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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고느린구름 Aug 15. 2016

오리와 나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리를 살려내는 일

#1. 오리와 윤동주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대표단을 선발하라고 한다면 이 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귀뚜라미와 나와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아무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

귀뜰귀뜰


귀뚜라미와 나와

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윤동주 시인은 달빛이 엎질러진 잔디밭 위에 누웠을 것이다.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을 헤아렸을 것이고, 적막을 채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별의 소리처럼 느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귀뚜라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아무게도 알으켜 주지 말'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리라.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혹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이야기가 있다. 나와 오리 사이의 이야기가 그렇다.



#2. 사하沙下 오리


내가 이제 막 10대에 진입하던 무렵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서울 이주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부산 사하구로 돌아왔다. 사하구에는 '을숙도'라고 하는 섬이 있다. 강물이 상류에서 싣고 온 흙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삼각주 섬이다. 이 섬 아래에는 바로 남해 바다가 펼쳐진다. 내 머릿속에는 해질 무렵 이 섬의 풍경이 비교적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자신의 어미로 평생 기억한다는 오리처럼, 나는 아마도 노을 진 섬의 풍경을 태초의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기묘한 탐구심이 강했던 소년 나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파고들어가 보고는 했다. 그날도 나는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아마도 가족 무리) 질퍽질퍽한 진흙탕 길을 굳이 가로질러 억새가 내 키보다 더 커다랗게 자란 곳을 향해 나아갔다. 억새를 흔들 때마다 공기 중에서 황금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억새밭 끝에 이르렀을 때 나는 숨을 한번 깊이 들이마신 후, 곧 숨을 죽였다. 눈 앞에는 금빛으로 찰랑이는 커다란 강이 있었다. 그리고 오리들의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청둥오리부터, 머리가 붉은 오리, 펭귄을 닮은 오리, 온몸이 우아한 잿빛인 오리, 순백의 오리 등등... 상상할 수 없는 무수한 형태의 오리들이 눈 앞에 모여 있었다. 오리들은 불쑥 나타난 조그만 인간을 별로 경계하지도 않고 자기들의 축제를 이어갔다. 나는 멍하니, 달빛이 강물에 비칠 때까지 오리들을 바라봤다. 어른들이 나를 찾는 외침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자 수백 마리의 오리들은 밤하늘 속으로 떼 지어 날아갔다. 아마도 그날부터 나는 오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촬영. '유리동물원'님 / 출처 = http://mena.tistory.com/562



#3. 욕심쟁이 오리 아저씨


사하의 섬에서 오리와 내가 나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길은 없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이야기를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나와 오리가 나눈 이야기이며, 아마도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자고 약속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 자신마저 속이게 된 오리와 나 사이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어떤 선명한 빛으로 내 가슴속에 남았다. 내가 '도달드 덕'에 열광한 까닭은 그 빛으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물론, 나는 현재 도날드 트럼프의 지지자가 전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는 도날드라고 하면 한여름의 팥빙수 그릇을 내려놓을 정도였다. 도날드 캐릭터가 등장하는 모든 만화영화를 즐겨 보았고, 그중에서 으뜸은 역시 도날드 캐릭터들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욕심쟁이 오리 아저씨(원제 = 덕 테일즈)'였다. 스크루지 맥덕, 조이, 휴이, 듀이, 웨비, 부바, 기즈모덕, 발사대 등등 위키백과를 참조하지 않아도 여전히 등장인물의 이름이 오리유치원 아이들처럼 줄 지어 걸어 나온다.



내 비밀스러운 다락방에서 흰 백지 위에 '욕심쟁이 오리 아저씨' 속의 오리들이 그려졌다. 가위로 오려낸 오리들을 가지고 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다. 이따금 혼자 사하의 섬을 찾아 오리를 바라보고 돌아오는 날이 생겼다. 동네 뒷산의 봉우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볼 때, 문득 날아가는 오리를 보면 반가워 손을 흔들게 되었다. 오리는 더 이상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4. 오리야 미안해


대학생이 된 뒤 나처럼 오리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무척 귀엽고 보송보송한 오리 인형을 오랜 친구로 두고 있었다. 이름은 '오리'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소중한 아이라고 들었다. 나 역시 그 오리 인형을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나의 잘못으로 그녀와 나는 이별하게 되었다. 이별의 밤에 오리는 내 자취방에 머물고 있었다. 오리에게는 아무 죄가 없었다. 미욱한 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새벽에 오리를 손에 들고 그녀의 자취방을 찾았다. 그녀는 당연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 위로 열린 간이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미쳐 있었다. 간이 창문 사이로 오리를 던져버렸다...


그녀와 나는 결국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나는 거의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날 새벽의 순간을 꿈으로 다시 마주해야 했다. 오리가 슬픈 눈빛을 하고 간이 창문에 서서 앉아 나를 바라보거나, 창문을 넘어간 뒤 방에 고꾸라진 채 떨어진 오리를 그녀가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 등이었다. 오리가 간이 창문을 넘어간 순간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오리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오리야 정말 미안해.



#5. '살처분'이라니


내가 오리를 던져버린 것이 2004년 무렵의 일이다. 그 뒤로 나는 오리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오리라는 말을 함부로 입밖에 내는 것도 죄스럽게 여겼다. 오리고기 같은 건 절대 먹지 않았다. 그렇게 오리에 대한 부끄러움 속에 살던 내게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008년 조류독감이 유행하며 수백 만 마리의 오리가 생매장당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언론은 이를 '살처분'이라 명명했다.



한 생명을 죽이는 것도 감히 두려워해야 할 것인데, 수백 만의 생명체를 산 채로 매장하는 것을 '처분'이라고 명명하는 인간의 오만함과 잔학무도함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이었기에 오리들의 대학살(나는 서슴없이 이를 '학살'이라고 명명하겠다) 소식을 2009년 GOP안 에서야 알게 되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숙소에서 스마트폰에 뜬 생매장 장면들을 보며 이불을 덮어쓰고 오열했다. 며칠간 악몽을 꿨다. 생매장당하는 오리들 속에 내가 어린 시절 사하의 섬에서 보았던 오리들과, 그녀의 오리도 함께 있었다. 오리들은 흙 속으로 들어가며 꽥꽥꽥 울부짖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 검은 눈동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6. 꽉꽉이


무력감과 부끄러움만을 안고 군을 전역했다. 오리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에 비판의 글을 올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다행히 이후에 오리뿐 아니라 가금류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일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조직적인 반대 운동 단체도 생겨났다. 미약하지만 그 단체들에 후원금을 보탰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리는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음식의 일종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나마 오리는 나은 편이었다. 닭과 소, 돼지가 우리나라에서 취급되는 것에 비하자면 말이다.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와 똑같은 생명이었다는 것은, 그들 또한 신이 주신 생명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인류가 마음속에 함께 간직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꽉꽉이'를 만났다. 전역을 하고 나는 대안학교의 초등과정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과 처음 떠난 봄 여행지는 서해의 안면도였다. 안면도에 잡은 숙소의 이불장 구석에 '꽉꽉이'가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꽉꽉이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조그만 아기 오리 인형이다.



내가 발견해 '꽉꽉이'라고 이름 붙인 오리 인형은 곧 봄 여행 기간 내내 아이들 사이의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 숨바꼭질을 할 때도, 다방구를 할 때도, 보물 찾기를 할 때도 꽉꽉이는 아이들과 함께 했다. 여행 기간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는 날 나는 숙소의 주인어른께 부탁을 드렸다. 오리 인형을 숙소에서 발견했는데 혹시 데려가도 괜찮겠느냐고. 주인께서는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그렇게 꽉꽉이는 우리에게 왔다.



#7. 오리의 여행


허튼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꽉꽉이를 삶이 나에게 준 선물로 여겼다. 오리에 대한 미안함을 꽉꽉이로 갚으라는 의미를 담아 준 선물.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이 꽉꽉이를 통해 오리를 오직 먹을거리가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도 여겨주게 되기를 바랐다. 꽉꽉이는 교사로서의 직권을 남용한 나로 인해 학교 초등과정에 부정 입학생이 되었다. 5학년 담임이었던 내 상황 덕분에 월반을 하여 곧바로 초딩 5학년이 된 꽉꽉이는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주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생각했다. 2004년에, 그리고 2006년과 2008년에 허망하게 죽은 오리들의 마음이 꽉꽉이에게 깃들어 있다면 참 좋겠다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고,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다음 세대인 이 아이들만이라도 먼저 간 오리들이 너그러이 용서해주면 참 고맙겠다고.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이기적인 인간의 오만한 기대일 뿐이겠지만 나는 매일매일 꽉꽉이를 침대 곁에 품고 자며 오리들에게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내게는 실제 현실에서 죽어가는 오리들을 살릴 힘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리를 살리는 일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꽉꽉이는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정말 원 없이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실제로는 전혀 키나 부리가 자라지 않았지만). 내가 개인적인 이유로 교직 생활을 접게 되며 꽉꽉이도 덩달아 아이들로부터 떨어지게 되었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오리를 생명으로서 사랑스럽게 여기도록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오리의 여행'이다.


오리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새다. 철새인 청둥오리는 한 해에도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사람에 의해 죽은 오리들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며 세상을 여행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가는 모든 여행지에 꽉꽉이를 함께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다 큰 사내가 조그만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희한한 짓을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그 부끄러움은 내가, 그리고 사람이 오리에게 한 일의 부끄러움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오리의 여행'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꽉꽉이와 벌써 스무 곳이 넘는 여행지를 다녀왔다. 이것은 나와 오리의 행복여행인 동시에 진혼여행이다. 아무에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한 비밀 여행이다.




#끝. 오리와 나와


글을 맺으며 다시 사하의 섬의 황금빛 시간을 떠올린다. 억새풀 사이를 헤치고 지난다. 눈부신 영혼의 강이 나타나고, 모든 오리의 영혼들이, 아니 서글프게 돌아간 세상 모든 동물의 영혼들이 그 강에 모여 즐겁게 떠들고 있다. 노란 아기 오리 한 마리가 내게 포르르 다가와 눈을 맞춘다. 오리가 말한다.


안녕?


내가 답한다.


안녕.


우리는 어쩌면 아직 용서받을 수 있다.


촬영. '진틀학교'님 / 출처 = http://blog.daum.net/nsj2453/5477476


2016. 8. 15. 멀고느린구름.




<오리의 여행 1>이 출간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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