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3

1. 신애, 조금은 거짓?

by 장명진


- 회상. 신애와 요섭의 첫 만남 -


창 밖에는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허나 어린 신애는 별반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창 밖으로 갑갑하리 만치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들은 신애에게 소녀다운 감상을 허락지 않았다.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도 따분했다. 신애가 꿈꾸던 도시에서의 고교생활은 얼마나 꿈처럼 달콤한 것이었던가. 전원 속의 파릇한 풀밭들과 푸르른 나무들. 까만 밤하늘에 부스러진 유리알처럼 박혀 옛 이야기를 도란이던 수 없는 별무리. 우주바다에 펼쳐진 그 아스라한 별의 나라. 별자리의 전설들로 풋풋한 소녀의 감수성을 키운 신애였다. 촌에서 태어나 자라오며 한번도 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신애에게 도시라는 것은 이미 그 어휘의 어감서부터 심장을 콩닥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신애의 가슴 속에 가득한 자연의 내음, 그 너머에 자리한 도시는 무언가 꿈이 있고, 활기에 넘치며 세련된 인텔리들과 각종 문명의 산물들로 축복받은 꿈의 공간이었다. 신애에게는 다니던 모교가 폐교된다는 것도 물론 슬펐지만, 도시학교로 전학 간다는 사실은 그 슬픔을 천만번 꺾고도 남아 처치 곤란일 기쁨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신애가 도시학교로 전학 와 처음 마주한 것은 숨 막힘이었다. 조그만 교실 속에 숨 막히게 가득 들어찬 아이들. 사방팔방이 아파트로 도배되어 있어서 창 밖을 내어다 보아도 마땅히 눈 둘 곳이 없었다. 도시는 신애가 꿈에 그리던 인텔리들의 유토피아이기는커녕 돈과 명예에 굶주린 아귀들의 전쟁터일 뿐이었다.


신애는 커튼을 치려다 문득 놀이터 쪽에 눈길을 주었다.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이리저리 뒹굴 거리고 있다. 혼자 눈을 하늘로 뿌리기도 하고, 두더지 마냥 바닥을 파기도 한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사내아이는 얼마간 그런 행동을 반복하더니 갑자기 눈을 동글동글 빚어서는 신애에게로 던지는 것이었다. 눈이 창에 부딪혀 하얀 입김을 뿜으며 바스러져 창 아래로 흘러내린다. 물론 신애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은데.


“너 거기서!”


신애는 현관을 박차고 나가 사내아이가 있는 놀이터로 달음질이었다. 신애는 숨을 헐떡이며 놀이터에 발을 디뎠다. 아무도 없다. 눈이 날아와 미끄럼틀에 부딪혀 설탕가루마냥 흩날린다. 그 위에 겨울 아침 햇살이 미끄러져 형형한 별빛 무지개를 만든다. 신애의 눈동자에, 가슴에 그 무지개가 스며들었다.


“에헤헤, 에헤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사내아이가 깡총 뛰어나왔다. 신애는 그 사내아이의 웃음소리가 이상스레 경쾌하고 천진하다고 생각했다. 사내아이는 연신 앙글앙글 웃으며, 신애의 또래 답지 않은 포즈들을 철판 깐 양 해대는 것이었다. 신애 쪽으로 엉덩이를 실룩대는 가히 도발적인 행위를 하지 않나 싶으면, 또 혓바닥을 입 밖으로 죽어라고 내민 채 도시 집어 넣지 않는 것이다. 제 코를 위로 쿡 올리며 ‘저팔계에~~’ 하는 것도 절대 잊지 않는다. 신애는 첫눈이 오는 이 낭만적 하루에 실로 기상천외한 유치 찬란 쇼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신애는 사내아이의 호도깝스러운 행위를 관람하고 있노라니 터져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전깃줄 위의 참새가 깜짝 놀라 호르르 달아난다. 겨울 햇살은 이 하이얀 놀이터에 점점 다사로이 내리 붓고 있었다. 신애로서는 정말 오랜만의 티 없는 웃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신애가 그 사내아이를 본 것은 봉사점수를 따기 위해 찾아간 고아원에서였다. 사내아이는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무언가 쓰고 있었다. 시였다. 그것도 티 없는 동시. 신애는 몰래 그것을 건너다 보았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는 사내아이의 눈과 마주친다. 깊고 까아만 별의 바다. 문득 신애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사내아이는 생긋 미소 짓는다. 그 입가에서 하얀 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섭. 나이는 신애와 동갑. 아기였을 때 고아원 앞에 버려진 것을 데려다 키운 아이. 어릴 적부터 다리를 조금 절고, 정신박약증세가 있었던 아이. 고아원 원장으로부터 들은 사내아이의 정보였다.


“엄마, 저 이제부터 토욜마다 고아원 가볼려구요”


신애가 주말만 되면 무엇인가 들떠 고아원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자꾸 가기 시작한 고아원에 아주 정이 들어버려 신애는 대학을 사회복지학과로 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고아원에 가면 역시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요섭이었다. 꼭 요섭을 보기 위해 오기라도 한 듯이. 신애는 점점 요섭에게 이끌리는 제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나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이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요섭은 여러 가지 깊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정신박약이라고 해도 요섭은 10~13세 정도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가끔 요섭은 신애도 미처 생각하지 못 한 부분까지 생각을 했다. 가령 거리의 흔한 가로수도 우리처럼 자라나고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이나, 살아가는 건 결국 언젠가는 그칠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놀이를 하는 것이라는 것 같은. 신애와 요섭은 그렇게 하루하루 만나는 사이 서로에게 정이 들었고, 결국 요섭이 신애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요섭이 고아원을 졸업하고 사회로 첫 발을 내 딛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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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내가 신애라는 여자로부터 들은 대략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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