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팩션 04
“명심하십시요. 임금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며, 누군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오로지 하늘과 백성의 뜻입니다.”
최언휘는 훗날 혜종이 되는 태조 왕건의 장남 왕무에게 임금의 도리를 가르쳤다. 경주 태생으로 어린 나이에 유학하여, 885년 18세의 나이로 당나라의 빈공과에 급제한 뒤 당조에서 24년의 세월간 관직을 맡았던 그였다. 유교의 본고장에서 최언휘는 공자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단단히 새겼다. 공자의 가르침은 담박했으나 이를 실천하는 일은 어렵기 그지 없었다. 공자는 ‘인(仁)’을 말했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더욱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었다. 부자는 빈자에게 인을 베풀고, 어버이는 자식에게 인을 베풀며, 지아비는 아내에게,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을 베풀어야 한다. 인한 마음, 즉 어진 마음은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아량을 지닐 때 생겨나는 것이었다.
신라는 오랜 세월 신분제의 폐해 속에 물들어 자기 신분 밖에 있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임금은 임금의 것만, 귀족들은 귀족들의 것만을 살폈다. 백성은 자연스레 도탄에 빠졌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왕을 하늘이 용서할리 없었다. 최언휘는 신라 왕조의 몰락을 예감하고 있었다. 사람이 천명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늘의 뜻은 새로운 나라, 인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원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고려에 귀화한 것은 천명에 순종하기 위해서였다.
태조 왕건은 과연 귀가 열려 있는 군주였다. 유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최언휘는 태조와 처음 만나던 날 그의 앞에서 간언을 올렸다.
“임금이 신하와 백성의 마음을 두루 얻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마음을 얻고자 하시면 부디 신하들의 간언을 가까이 하시고, 아첨을 멀리하셔야 합니다. 또한 항시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어 때에 알맞게 백성을 부리고, 가급적 부역과 납세를 경감해주시며, 농사의 어려움을 덜어주시면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은 평안해질 것입니다. 또한 임금께서는 후세에 널리 성군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태조는 한 마디로 최언휘를 반겼다.
“공의 뜻과 제 뜻이 같습니다.”
최언휘는 비로소 뜻이 맞는 군주를 만나 기쁘기 그지 없었다. 먼 타국에서 긴 세월 공자의 뜻을 가슴에 품어온 보람이 이제서야 생겨나는구나 싶었다. 최언휘는 태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자의 정신을 고려의 문화 속에 새겼다. 더불어 왕위를 계승할 세자의 교육까지 도맡게 되었으니, 바야흐로 고려는 진정한 왕도의 나라로 바로 서는 것이었다.
최언휘는 때때로 당에서 함께 유학했던 최치원과 최승우를 떠올렸다. 한 친구는 가야산에 은거했고, 한 친구는 견훤의 곁으로 갔다가 죽음을 맞고 말았다. 서로가 간 길은 달랐으나 그 마음에 품은 뜻은 하나였으리라.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나라, 어진 군주가 하늘과 백성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나라… 최언휘는 문우들의 뜻을 이 고려에서 실현시키고 싶었다.
최언휘를 등용한 태조는 최언휘의 뜻을 가득 담은 ‘훈요 10조’를 남기고 승하했다. 불국으로서의 신라를 계승하는 한편, 그 배면에 유교의 가르침이 녹아들어 있는 유훈이었다. 최언휘는 생각했다.
이것으로 족하다. 이제 후대의 왕들이 이 가르침에 따르면 족하다.
태조의 뒤를 이어 장자인 왕무가 혜종으로 즉위했다. 혜종의 스승이었던 최언휘는 혜종의 즉위를 지켜본 후 눈을 감았다. 더는 원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애제자 혜종은 스승을 따라 즉위 다음 해에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최언휘의 뜻은 고려의 왕들과 유학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6. 2월. 멀고느린구름.
* 훈요 10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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