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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Sep 17. 2017

더 테이블 / 하늘은 높고 사랑은 흔들린다

김종관 <더 테이블>



하늘은 높고 사랑은 흔들린다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사랑은 흔들린다. 까페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여러가지 사랑의 우연한 풍경들을 목격하게 된다. 몇 해 전 나는 서울 안암동에서 '좋은커피'라는 이름의 핸드드립 전문 까페를 맡아 일했었다. 그곳에는 네 개의 원형 테이블과 하나의 커다란 바테이블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테이블이 채워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하나, 혹은 둘 정도의 테이블에 사람들은 서로를 보고 마주 앉았다. 안암동을 찾은 연인들 중 일부가 그 다섯 개의 테이블 중 하나에 머물다 떠났다.


 

모든 사랑은 머물다 떠나게 되어 있다. 사람은 결국 죽게 되어 있으니 어떤 사랑도 영원하지는 않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름 모를 세계의 테이블에 잠시 앉았다가 떠나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를 삶을 살고 있다. <더 테이블>은 우리가 머물다 가는 바로 그 테이블에 시선을 둔 영화다. 테이블은 곧 시공간이다. 테이블은 어떤 삶이 집약된 한 순간인 동시에, 세계 속에서 우리가 잠시 머무는 삶의 무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랑은 어려서 우습고, 어떤 사랑은 애틋하여 아프며, 어떤 사랑은 서늘해서 슬프다. 또 어떤 사랑은 담담한 만큼 어리석다. <더 테이블> 속에 스치는 어떤 사랑의 풍경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옛사랑의 기억, 우연한 시작, 현실적 구원, 낭만과의 작별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아서 그렇다. 옛사랑을 잊지 못하던 우리는 어느날 그 사랑과 진정으로 결별한 후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낭만적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 허나 우리는 뜨거운 사랑을 통해 좀처럼 구원을 얻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은 뜨거운 것이 아닌지도 몰라 라고 깨달으며 현실적인 구원을 찾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사람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 수록, 눈이 내리고 차가워질수록 우리 마음 어딘가에서 식지 않은 열기가, 희미한 불씨가 자작자작 빛난다. 그 불씨를 우리 스스로 밟아 꺼버릴 때 비로소 우리 생의 낭만적 사랑은 끝이 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일까. '사랑'이란 단어는 가장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에는 기쁨도, 슬픔도, 기대와 후회도, 만남과 이별도 모두 함께 담겨 있다. '우주'라는 단어가 너무 커다라서 사실은 우주의 무엇도 설명하기 힘든 것처럼 사랑이란 말도 그렇다. 사랑은 곧 마음의 우주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있을 때는 시간의 모든 것이 되고, 사랑하는 그대가 내 앞에 있을 때는 공간의 모든 것이 된다.


사랑은 청춘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40년 이상을 산 이들도, 가정을 이룬 이들도 모두 저마다의 사랑을 하며 산다. 사람의 평균 생이 80년이라고 치면 청춘 이후의 나머지 40년 정도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흔히 '통속'이라는 말로 꽁꽁 묶어버리고는 한다. 까페의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엿들어보면 놀랍게도 상당히 '어린 사랑'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통속이 되고 마는 것일까. 낭만적 사랑을 포기했던 어른들은 다시 오래전 봄날의 풋사랑으로 돌아가고픈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일까. 마치 물의 순환처럼 사랑도 큰 바다로 흘러갔다가 다시 조그만 비가 되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일까. 사랑의 시작은 곧 삶의 시작과도 같아서 우리에게 죽지 않고 윤회하는 기쁨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쁨을 배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린 사랑'으로 돌아가야 하겠지.



하늘은 높고 사랑은 흔들린다.
어차피 해야할 사랑이라면 하늘이 흔들려도 사랑은 높았으면 싶다.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구태여 저 먼 바다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우리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별하고 말 것인데, 서로 사랑하려고 손을 내미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머릿 속에서 생존본능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든 생명체가 우리 은하처럼 나선형으로 순환하며 아득한 먼 곳으로 영원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어둠으로 이끄는 중력보다 우주가 탄생한 기쁨의 폭발력이 더 큰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개인의 의지를 벗어난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인간은 이 별에서 끝없이 사랑할 운명을 지닌 채 태어나버렸다.



다시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사랑은 흔들린다. 어차피 해야할 사랑이라면 하늘이 흔들려도 사랑은 높았으면 싶다. 지구의 하늘이 흔들리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아주 먼 우주 어딘가에서 빛나는 별과 같은 사랑을 했으면 싶다. 낭만이라는 말도, 통속이란 표현도 가닿지 않을 곳에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우리의 사랑이 신의 계획표 속에 쓰여 정정 불가능한 것이라 믿으며, 기쁨과 슬픔, 기대와 후회, 만남과 이별을 모두 끌어안고 가는 것이기를 바란다. 비록 당신과 내가 지금 서로 멀리 있을지라도. 우리가 어느날 그 테이블을 떠나와버렸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흔들리지 않고 빛나는 모든 것은 사랑일 테다.


2017. 9. 1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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