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2

1. 신애, 조금은 거짓?

by 장명진

서에서 전화가 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신애는 잠결에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이신애 씹니까? 남편 실종신고하셨었죠? 오늘도 몇 건 보고가 들어왔는데 신원이 비슷해서요. 확인하시겠습니까? ”


신애는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뛰쳐나왔다. 한달음에 비탈을 뛰어내려가 막 출발하고 있는 버스에 기어코 오르는 것이었다. 신애는 좌석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가 주위 사람에게 들리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급하게 뛰어온 까닭도 있지만, 혹 남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컸다. 사실 남편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것은 이번으로 벌써 열세 번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네 달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친지들이나 어머니가 재혼 얘기를 꺼낸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허나 신애는 꿋꿋이 남편을 기다려온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시체일지라도.


서에서의 보고라는 것은 사실 그런 종류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길에서 동사한 부랑자나 신원을 알 수 없는 교통사고 사망자, 익사한 채로 떠올라 얼굴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이들. 서로부터 처음 전화를 받던 날 신애는 천국행 기차여행을 막 시작하는 아기천사처럼 기쁜 설레임에 연신 함박웃음을 피웠었다. 이제 요섭 씨의 천진한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겠지 하고. 그러나 막상 대면한 것은 깨진 머리에서 검붉은 피를 토사물처럼 쏟아낸 채 둥그렇게 눈을 까뒤집고 있는 너부러진 시체의 현상 사진. 순간 신애는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그리고 십 분 가량 미치광이 마냥 울며 웃으며 가슴 속의 응어리를 죄 토해내듯 울부짖었다.


“ 요섭씬 안 죽엇! 안 주거엇! ”


그러던 것이 시간의 물결에 희석되어가고 이제는 시체만이라도 찾길 바라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물에 휩쓸려가버린 남편의 시체조차 찾지 못하는 백수광부의 아내 마냥, 신애는 남편과 잇닿은 인연의 줄로 구슬피 공후를 켜고 있었다. 제발 그 물을 건너지 말라고, 죽어선 안 된다고.


경찰서는 한산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평생 몇 번 쯤은 와보는 데라지만, 신애는 웬만한 전과자보다 더 많이 이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로서는 신애는 곱살한 양의 얼굴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악질 흉악범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한번 서에 끌려온 사람이 신애더러 ‘어이구 형수님 또 오셨수’라고 빈정거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아, 이신애 씨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신애에게 형사는 거참 빨리도 왔다는 낯으로 말을 건넸다. 형사는 언제나처럼 신애를 제 취조의자 앞에 앉힌 뒤 캐비닛에서 두툼한 자료뭉치를 꺼내왔다. 또 이만큼이나 죽어나갔다는 얘기다. 텅. 자료 뭉치를 신애 앞에 내려 놓는다. 그 텅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 목숨의 무게라는 것이 고작 이 정도 소리밖에 지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겨우 저런 한 장의 종이조각으로 남겨지기 위해 사는 걸까 하고. 허나 그런 신애의 마음과는 달리 형사는 오히려 싱글싱글 웃고 있다. 신애의 섧은 남편 찾기가 그에게는 꽤나 쏠쏠한 흥미거리인 모양이었다.


신애는 생애 모든 희망과 절망을 포개어 제 오른 손에 걸어놓은 듯 떨며 자료뭉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넘길 때마다 나는 사스락 소리가 꼭 남편의 뒤척임 소리 같아 눈물샘에 방울방울 물이 고였다. 사진들은 하나 같이 끔찍했다. 사진 속의 남자들은 머리가 깨지거나 몸이 차에 짓눌려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창백히 얼어있는 것이었다. 수 많은 30대 남성의 시체 사진을 넘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참 덧없는 인생들이죠. 그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다는 게 가끔은 좋다라는 생각”


신애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형사가 심심했던지 툭 내뱉었다.


“그렇네요. 하지만 살아있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게 사람이다...입니까”

“그 이는 그런 생각을 빼앗아간 사람이었죠”

“죽음 말입니까?”

“네, 그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말이 참 우스워져요. 그 이는 갖고 있었거든요. 사람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잊게 만들어 주는 아니 그 자체를 우스운 것으로 만드는 힘. 사랑의 마음”

“하하, 네에 사랑할 땐 모든 게 좋아 보이는 법이죠”


형사는 신애의 말을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기며 냉장고에서 실론티 두 캔을 들고 와 하나를 신애에게 건넸다. 신애는 가만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자료뭉치의 남은 몇 장을 마저 넘겼다.


“오늘도 헛걸음 하신 모양이네요. 이거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아뇨, 없는 게 다행이죠. 전 아직 희망을 갖고 있으니까요”

“네에... 이제 오 개월짼가요?”


신애는 길게 한 숨을 쉬며 창 밖을 내어다 보았다. 모든 사물이 지워진 것처럼 하얗다. 첫 눈이 나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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