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유라시아 역사 기행>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서 마중나온 김정일 위원장의 손을 맞잡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었다. 대학교 기숙사 휴게실에 앉아 낡은 브라운관 티비로 그 장면을 함께 보던 남학생들도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기쁨이 역력했다. 사회에 나가서 일하게 될 무렵에는 평양의 어딘가에 직장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한 친구는 말했다.
그러나 10년 후, 나는 엄혹한 GOP의 초소에서 연평도를 향해 날아드는 포탄을 생중계로 보아야만 했고, 국방부에 파견 근무를 다니던 시절에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비상이 걸린 지휘통제실 한 켠에 앉아 대한민국에 드리워지는 전운을 가장 가까이서 느껴야만 했다.
1950년 6월 25일 이후, 대한민국은 오랜 세월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지나 영국에 닿을 수 있었다는 것을, 조선시대에는 말을 타고 국경을 넘어 중원에도 가고, 몽골의 초원도 내달렸다는 것을, 우리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상상력으로만 떠올려야 했다.
대한민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다. 관점에 따라서는 유라시아의 종착점이자, 출발점이다. 이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판문점 선언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다시 수십 년의 세월 만에 당당히 저 넓고 먼 대륙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강인욱 교수의 <유라시아 역사 기행>은 우리에게 대륙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을 제공해주는 양서다. 오랜 세월 우리 역사학계는 강단 사학과 재야 사학으로 나뉘어 모종의 진영 싸움을 반복해왔다. 교수 중심의 강단 사학은 문헌학에 중점을 두고, 우리의 역사를 주로 한반도 지리 내로 한정해 연구해왔고, 재야 사학자들은 종종 단군신화에 기반한 지나친 상상력으로 한민족의 역사 영토를 서아시아 지역까지 확대하곤 했다.
너무 좁혀지거나, 너무 넓혀진 양 극단의 생각을 강인욱 교수는 ‘문명의 교류’라는 키워드로 조화롭게 중재한다. 강인욱 교수에게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을 거점으로 수천 년간 생활해온 유목민족이 한민족의 DNA를 지니고 있느냐 없느냐(즉, DNA의 교류)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일대의 파지리크문화 유적에서 신라의 적석목곽분(시신을 나무상자에 넣은 후, 그 위에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드는 방식)과 동일한 형식의 무덤들이 출토되어도 섣불리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신라인의 후예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구려에서 개발된 등자(말을 탈 때 발을 걸어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만든 장치로 자건의 페달 같은 것.)가 터키에서 쓰이고 있어도, 고구려가 유럽의 관문을 정복했으리라고 추정하지 않는다.
강인욱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문명의 교류다. 고대와 중세에는 오늘날처럼 보이지 않는 전파의 강물이 전세계로 흐르지 못했다. 전기가, 열차와 비행기가,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바로 유라시아 대륙 초원의 유목민들이 ‘문명의 강물’이었다. 스키타이, 흉노, 몽골(칭기스칸 시대) 등으로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그들은 그 이름의 변화처럼 언제나 변화무쌍하게 유라시아 대륙 위를 움직이고, 흐르고, 달리며 이곳의 문명을 저곳으로, 저곳의 문명을 이곳으로 전파했다. 그로 인해 유라시아대륙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소통하며 서로를 받아들여 고도의 문명을 축적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전기가, 열차와 비행기가,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바로 유라시아 대륙 초원의 유목민들이 ‘문명의 강물’이었다
강인욱 교수는 강조한다. 유목민족을 우습게 여기고, 배척하며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나라는 곧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반도 동남쪽 해안가의 변방에서 싹텄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밀은 어쩌면 저 멀리 서아시아 지역의 파지리크 문화를 닮은 적석목곽분과 흉노제국에서 기원해 신라에서 꽃피워진 황금문화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라인들은 변방에 있었기에 더더욱 대륙의 문화를 품으려 애썼다.
유라시아 대륙이 우리 눈앞에 다시 현실로 놓였다. 한류는 이미 대륙의 끝까지 물결쳐가 유라시아인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이 대륙의 사람들을 알고 있는가. 혹은 알려고 하는가.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고 있는가. 우리는 늘 대륙으로 나아갈 것만을 생각한다. <유라시아 역사기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문득 떠올린다. 대전환은 우리가 먼저 상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 노력했을 때 비로소 찾아왔음을. 출발점에 선 평화와 공영의 시대, 우리는 이제 저 유라시아 대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18. 6. 21. 멀고느린구름.
인천 남구에 위치한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 홈페이지에 한 달에 1-3회 책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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