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글렌 등 4명 <유엔미래보고서 2040>
이 책을 펼쳐서 책날개에 쓰인 공동저자들의 프로필을 읽으며 묘한 공중부양의 향기를 느꼈을 때, 곧바로 책을 덮었어야 옳았다. 하지만 한때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이 책을 보았던 기억 때문에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꾸역꾸역 넘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유엔(UN), 즉 반기문 사무청장의 전 직장에서 발행된 책이 아니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유엔대학교라고 하는 미묘한 기구로부터 후원을 받았을 따름인 ‘밀레니엄 프로젝트’에서 발간한 <미래의 국가>라는 책의 재가공품이다. 주요 저자인 제롬 글렌은 세계적인 미래학자라고 하는데, 트위터의 팔로워 숫자가 나보다 적다.
이실직고 하겠다. 이 책을 340페이지나 읽은 것이 원통하다. 그러나 오직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이 글이 쓰여지고 있다고는 부디 상상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꼭 유엔이 아니라도, SNS 팔로워 숫자가 1천 명을 가까스로 넘기는 학자라도 미래는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예측하는 미래는 어딘가 좀 얄팍하다.
디지털 혁명을 통한 교육의 인강(인터넷 강의)화,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컴퓨터에 저장하는 수준으로 발달하는 뇌과학, 무인 자동차 보편화로 교통사고 획기적 감소, 신체내부를 돌며 컴퓨터 백신처럼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나노기계, 한 알만 먹어도 영양이 보충되는 식품의 개발, 기후 악화와 대체에너지 시대의 도래, 3D프린터가 가져올 대량 제조업의 퇴조 등등 이 책이 펼쳐놓는 미래는 우리가 대중매체를 통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적어도 미래‘학(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면, 지금의 기술이나 사회 현상을 바탕으로 추측 가능한 것들을 넘어서서 비판적으로 우리 인류의 미래가 어떠해야 할지를 학자 개인의 관점에서 디자인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엔미래보고서>는 그런 어려운 구상 따위는 독자들이 알아서 하라며, 단지 가능한 상상들을 끝도 없이 나열한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미덕은 그 학자적 무책임함에서 생겨났다. 딱히 인류의 미래 같은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제법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의 이슈들을 느긋하게 누워서 “흐음... 그렇단 말이지.”라며 피식피식 넘길 수 있다. 그다지 세세한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지 않기에 미래가 이 책대로 되지 않아도 그만이다. 다만, 순간이동 장치만은 안전하게 2040년 즈음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순전히 내가 한 번이라도 타보고 죽었으면 해서다. 타임머신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게 아쉽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을 340페이지나 읽어버렸기 때문에 원통해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2018. 5. 23. 멀고느린구름.
인천 남구에 위치한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 홈페이지에 한 달에 1-3회 책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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