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여행> B사이드
* 이 글은 사진동화책 <오리의 여행>의 온라인 부록입니다 : )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를 좋아했었다. <겨울 연가>와 <가을 동화>로 유명한 윤석호 감독의 계절 연작 마지막 편인 드라마였다. 신인 시절의 풋풋한 한효주 배우를 만날 수 있고, 윤 감독의 드라마가 대개 그러하듯 첫사랑의 애수가 담겨 있다. 드라마 속 여주의 고향이 바로 청산도다. 드라마 속에서 청산도는 인생의 모든 순정한 기쁨이 응축된 장소,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이상향으로 등장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청산도는 마음 한 켠에 머물러 있었다.
2014년 봄에 비로소 청산도를 찾았다. 청산도는 '슬로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달고, 섬 전체를 천천히 거닐며 둘러 볼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었다. <봄의 왈츠>를 전혀 알지 못할 사람들도 비비드한 등산복을 챙겨입고, 섬 곳곳을 거닐고 있었다.
이 무렵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오리 인형과 함께하는 여행책'의 구상이 자라나고 있었기에, 동행한 아기 오리를 섬 곳곳에 내려두고 셔터를 눌렀다. 모처럼 뽀얗게 목욕을 마친 연노랑 오리와 봄의 풍경은 서로 왈츠를 추는 것처럼 잘 어울렸다.
봄의 청산도는 여린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간지러운 순풍이 불어올 때면 유채꽃밭의 노란 물결이 일렁이고, 나뭇가지의 어린 잎새들은 와- 하고 떠들며 웃는 듯했다. 거닐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어둠이 씻겨내려가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두 눈이 순해지는 곳. 그곳이 청산도였다.
청산도의 봄을 카메라에 담으며 이 부드러운 빛을 언젠가 꼭 책에 담아, 좋은 이야기와 함께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2014년 봄에 찍었지만, 이야기는 3년 뒤인 2017년 겨울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청산도는 우리나라에 속한 섬이지만 해외여행 만큼이나 가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대중교통으로 10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간신히 닿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의 제약이 청산도를 더욱 애틋한 곳으로 만든다.
<봄의 왈츠>의 여주와 남주에게 청산도가 영원한 이상향이었던 것처럼, 내 마음 속에도 이 섬은 영영 스러지지 않을 따스한 빛으로 남아 있다. 그 따스함이 그리울 때면 사진이 담긴 책을 펼쳐, 이제는 사라진 그날의 풍경과 온기를 다시 복원해보곤 한다.
그러면 청산도가 천천한 초록으로 내게 답한다. 다시 되살아나라고. 되살아날 수 있다고. 내가 청산도를 배경으로 한 <오리의 여행> 1편에서 '회복'의 이야기를 담게 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청산도의 의지였는지도 모르겠다.
2020. 4. 29. 멀고느린구름.
사진(c) = 멀고느린구름
* 사진동화책 <오리의 여행>은 아기 오리 인형과 함께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동화로 재구성해 글과 함께 담아낸 씨디케이스 크기의 귀엽고 작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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