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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Oct 18. 2018

오직 모래 알갱이만이

어느 하루의 이야기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뒤의 첫 글이다. 인천에 얻은 집은 외벽이 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어 새로 낸 책도 기념할 겸 '오리빌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리빌라에서 지낸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일상은 아직 어수선하다. 서울 연남동 생활의 감각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았고, 오리빌라는 이방 저방 동시에 인테리어를 진행 중이어서 보기에도 어딘가 불안정하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도 이곳에도 있지 못하는 사람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마치 내 필명처럼 구름 같은 신세다.


인생은 또 어떠한가. 한 줌의 재산은 허망하게 사라져버렸고, 다시 쌓을 방법은 묘연하다.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라고 호기롭게 외치기에는 내 나이의 무게가 이제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나는 지금 어디에 도착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군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새로이 민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파주에 있었고, 서른 한 살이었다. 파주는 새벽이면 임진강의 수증기가 온 세상을 덮어버리곤 했다. 어떤 날은 불과 열 걸음 앞의 아파트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파주를 사랑했다. 그 묘한 시야감이 무진기행을 닮았다며 낭만적이라 여기기도 했었다. 그랬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젊었다. 오가는 청춘의 잔물결 사이에 두 발을 푹 담그고 있었다.


그로부터 7년.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성취한 것은 영 어중간하기만 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재미 없게 산 것은 아니었다.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고, 삶을 즐겼다고 여긴다. 다만, 그렇게 산 삶의 결과가 지금이라 여기니 왠지 정성껏 쌓은 모래성이 스르르 무너져버리는 기분이다. 구름 위 어딘가에 성별을 알 수 없는 신이 있어, "니가 고작 모래성이나 쌓으며 살았으니, 그리 무너지는 게 당연하지."라고 말한다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해수욕장에 놀러 가면 바다에 뛰어들기보다 거의 대부분 모래톱에 앉아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그 옛날 언젠가 어느 때 내가 쌓은 수 십 채의 모래성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알려고 한 적도 없다. 오직 모래성을 쌓기 위에 물에 젖은 소금가루 같은 모래알들을 만졌던 감각만이, 손가락 끝 어딘가에 나노입자 크기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난 내 인생이 내게 남겨놓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노입자 크기의 감각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은 그 허망함에 질려 앞서서 생의 무대를 떠난다. 하지만 그러고서 그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기에, 우리는 떠나지 않는 한 이 무대 밖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명확히 알 길이 없다. 혹은 우연히 그들 중의 누군가가 돌아와 무대 밖의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우리는 그 말을 믿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할 뿐이다. 창 밖에서 멀리 떠나는 사람들을 태운 항공기의 비행음이 천천히 들려온다. 어릴적 자주 들었던 뱃고동 소리와 닮은 데가 있다. 멀리 가는 것들의 소리는 서로 닮은 것일까. 그래서인가, 앞서서 생의 무대를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크고 묵직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탕 한 알 같은 손으로 모래성을 쌓다가 이따금 먼 바다를 내어다본다. 저절로 목이 길게 빼어지고, 눈동자는 크게 흔들린다.


솨아솨아-


도무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소리, 바다의 소리, 지구의 소리가 나를 누르고, 감싼다. 무섭고 애틋하다. 어린 나는 바다의 넓이와 수평선의 아득함을 감당할 수 없어 다시 모래성으로 눈길을 돌린다. 오직 내 손가락 끝에 닿은 모래알갱이의 감각만이 내 생명을 실감케 한다.


2018년 초의 어느 하루.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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