학생 정도 나이면 이제 자기 인생의 진로 정도는 확정했어야지 라거나, 20대 후반이면 결혼을 고려하고 사람을 만나야지 하는 식으로 어떤 시간에 알맞은 삶의 미션들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코 전제하는 그 가정들은 옳은 것일까. 그 가정들의 논거에 가장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믿음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85세라고 치면,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85년이라는 시간을 부여받은 것이고, 그 공통된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질(아마도 대체로 생각할 것은 물질적 성공)이 결정된다는 믿음. 


위 믿음에서 '시간'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 믿음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1세기 전에 그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인의 '시간'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시간'이라는 종교를 지닌 채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크맥족이 1월~12월에 이르는 각 달을 표현한 말들이 쓰여 있다. 하지만 이는 고정된 표현이 아니라, 그때 그때 계절과 사회의 특성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숫자로 이야기하는 평균 수명의 증대 같은 것은 인간의 삶을 놓고 볼 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조선 시대의 조선인 평균 수명이 60세였다고 쳐도, 그들의 삶이 현대 한국인의 삶보다 정말로 짧았을까? 조선인은 현대인보다 훨씬 더 노동 시간이 적었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며, 자기 자신의 삶 외에 불필요한 일들에 신경 쓰는 일이 적었다. 시간이라는 척도가 아니라 삶의 밀도라는 측면에서 측정해보자면 외려 현대인이 조선인보다 더 짧고 촉박한 삶을 살다 가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고매한 어른들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그 말의 깊은 함의를 이해하고 쓰는 어른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속에는 '기다림'과 '존중'의 의미가 함께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아이의 경우 영민하게 여러 지식을 남보다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허나 어떤 아이의 경우 보는 이가 답답할 정도로 더디게 성장하는 아이도 있다. 시계를 차고 다니는 우리 문명인들은 빠른 시간에 성과를 보이는 전자의 아이를 훌륭한 아이(효율성이 좋은 아이)로 칭송하고, 후자의 아이를 모자란 아이(효율성이 좋지 않은 아이)로 걱정한다. 


자연을 보자. 꽃을 피우는 씨앗은 바르게 자라기만 하면 그 시기가 언제든 반드시 꽃을 피운다. 그 향과 빛깔은 서로 다를지언정, 분명한 자기의 한 시절을 만개하는 것이다. 사람의 씨앗이라고 해서 다를까.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기만 하면 그 시기가 언제든 사람도 반드시 꽃을 피운다. 꽃이 늦게 핀다 하여 다그치는 사람은 없다. 헌데 아이가 늦게 핀다 하여 다그치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을까. 


꽃이 늦게 핀다 하여 다그치는 사람은 없다. 헌데 아이가 늦게 핀다 하여 다그치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을까. 


얼마 전 내가 개인적으로 친애하던 음악인 신해철 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6세다. 그는 46년 동안 수 백 곡의 음악을 남겼고,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명곡들도 수 십 곡을 남겼으며,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삶에 고단해하던 많은 청년들을 위로해주었다. 시간에 쫓기며 살다 85세를 채우고 죽은 어떤 이와 그의 삶을 비교할 때, 신해철 씨의 삶이 더 짧았다고 시간으로 단순히 재단할 수 있을까. 


도입에 소개한 미크맥족의 언어에는 '시간'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지금'이라는 말은 있다. 시간은 언제나 지나가버리는 것이지만, 지금은 언제나 우리 바로 앞에 있다. 지금 행복할 수 있다면 내일의 지금에도 행복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인으로 살아가면서 모두가 지키는 '시간'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꽃을 피우는 일에는 그 생각을 조금 내려놓으면 좋겠다. 


2014. 11. 7. 멀고느린구름.




미크맥족 [Micmac, ― 族] |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샤 주, 뉴브런즈윅 주,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주 등 세 연안주에 사는 인디언들 가운데 최대 종족(→ 색인 : 매리타임 주).


이들이 쓰는 알공킨어 방언이 이웃 부족의 말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선사시대에 이 지역으로 뒤늦게 이동해온 사람들일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적으로는 1497년 존 캐봇이 최초로 만났던 인디언들일 것이다. 초기 연대기 작가들은 이들을 사납고 호전적이라고 묘사했지만 사실은 최초로 예수회를 받아들이고 뉴프랑스 백인 정착민들과 결혼한 인디언들이다. 17~18세기에는 영국군에 대항하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뉴잉글랜드 변방지역을 자주 급습했다. 20세기 후반에 백인과 미크맥족 혼혈 후손들은 1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는데 대개가 가난한 노동자였다.


미크맥족은 여러 씨족들이 모인, 미크맥어로 '동맹자'를 뜻하는 연합체를 형성했다. 각 씨족에는 그들 자신만의 상징물이 있었으며 지도력은 강하지 않지만 족장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전쟁지도자들조차 특출한 용맹을 과시하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세습계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노예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남자 전쟁포로는 고문당하다 죽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사로잡힌 여자와 아이들은 미크맥족에 동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살았다. 겨울에는 순록, 큰사슴, 작은 사냥감들을 잡았고 여름에는 물고기·조개를 잡고 해안에서 물개사냥도 했다. 겨울집은 자작나무 껍질이나 짐승 가죽으로 덮은 원뿔 모양의 천막이었으며 여름집은 여러 형태였지만 대개 장방형의 비교적 탁 트인 천막이었다. 옷은 동부 삼림지대의 전형적인 복장으로서 남자들은 허리에 간단한 옷을 걸치고 여자들은 몸에 붙는 옷을 입었지만 술 장식이 있는 길고 헐렁한 옷은 남녀 공용이었다. 이들은 카누를 젓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정교하다고만 알려졌을 뿐 이들의 의식이나 종교의 성격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출처 =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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