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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고느린구름 Jan 29. 2018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어느 하루의 이야기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일천구백칠십 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 김창완밴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중 -


그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봄이었다. 토요일이거나 일요일이었고, 나는 철원에서 보고픈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원의 봄은 더디고 늦으니, 아마도 5월 초나 중순 즈음이 아니었을까. 창문 너머로 여름 해변의 모래알 같은 아침햇살이 스며 들었고, 라디오에서는 김창완밴드의 이 노래가 나왔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바둑 두는 할아버지가 툭 내뱉은 선문답 같은 이 가사에 깜박 눈물이 고였다.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는 이천 년이었다.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었다. 일곱 살의 나는 서울에 있었고, 열두 살과 열여섯의 나는 부산에 있었다. 오늘의 나는 철원이다. 문득 생각했다. 어떻게 그 순간들 속의 내가 모두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올 수 있었을까. 라고.


바보 같은 질문이다. 누구나 일곱 살의 내가 자라 스무 살의 내가 된다. 모두 그런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는 우리가 동일한 한 사람이라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죽 이어가며 곡선을 그릴 때, 그 곡선이 가끔 서로 부딪치거나, 묶이고, 나란히 가고, 이어질 때 인생의 드라마는 태어난다. 애초에 인생이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거나, 혹은 단지 점에 불과하다면 드라마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혹시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옛날에 지녔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해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어느 시간으로부터 '변화'했을 뿐.


지나온 과거는 아득한 수평선을 향해 이어진 파도의 곡선처럼 구불구불 내 기억의 소실점을 향해 이어져 있다. 그 곡선을 타고 유유히 서핑을 해보면 내 지난 삶 역시 한 편의 드라마로 재생된다. 화질이나 음향 상태가 전혀 좋지 않은 드라마라서 그때그때 재해석을 해가며 볼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일곱 살의 나는 나비를 좋아했다. 열두 살의 나는 전학간 여자아이를 그리워했고, 열여섯의 나는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었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느리게 봄이 오던 철원의 자취방에서 창가에 어린 햇빛 조각들을 검지 손가락 끝으로 건드려보며 나는 영영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누군가가 보고파도, 사랑스러워도, 없이는 살 수가 없어도 이해할 수는 없다. 나는 단지 지금의 나고, 보고픈 이는 보고픈 이일 뿐이다.


그 무렵의 나는 서른 혹은 스물아홉이었다. 시간이 가고 계절이 쉬이 오는 게 두려웠다. 오늘 인천의 빌라에 앉아 김창완밴드의 노래를 무한히 되풀이 해 듣고 있는 나는 시간이 가는 게 그닥 두렵지 않다. 이것은 성장이 아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옛날에 지녔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해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어느 시간으로부터 '변화'했을 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과거를 드라마로 간직한다. 넘실거리는 이야기의 선을 잇는다. 빛나던 날의 냄새를 떠올리고 그때 내가 거기에 있었다고 말한다. 사랑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일과는 별개로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스무 살은 스무 살을 살고, 서른 살은 서른 살을 산다. 후드득. 오전 11시의 햇볕이 고드름을 녹여 떨어뜨린다. 오늘의 내가 멍하니 여기 있다.


2018. 1.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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