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베스트셀러를 집어 들었다가 낭패를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최근의 사례는 역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경우이다. 광고와 유명세를 책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는 베스트셀러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어디서 굴러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책장 종교학 코너에는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 버리기 연습>이 언제부턴가 꽂혀 있었다. 아마도 어느 중고 책방에서 싸게 얻어 왔거나 했던 것 같다. <생각 버리기 연습> 바로 왼편에는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 꽂혀 있었고, 오른편에는 서광 스님의 <유식 30송>이 놓여 있었으니 중간에 끼인 이 한 급 낮은 승려의 책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지지난 주쯤 마음이 무척 혼란스러워지는 일이 생겼다.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운 책은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쓰일 곳이 있는 법이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을 펼쳐 들었다.
일본식 불교의 천도 사상 같은 것이 들어 있거나, 그저 적당한 수준의 위로가 나열되어 있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였다. 의외로 담백하게 초기 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코이케 류노스케는 일본에는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초기 불교'의 수행법 '위빠사나'를 이 책을 통해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들어 쉽게 말해주고 있다.
'위빠사나'는 싯다르타가 온갖 고행과 명상 수행 끝에 찾아낸 수행법으로 부처가 깨달았다! 고 외치는 순간 적용하고 있던 바로 그 수행법이라고 전해져 온다. 한자어로 번역하자면 '관법명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명상법은 간단히 말하자면 '마음 지켜보기'다. 매 순간 바뀌고 일어나고 가라앉는 내 마음의 작용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이 꺼진 상태'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에 어지럽게 여러가지 욕망과 생각들이 일어나는 상태를 불이 일고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불을 근원적으로 끄는 것이 불교의 목표다. - 엄밀하게 말하면 싯다르타는 인간이 태어났기에 고통이 생긴다고 보았고, 인간이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즉, 윤회의 고리를 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평화의 상태라고 봤다. 이것이 이른바 해탈이며,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죽음의 상태와는 철학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
현대인을 위해 팔정도의 수행법을 불교 외적 용어로 풀어서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스님의 글을 읽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해탈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뭐 이리 쉬워~ 이게 무슨 명상이야. 라고 툴툴 거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그저 마음을 지켜본다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불교에서 이야기는 '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마음'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유식 사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 좀 더 깊은 공부를 원하는 사람은 서광 스님의 명저 <유식 30송>을 읽으시길. - 불교에서는 사람의 감각기관을 8개로 본다. 안이비설신의. 눈, 귀, 코, 혀, 몸, 생각. 이렇게 6가지는 5감과 하나의 의식으로 서양에서도 익히 알려진 사람의 감각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곧 우리의 마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유식 사상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이 3단계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갈파한다.
- 원시 불교의 정수를 다룬 희대의 명저를 저술하고도 서광 스님은 잠언가에 가까운 혜민 스님보다 인기가 없다
첫 번째 마음은 우리의 전두엽(신피질)이 만들어내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온갖 잡다한 욕망, 판단, 기억 등을 망라한다.
두 번째 마음은 '마나식'이라고 한다. 이 마음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경험하는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생각이다. 좀 어려운 개념이겠지만 사람의 생각은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해 일어난다. 남이 나에게 욕을 하거나, 내가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록 음악을 듣거나 하는 모든 순간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생각은 반드시 내 몸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마나식을 통해 그 모든 생각이 나에게서 일어났고, 내가 일으켰다고 착각하게 만들게 하는 장치가 바로 마나식이다.
세 번째 마음은 '아뢰야식'이다. 우리말로 하면 저장식이다. 모든 마음의 흔적이 저장되는 마음의 창고다. 내가 일으킨 첫 번째 마음 중 강렬한 것들은 이 아뢰야식에 새겨져서 내 생각의 패턴을 만들고, 내 성격을 형성해 간다. '아뢰야식'은 일종의 내 마음속에 가라앉은 생각의 먼지다. 새로운 생각이 내 몸에 들어오면 이 먼지가 반드시 묻어나게 되어 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으면 쌓여 있을수록 아집과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싯다르타는 '마음 지켜보기'를 통해 위의 두 번째 마음과 세 번째 마음을 지켜본 것이다. 첫 번째 마음을 아무리 지켜보고 반성한들 짜증만 나고 나는 변화하지 못한다. 두 번째 마음을 이해하고, 세 번째 마음을 바로 볼 수 있어야 진정한 마음 지켜보기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깊은 명상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 둘은 어찌 됐든 무조건 첫 번째 마음을 돌아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마 싯다르타는 붓다가 되기 위해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보았을 것이다.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일단 권하는 방법은 이 중 후자의 방법이다. 현대인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온갖 괴이한 책들이 나열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서가에서 그나마 이런 책은 많이 읽혀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라고 안도하게 하는 책이다. 다만, 한계는 자명하다. 이 책이 설정하고 있는 위빠사나의 목표는 위험하다. 결국 이 책은 생각 버리기를 통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줄여서 다시 열심히 일하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이것은 불교의 명상법을 전달하기 위한 코이케 류노스케의 방편설법 - 붓다가 설법의 대상과 설법 장소에 알맞게 불교의 철학을 전혀 다른 식으로 전달한 방법 - 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한 '젠(zen)' 운동은 말 그대로 마음의 헬스 같은 성격을 띤다. 상처받고 피로해지기 쉬운 마음, 명상으로 튼튼하게 하세요~ 같은 식이다. 궁극적으로 현대의 파괴적이고 욕망을 극대화하는 문명의 방식을 공고히 해주는 방향에 불교가 일조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허나 또 한 편으로 좀 안도가 되는 부분은, 어떤 의도에서든 위빠사나를 꾸준히 하게 되면 결국 마음의 평화가 주는 기쁨을 알게 되고, 그러한 기쁨과 평온한 마음은 개인의 욕망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개인들이 많아지면 사회의 욕망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많은 불교 승려들이 방편설법을 오독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명상을 권하는 까닭이리라.
<생각 버리기 연습>은 일단 마음 편히 권해도 좋은 책이다. 단, 자기계발서가 넘쳐나고, 명상 수행서 또한 넘쳐나며, 그것을 읽는 사람 또한 몇 백만 명에 이르는데도 사람들이 별반 달라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읽고 나서 '행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또 다른 마음의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라. 그러면 이 책을 읽은 것과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낫다.
2012. 3. 13.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