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1

1. 신애, 조금은 거짓?

by 장명진

1. 신애, 조금은 거짓?



요섭이 없어졌다. 신애는 161번 버스 안을 오늘도 서성였다. 그러나 무소득. 누군가 161번 버스 제일 뒷좌석에 그녀의 남편이 누워 있는 걸 보았다는 것이었다. 벌써 며칠 밤 전의 낡은 정보인데다가 남편은 버스를 탈 줄도 몰랐지만 신애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이 허름한 스웨터와 조금 얇은 겨울 바지만 입고 집을 나가서 실종된지 벌써 네 달이 넘어가고 있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정. 깊은 밤에 잠긴 도시에는 창백한 나트륨등만이 주저리주저리 허공에 걸려 있었다. 신애는 자옥한 어둠이 깔린 거리 위를 마냥 발밤발밤 걸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 어둠 어느 편에 절지동물마냥 몸을 돌돌 만 채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거리의 어둠을 쓸어내렸다. 신애의 마음까지 고적해졌다. 신애는 비탈길을 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비포장 비탈길이 있었다. 미처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 이 길. 그래서 타고난 본래의 얼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신애의 남편은 이 비탈길을 좋아했다. 보드란 흙 알갱이들과 발바닥에 닿는 촉촉한 감촉이 좋다 했다. 그래서 이 비탈을 오를 때 남편은 한 켤레밖에 없는 운동화도 벗어 던지고 네 살 박이 아이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하는 것이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자갈이 제 살갗을 파고들어 피를 터뜨려도 남편은 아픈 줄을 몰랐다. 마냥 웃었다.


비탈길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하늘만이 네모난 스크린처럼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스크린에서는 몇 시간 동안이나 같은 프로를 상영하건만 수 백 번 봐도 지루한 줄은 몰랐다. 신애는 숨이 막혔다. 밤이면 항상 남편과 함께 바라보던 저 우주를 머금은 별들, 반짝이는 생명들. 신애는 소녀시절 시골집 툇마루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이 세상 어딘가 별의 바다가 있어 그곳에 발 담그고 참방참방 자맥질할 수 있었으면 하는 낭만적 소망을 품었었다. 그러던 것이 남편을 만나 이루게 된 것이었다. 깊은 밤 남편과 함께 별을 올려보다 문득 남편의 눈을 바라보면 거기서 수없이 참방이며 빛나던 별들, 해맑게 출렁이던 남편의 까만 눈... 신애는 눈물이 날 뻔했다. 허나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이맘때쯤 집으로 돌아오면 저 방 창문엔 봄 햇발인 양 천진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 신애는 공동처럼 암울한 방을 쳐다보며 떠올렸다. 2층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는 신애의 뒷모습은 마치 낙엽 같았다. 까닭 없이 그저 뒤채이는 슬픈 생명.


방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 불빛이 잠시 끔벅이더니 이내 주위가 환해졌다.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전세 단 칸 방이었다. 이 정도 조그만 공간에서는 바닥에 흘린 김칫국물 자국이라도 어느 날 없어지면 표가 나기 마련이다. 하물며 같이 지내던 사람이 부재하다는 건 섬뜩한 일이었다. TV를 틀었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마땅히 볼 것이 없었다. 남편이 좋아하던 프로그램을 녹화해둔 테잎을 비디오에 넣고 재생단추를 눌렀다. TV유치원 하나 둘 셋.


네 달 전 그날 아침은 여느 날과 별반 다름없었다. 굳이 뭔가 특별난 일을 떠올려 보라고 강요한다면, 그동안 부엌에서 야금야금 음식을 훔쳐먹던 생쥐 한 마리가 죽어 나간 것쯤을 생각할 수 있을 뿐. 평범한 날이었다.


“요섭 씨! 그만 일어나요!”


요섭은 또 늦잠을 잤고, 기상과 동시에 습관처럼 TV를 켜 ‘하나 둘셋’이라는 아동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요섭은 언뜻 진지하면서도 연신 히죽거리며 TV를 본다. 그 모습이 여전히 철없는 소년 같다. 요섭은 자기가 서른이 넘은 중년의 사내라는 걸 알까? TV 속에서 꼬마들이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추는 것을 따라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착하지∼ 요섭 씨. 이불 개세요.”

“흐흥흥. 요섭이 착해. 흐흥 너무 착해.”


요섭은 착하다는 말만 덧붙이면 무슨 일이든 다 했다. 요섭은 종이접기라도 하듯 이불을 반듯반듯 정성을 다해 접는다. 어느새 이불을 다 개어 장롱 안에 가지런히 쌓아 놓았다. 그러더니 신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애는 이미 저 애 타는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아침밥.


“읍읍 신애야. 읍 나 기.. 김치.”

“요섭 씨. 이제 밥 먹는 거 정도는 요섭 씨가 알아서 해야죠. 하나누나가 밥 먹는 건 안 갈쳐 줘요?”

“읍 가…갈쳐 줘. 읍”

“그러엄, 앞으로 요섭 씨 혼자 먹어요.”

“읍읍 시… 시러. 시…신애…신애가 읍 먹여줘.”

“요섭 씨이, 착하죠요?”

“흐흥. 요섭이 읍 착해. 대빵.”


요섭은 뾰로퉁하던 얼굴을 동전을 휙 뒤집듯 순식간에 바꾼다. 자기가 하늘나라 천사라도 되는 양 앙글앙글 웃으며 김치를 집어 드는 모습이 얄밉다. 행복에 겨운 요섭의 활짝 벌린 입에서는 우스운 눈물처럼 침 방울이 굴러 나온다.


“읍 우리 야…야옹이도 바압. 신애야 읍”


아침식사를 끝낸 요섭은 언제나처럼 말한다. 야옹이란 것은 실제 고양이가 아니라 까만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그저 흔한 원통형 저금통일 뿐이었다. 요섭은 신애의 바지단을 꼬집듯이 엄지와 검지로 집고 흔들흔들이다. 신애는 빙긋 웃으며 백 원짜리 하나를 저금통에 넣는다. 요섭의 입이 헤 벌어진다.


신애는 TV에서 눈을 떼고 고양이 저금통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쓰다듬어 보았다. 이상스레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슬픈 것이었다. 남편이 떠난 이 공간의 모든 것이 갑자기 따사로워지고 남편이 그러했듯, 이 방의 사물들이 영혼을 지닌 것처럼 보게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사랑하는 것, 사랑받는 것은 무엇이든 살아있다고 여기는 이였다. 심지어 남편은 가을에 나들이라도 가면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은 죄다 주어다가 흙에 묻어주기까지 했다. 그이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자기의 귀한 이웃이며 벗이었다.


‘구름구름 지나가요/안녕안녕 인사해요/해님 방긋 나도 방긋/다 같이 인사하구 웃어요’


TV 밑의 서랍 장에서 남편의 공책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남편은 신애가 고아원에 가 일하는 사이에 관공서용 종이봉투를 만들거나 글을 썼다. 정신박약인 데다가, 약간 다리를 절룩거리는 지체 장애인이기까지 한 남편이 글을 쓴다는 걸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최근에는 고아원으로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기까지 했으니 꽤나 진진한 흥미거리가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신기하다’ 정도에 머물렀다. 남편의 글을 제대로 읽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길가의 가로수도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만히 그늘을 준다. 똑같이 길가의 가로등도 살아있다. 가로등도 가만히 우리에게 빛을 주지 않나.’

‘살아가는 건 결국 언젠간 그칠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눈이 금방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신애는 몇 번인가 남편의 글을 책으로 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찾아가는 출판사마다 우선 큰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꼭 정신박약아가 쓴 글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돈이 좀 된단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늘 헤헤 거리며 글을 썼고, 그리고 불쑥불쑥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가끔은 힘들다고 얘기해도 막무가내로 하루 종일 생떼를 쓰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도무지 그 사랑스러운 장애인을 믿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