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즉문즉설 3
옳은 말씀입니다. 한국 여자들 너무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미국 여자들도, 프랑스 여자들도, 라오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여자들도 굉장히 이기적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남자들도요. 욕망을 지닌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지요. 어쩌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외계인이나 화성에 거주했던 생물체도 이기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아!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만은 예외라고 하신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드리겠습니다. 그런다고 제가 손해 볼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요.
먼저, 사실 관계를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한국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여자들은 군대를 못 갑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법률이 이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39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3조(병역의무) ①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 <개정 2011.5.24.>
② 이 법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병역의무에 대한 특례(特例)를 규정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병역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즉, 병역법에 규정되어 있는 형태로만)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습니다. 병역법은 여성의 군 복무를 지원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 남성의 의도대로 대한민국의 여성이 이타적으로 군대에 가려면 스스로 자원입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원하면 그대로 다 받아주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상당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경쟁을 통과해도 일반 병사가 아닌 복무기간이 더 길고 스트레스도가 높은 장교나 부사관으로 복무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겹의 장벽을 뚫고 가까스로 여성이 굳이 군인이 되어야 할 메리트가 있느냐? 물론, 별로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남성인 질문자에게 군대를 선택해서 갈 수 있는데, 가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3년의 복무기간을 거쳐야 하고, 가까스로 군인이 되었더니 주변에 자신을 제외한 98%의 군인이 여성이라면... 질문자는 군대를 흔쾌히 선택할까요? 그리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어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제 우리는 여성의 선택에 맡겨 놓아서는 대다수가 (현 상태의) 군대를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죠. 병역법을 개정해서 생물학적 양성 모두가 의무적으로 병역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나라 국군 병력도 60만에서 120만 정도로 두 배로 늘어나니 국방력 강화에 무척 도움이 되겠지요. 그리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사단을 새로 편성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생활관을 새로 건축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군 복무지를 새로 사들이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군복을 새로 생산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군대문화를 새로 설계하고, 여성 부대를 위한 작전계획을 새로이 제정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복무수당을 새로 편성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탱크, 여성 복무자를 위한 소총, 여성 복무자를 위한 전투용 생리대 ... 뭐 이 정도면 국방비를 3배 정도 늘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해도 좋다면 이제 다음 관문입니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병역법 개정 청원을 해야 합니다. 누가 하느냐고요? 당연히 여성이 군대도 안 가고 이기적이라고 한 (아마도 남성일)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이 민원을 넣는 거지, 잘 살고 있는 사람이 굳이 바꿔달라고 왜 민원을 넣겠습니까. 그러니 여성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기를 바라는 남성분들은 세력을 모아서 국방부와 국회의원을 압박해야 합니다. 이화여대 앞이나 페미니즘 단체 앞에 가서 소리를 질러봐야 천년이 지나도 여성들은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지 못합니다. 법을 바꿔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복무자를 위한 사단을 새로 편성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생활관을 새로 건축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군 복무지를 새로 사들이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군복을 새로 생산하고, 여성 복무자를 위한 군대문화를 새로 설계하고, 여성 부대를 위한 작전계획을 새로이 제정하고,
여러분들의 힘으로 병역법이 개정되어 여성들과 장애인들도 모두 저마다 처지에 알맞게 의무적 병역의무를 다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숙원인 군 가산점제도도 무사통과 가능할 것입니다.(전 국민에게 모두 가산점이 돌아가니 아무짝에 쓸모가 없겠지만요) 어떤가요? 해볼 만한 싸움이지 않습니까? 지금 바로 피켓을 들고 국방부와 국회의사당 앞으로 향하십시오! 응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지켜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전투를!
- 감히 예상컨대 페미니스트들과 싸우는 것보다 더 험난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군 수뇌부 남군들은 여성들이 군대에 들어오는 것을 '군대가 오염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들이거든요. 모쪼록 힘내시길! -
여러분을 군대에 동원시켜서 청춘의 두 페이지를 앗아가버린 건
국가이지 여성계가 아닙니다.
아, 제가 응원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현재의 국가 강제 징집제를 반대합니다. 여성에게만이라도 그 폭력적인 국가 동원제도가 그나마 적용되어 있지 않다는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남자에게 부여된 강제 징집제만 바꾸면 되니까요. 절반 정도의 노력이 이미 해소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공무원이 받는 연금 혜택이 부럽다면, 공무원의 연금 혜택을 없애는 게 현명한가요? 직장인에게도 공무원에 준하는 연금 혜택 제도를 만드는 게 현명한가요? 모두 함께 헬조선으로 배를 띄우자고 외치시는 분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좋은 것은 나누는 게 좋겠죠.
그렇다면 억울한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은 이화여대에서 시작되어 페미니스트들이 이미 10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모병제 전환 운동 에 동참하는 게 훨씬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을 군대에 동원시켜서 청춘의 두 페이지를 앗아가버린 건 국가이지 여성계가 아닙니다. 모쪼록 국가에게 뺨 맞고 애먼 여성계에게 화풀이하지 마시고, 멋지게 국가와 싸우세요. 싸나이 가오가 있지 않습니까.
* 2002년 이화여대 징병제 반대 운동 관련 과거 기사 참조
"군대안가는 여자가 왜 거부운동을.."(오마이뉴스. 2002)
사이버마초, 이화여대 총학을 테러하다(한겨레. 2002)
국가 강제 징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되어 양성 모두가 공평하게 자기 신념에 의해 군 복무를 '선택'할 수 있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반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겠지요.(이건 뭐 생겨나면 다시 또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 가야 하겠죠) 어쩌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군에 자원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이니 만큼 개인의 자유가 줄어드는 것보다(여성도 강제 징집 대상이 되는 것),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이(남성도 군 복무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더 바람직한 사회발전의 방향 아니겠습니까.
* 참고 기사들
"모병제 불가? 국방부가 원하는 건 복무연장"(오마이뉴스)
모병제 도입하면 ‘흙수저’ 자녀들만 입대한다?(한겨레)
남경필 "모병제 전환… 사병 월급 200만원으로 올려야"(한국경제)
[기자수첩] '尹일병' 재발 막을 해법은 모병제?(조선일보)
이 논의와는 별개로 저는 장교로 3년 6개월간 군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책무를 맡고 있는 모든 (양성) 군장병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노고가 충분히 인정받고, 보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누군가 다른 타인의 권리와 혜택을 빼앗는 것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지겹게도 얘기되고 있는 군 가산점제만 해도 군 복무 장병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국가 공무원 시험 응시자에게만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매년 발생하는 수십만 명의 전역자 중 몇 퍼센트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까요?) 엉터리 제도이지요.
차라리, 병역을 더 이상 강제적 '의무'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고용'이라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가 필요에 의해서 성인 남성을 고용하는 것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의무는 국민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에게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처럼 음료수 값을 지불할 게 아니라, 정식 공무원 임금에 상응하는 임금과, 국가 복무 연금 혜택, 호봉제 적용, 생명 수당, 명예 부여 등이 더욱 합리적인 방안입니다.
어떻게 제정이 어려운 국가에게 또 그런 부담을 지우느냐고요? 네, 여성 의무 복무를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비용의 절반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요. 대한민국 싸나이 여러분, 우리도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봅시다. 너~무 국가를 생각하셔서 손해 보시잖아요. 최근에 국방비리 터진 것 보셨죠? 그 돈을 매해 절약하면 병사계급 월급을 현실화하고도 남을 것 같네요.
* 방산비리 1조원 + 핵심기술 이전 불발 한국형 전투기 사업 18조 + K 계열 무기 부실 약 18조
-> 국방 예산 낭비 약 37조
| 국군 사병 규모 약 45만명(전체 63만 국군의 70%) X 1인당 연봉 1,000만 원 책정 시 = 연 4조 5천억 소요
| 2016년 현재 국방 예산 38조 7995억, 2017년 약 40조원으로 증액 예정
=> 국방비의 약 10%로 사병 월급 현실화 가능 / 별도 증액 시 국가 총 예산 약 380조의 1% 수준 투자로 가능
(국군 사병 월급 현실화에 대한 여론 저항 사실상 없음)
=> 21개월 복무에 1,000만 원(연봉 약 500만 원 수준) 국가복무 수당 일괄 지급
+ 60세 이후 연금 혜택 1,000만 원의 1+1 제도도 충분히 운용 가능. (군 가산점 됐고 돈을 다오!)
자, 정리하겠습니다. 질문자 남성분, 여성이 이기적이라고 억울해하며 페미니스트들에게 화내지 마시고, 본인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답게 마음껏 이기적이 되셔서 국가에게 병역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제대로' 청구하세요 : ) 그럼 이만.
뱀발(이 글을 굳이 읽어주실 여성분들께) :
군 병역의무 관련 논쟁에서 사용할 수 하나의 팁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방법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단지 한 가지의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더 제공하는 차원입니다.)
사실, 남성들과 군복무 관련 논쟁을 할 때 굳이 임신/육아의 고난, 여성으로서 삶의 고단함 등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어차피 한국사회에서 여성 의무복부는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모병제 전환히 훨씬 현실적이겠죠. 그러니 그냥 마음 편하게 나도 국가에서 받아주면 의무복무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나도 나라를 지키고 싶다. 근데 나라가 불러주지를 않아~. 너가 좀 불러주라고 부탁 좀 해라."
그리고 우려하시는 것보다 군복무라는 게 그렇게 극한체험인 것도 아닙니다. (전역한 남자들이 하도 원더랜드로 썰을 풀며 신비화 시킨 게 사실의 절반은 넘을 겁니다) 물론,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으나 결국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막상 해야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만약에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 여성 의무 복무제가 실현이 된다고 해도, 120만 명의 상비 전력을 운영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기에 군복무 기간을 극적으로 단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수시로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18개월입니다.) 또한 현재 남성들이 겪고 있는 군생활의 많은 문제점들이 군내의 폭력적인 마초문화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므로 오히려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군에 합류하면 군 문화를 혁신적으로 변혁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군에서 문제가 되는 여러 문제들(성폭력, 안정성, 마초적 문화, 남성 중심 복무환경, 남성 지휘관 위주 군 지휘체계 등등등)이 해결된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긴 인생에서 1년 쯤 군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람도 있고요. (물론, 적극적인 평화주의자나 종교적 신념이 있는 분은 예외. 저는 평화주의자이지만 실제 평화를 지킬 힘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직업 군인으로 자원한 케이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결국 이 나라는 여러분을 불러주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