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읽기
정의당이 살아남았다. 21대 총선 결과 정의당은 20대 국회 때와 같은 6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 너무나 서글픈 현실이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3%대로 내려앉았을 무렵, 이대로는 정말 이 정당이 고약한 악플러들의 저주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에 브런치 공간에는 잘 쓰지 않던 장문의 정치비평글을 썼다. '정의당 유감' 이라는 낚시성 제목을 단 글은 여러 사람들의 공유에 힘입어 2만 5천 여명에게 읽혀졌다. 댓글에는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게 낫다는 내 평소의 기조를 버리고, 모든 댓글에 정성껏 대댓글을 달았다. 내가 무얼할 수 있겠냐만은 무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내 글이 정의당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소 지지하다가 돌아섰던 분들의 마음은 1센티미터라도 당겨올 수 있지 않았을까? 4월 15일 늦은 밤, 심상정 의원의 사진 옆에 당선 확실 마크가 붙는 것을 보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지지율은 9.67%, 지난 20대 총선의 7.2%에서 2.47% 상승한 수치다. 황당한 사실이지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차라리 없었다면 정의당은 과거 선거제상으로 비레의석 1석을 추가로 확보했을 것이다. 거대 양당의 반민주적 위성정당은 결국 소수정당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가버리고 말았다.
20년 진보정치를 통해, 무상급식, 건강보험혜택 확대, 중고교 의무교육, 최저임금제, 실업급여, 장애인등급제 폐지, 반값등록금, 여성고용할당제, 비정규직 차별 축소, 인권보호법 강화, 동물권 개념 각인, 지속가능한 생태사회 의제 강화 등등등 우리 사회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한 주요 의제를 민주당보다 늘 한발 앞서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거리와 국회에서 싸워왔던 진보정당의 2020년 성적표는 무척 쓸쓸하다. 서글픈 현실이다.
심상정 대표의 눈물을 보며 나도 울었다. 만감이 교차할 비통한 심정에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함께 고생한 동지들과 원없이 눈물을 흘리시기바란다.
그리고 다음, 정의당은 또 변함없이 황량한 대한민국의 정치지형 위에 다시 서야 한다. 정의당에 보내준 250만여 표의 의미는 "무너지지 마세요." 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무너지지 마세요. 다시 일어나세요.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21대 총선에서의 여러 난제들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비단 정의당뿐 아니라, 여러 진보정당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총선 기간 내내 유례없이 발벗고 정의당과 진보정당을 응원했던 사람으로서, '정의당은 왜? 이런 성적표를 받았을까?'라는 질문에 답해보았다.
1. 유권자에게 후보자를 설득시킬 시간은 없다
비례대표 1번 류호정 후보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나는 류 후보가 진보정당의 차세대 주자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오해들을 깊게 판단해보고, 류 후보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펼치며 살아내온 청년인 점까지 고려하면 일견 감동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총선기간, 게다가 양당이 독점하다시피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후보자를 유권자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볼매(볼수력 매력)는 선거에서 통하지 않는다. 거대 정당들이 유력한 셀럽들로 비례대표의 면면을 채우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속성 때문일 것이다.
정의당은 류 후보에게 덧 씌워진 오해를 푸는데 정의당에 주어진 메이저 미디어의 총량 절반 이상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뜩이나 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던 상황 속에서, 인물의 부정적 요소까지 첨가되어 더욱 고전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강력하게 해결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정의당은 초기에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다.
류 후보의 잘못은 아니다.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 정의당을 공격하기 위해 눈을 번뜩이고 있는 거대 양당의 지지자들, 위성정당으로 비틀어진 정치상황, 이 여러 요소들을 지도부가 미리 파악하고 철저하게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는 게 맞다.
다음 총선에서도 분명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정의당은 이러한 상황을 상수로 보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1) 후보자를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결격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을 법한 요소를 미리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더욱 세세하게 질문지를 만들어 확인해야 한다.
2)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을 감안해 정의당의 비례후보는 타 정당보다 훨씬 앞당겨 선출하고, 각 주요 미디어 환경에 공격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이 선제화 전략을 통해 혹시 모를 모략을 좀 더 일찍 대비할 수도 있다.
3) 위 절차를 수행했음에도 총선 기간 중, 후보자가 미리 알리지 않은 문제가 터져 나오거나, 혹은 정당 차원에서 감당할 수 없을 공세가 취해질 때는 빨리 포기해야 한다. (포기의 방법은 후보 취소 외에도, 순번 조정 등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세스가 작동할 것임을 미리 각 후보자들에게 양해를 구해둘 필요가 있겠다.
* 뱀발 | 다시 말하지만, 이건 류 후보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정당이 대비가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류 후보 스스로 부채감이 있다면, 앞으로의 의정활동을 통해 본인의 정치력을 당당히 보여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2. 상대당의 선의를 기대하지 말고, 선의를 보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
라는 이정현의 노래가 떠오른다. 약속, 약속 운운하던 민주당이 배신하리라고 정의당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민주당의 당리당략에 따른 변절이 어디 한두 번 있던 일인가. 나도 예상한 것을 정치의 한 가운데 있는 정당 지도부가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예상했으나 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강한 상대가 수를 두고나서 반응하려면, 약한 정당은 늘 수동적 위치로 떠밀릴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어영부영하던 과거 민주당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제적으로 의제를 던지고, 시민들의 공감을 먼저 확보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이 거론되었을 12월, 새로운 선거법이 통과되자마자 정의당은 민주당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졌어야 한다. 민주당이 정치 도의적으로 내세운 명분을 절대 깰 수 없도록 철저하게 협약과 대국민선언으로 옭아맸어야 한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을 거론하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민주당이 질문을 하고, 정의당이 예스나 노로 답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정의당에게 주도권이 없는 반강제적인 상황이 아니었던가. 정의당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며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조국 사태의 데자뷔를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명분론을 내세웠지만 여당의 막강한 미디어 화력과 물밑의 강성 지지층에게는 추풍낙엽일 수밖에.
정의당은 물론 자유한국당을 선관위에 고발하고, 헌재에 위성정당 위헌 소송을 하는 등 활동을 했지만 모두 만족할만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액션이라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민주당과 제진보정당을을 결속시키는 허브로서의 정치력을 동시에 발휘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위성정당을 거론한 12월. 정의당이 선제적으로 자유당에 맞선 진보민주진영의 비례연대를 거론. 연합정당이 아닌 민주당의 비례후보를 각 진보정당이 (당선 후 복당 조건으로) 배분해 영입하고, 유권자 자율 선택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형식의 대응방안을 제안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유권자의 인식 속에 '비례연합정당'과 '민주진보연대투표' 두 가지 안이 비등하게 맞설 수 있지 않았을까.
정치에 선의는 있다. 하지만 그 선의는 영원하지 않다. 선의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3. 아무도 방어하지 않는 마타도어
조국 사태 이후부터, 아니 길게는 메갈리아 사태 이후부터 정의당을 공격하는 여러 흑색선전이 웹상에는 넘쳐나고 있었다. 주요한 공격의 포인트는 다음 세 가지다.
하나. 정의당은 남성혐오를 일삼는 메갈당이다.
둘. 정의당이 노회찬 특검을 찬성하고, 제명을 의결하려고 해서 노회찬 의원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셋. 심상정 의원은 정의당 내에서 비민주적 독재권력을 추구하는 심푸틴이다.
위 세 가지 내용이 정의당 관련 각종 보도기사 댓글란과 정치색이 있는 커뮤니티들에 무한리프로 도배가 되고 있음에도 수년 째 당 차원의 대응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오래 방치한 결과, 이른바 정의당을 미통당보다 혐오하는 정의당혐오 세력이 창궐하게 되었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참 의아했다. 왜 아무도 이것을 방어하지 않고, 왜 지도부의 누구도 적극 해명하지 않는가? 정의당에는 미디어 대응팀이 없는 것인가?
두 번째 사항에서 정의당이 찬성한 것은 드루킹 특검이고, 정권의 도덕성을 빨리 회복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노회찬 의원은 엉뚱하게 연루되었을 뿐이고, 정의당은 적극 노회찬 의원을 변호했다. 제명 운운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정의당 홈페이지 방문자 한 두명이 거론했을 뿐이고, 당 차원에서는 (내가 아는 한)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
정의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라 반박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을지 모르나... 놀랍게도 이 비상식적인 마타도어를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람이 댓글 출현의 빈도로 보아 족히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이 사안은 정의당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이기에 제발 적극 대응하여 뿌리를 뽑아주길 바란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다음 문제제기와 이어지는 내용이다.
* 뱀발 | 정의당은 이자스민 후보에게 덧씌워져 있는 온갖 마타도어에 대해서도 거의 방어를 하지 못했다. 이자스민 의원이 위안부 여성을 위해 국제적으로 활동한 사실을 지우고,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반대한 것처럼 흑색선전을 퍼뜨리는 것이 대표적. 진보정당이 이 부분을 명쾌히 해소하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4. 반페미니즘 세력의 주적 정의당, 회색 정치를 벗어야 한다
정의당은 페미니즘을 주요한 정치 의제의 하나로 삼고 있는 정당이다. 정의당이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바로 정의당 지지를 철회하겠다.
그러나 정의당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미 정의당은 곧 메갈당이다. 나는 이제 정의당이 좀 이 사실을 당당하게 수용했으면 좋겠다. 정의당은 오랜 시간, 이 문제에 대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식의 태도를 취해오고 있다. 그 결과 반페미니즘 세력에게는 주적이 되어 극렬한 마타도어의 대상이 되고, 새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회색 정당으로 비춰져 충분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좀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총선 2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신생 '여성의당'을 지지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3번 문제제기에서 언급한 세 번째 항 '심푸틴'론은 명백히 여성멸시(미소지니/여성혐오)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마타도어라고 본다. 남성정치인이 당의 간판이나 대표를 연거푸 역임하는 것에는 결코 독재나 '푸틴'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지만, 여성인 심상정 의원이 두 번 당대표를 역임하니 곧바로 이런 꼬리표가 붙고 마는 것이다.
이번 총선 기간 내내 심상정, 이정미, 류호정, 장혜영, 이자스민, 정민희 후보에게 가해진 비일반적인 비난의 폭격은 정의당을 향해 웹상의 반페미니즘 세력이 여성멸시(여성혐오)에 기반해 총공을 가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더 서글픈 것은 평소 여성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페미니즘의 기치를 드높이던 많은 여성들이 웹상에서 정의당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심상정 의원과 이정미 의원이 선거기간 중에도 n번방 입법을 위한 시위에 나섰는데도, 왜 여성 유권자들은 열광해주지 않았을까. 그 어떤 정당보다 정의당이 꾸준히 여성인권을 위한 정치를 오래 해왔음에도 왜 젊은 여성들은 정의당에 충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할까.
진보정당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처럼 두루뭉술하게 이쪽도 얻고, 저쪽도 얻고자 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진보정당은 선명한 가치를 중심으로 선명한 지지층을 미리 확보해야, 거대 정당의 강성 지지층에 겨우 대응할 수 있다. 상황이 좋으면 지지하고, 안 좋으면 흩어지는 느슨한 지지층으로는 정치 양극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지 않을까.
나는 정의당이 단호하게 여성멸시(여성혐오)를 일삼는 대한민국 시민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버리기를 바란다. 페미니즘 정당임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메갈당임을 껄끄러워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퇴행적 반페미니즘과 맞서 싸우는 정당의 선봉에 서서 우물쭈물하는 민주당을 리드할 때, 다음 세대의 상식적인 유권자들이 정의당의 적극 지지층이 되리라 확신한다.
5. 재선 의원이 '몹시' 필요하다
심상정 의원이 정의당은 '일회용 정당'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감동을 잠시 내려놓고 냉정히 따져보면 정말 그럴까?
정의당 당원이 아닌 유권자에게 보여지는 정의당은 안타깝게도 '일회용 정당'에 가깝다. 심상정, 노회찬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구성원이 완전히 교체되어 왔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이 작고하신 후로는 더욱 그런 이미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매번 초선 비례의원으로만 구성되는 이런 구조 탓에 '심푸틴'의 마타도어는 더욱 쉽게 작동한다.
정의당에는 심상정 의원이 아닌, 재선 의원이 몹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의당은 이제 현실에 입각해 기대치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지역구 의석에 대한 기대치 말이다. 지금껏 초선 비레대표 의원들이 다음 선거에는 지역구에 나가 낙선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지역구에서 당선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비례대표제 제도 하에서 재선 의원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비례대표 당선권 이내의 두 자리 정도는 현역 비례의원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엄정하게 의정활동 성적을 가중치로 반영하고, 당원과 시민선거인단이 포함된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해야 한다. 최소 의원단의 절반은 다음 국회에도 임기가 이어져야, 정의당의 원내 정치력이 유지될 수 있다. 계속 초선 의원이 심상정 의원에게 의지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권력 분산의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에 석패율제를 통해 유사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거대 양당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진보정당에 훌륭한 의원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 아까운 분들,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나. 모두 안타깝게 일회용 의원으로 정치를 마감하지 않았는가. 그분들이 충분한 정치력을 유지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양당에 짓눌리는 정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보정당은 선거를 거칠 때마다 정당이 리셋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비례대표를 꼭 한 번만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국회의원을 뽑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지역구에 출마해 유의미한 득표를 한 후보에게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안과 함께, 국회의원 재선까지만은 일부 보장하는 자체 비례선출안을 만들어 모쪼록 서민과 소수자 약자를 보호할 정치력을 유지해주기 바란다.
지금까지 떠오르는 대로 다섯 가지 제언을 펼쳐보았다. 당원도 아닌 무당파 유권자의 소견일 뿐이다. 떠오르는 생각은 더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이만 줄인다.
작년, 우여곡절 끝에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국회를 통과할 때 눈물이 찔끔 났다. 절친들에게 카톡을 보내 이제 내 소임은 끝났으니, 더 이상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도 말했었다. 한 해도 채우지 못하고 물거품이 될 줄이야... 미래통합당의 패배가 몹시 기뻤지만, 정의당의 힘겨운 생존을 보며 마음이 쓰라렸다.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악당 중의 악당인 것처럼 욕을 먹는 정의당과 여러 진보정당의 모습을 보며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내 인생이 겹쳐졌다.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정의는 정의가 아닌 것일까. '성희롱'이란 용어는 1995년 12월 30일에 처음으로 법률 용어로 쓰여졌다. 1980년대에는 '성적 성가심'이란 표현으로 쓰여졌고, 1970년대 이전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의 원칙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정의당의 정의가 불의가 되지는 않는다. 가치 있는 한 걸음은 충분한 시간 뒤에는 분명히 나그네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다. 정의당 덕분에 위성정당이 반칙임을 얘기해볼 수 있었다. 정의당 덕분에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소리라도 질러볼 수 있었다. 고맙다. 그러나 정의당은 거기에 만족하고 머물러선 안 된다. 정의당이, 그리고 여러 진보정당들이 더욱 튼튼하게 일어서기를, 굳세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라.
2020. 4. 21.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