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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un 17. 2020

나는 안희정 지지자였다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나는 안희정의 지지자였다. 이 한 줄의 문장을 쓰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박근혜 탄핵안 가결로 시작된 치열한 대선 경쟁 구도 속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나는 안희정의 대연정과 협치에 큰 매력을 느꼈었다. 당시 안희정은 타 유력후보들이 우물쭈물하는 페미니즘 사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연대 의사를 밝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예능 속에서 선보인 격식 없는 모습도 호감을 더했다. 그가 주장했던 민주주의의 확대를 찬성했고, 새누리당의 어깃장이 분명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협치의 제도화는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서평을 통해, 그리고 개인적 칼럼을 통해 다른 후보들 또한 안희정의 정치적 주장들을 경청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밝혔다. 표로 지지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실상 정신적으로 그를 강하게 지지했던 것이다. 당시 나의 글은 예상 외로 아주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캠프 관계자들이 전략적으로 확산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2018년 3월 5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나도 고발한다)'로 발화된 불꽃이 전국을 휘감고 있던 즈음.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에 김지은 씨가 나와 안희정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그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고, 솟구치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그날 밤 안희정과 관계된 나의 모든 글과 SNS 메시지를 삭제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도피였다. 


안희정은 그날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날이 밝자 모든 걸 부인하기 시작했다. 곧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권력과 위력을 총동원하여 성폭력 피해자인 한 개인을 집단 린치하며 궁지에 몰았다.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훼손시키기 위한 온갖 말들이 기사 댓글창을 도배했다. 떠도는 소문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기 좋아하는 이들이 모인 웹 공간에 김지은 씨는 박제되곤 했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가 지금껏 유래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비전형적 규모로 공공연하게 가해졌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의 힘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사라지지 않은 채 행사되고 있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그 위력의 여운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희정과 관계된 글은 모두 지웠지만, 나는 내가 한 일을 아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기사가 새로 뜰 때마다 내가 공범이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내 안의 어떤 의식이 그자식과 맞닿은 지점이 있었으니 미처 파렴치함을 감별하지 못한 걸 거야' 하며 오래 나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안희정의 구속과 유죄 선고를 주장하는 거리 집회에 꾸준히 참가해 목소리를 보탰다. 김지은 씨의 변론 과정을 지원하는 모금 등을 보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져서도 안 될 일이었다.




안희정의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 554일간의 저항 기록을 담은 수기 <김지은 입니다>의 출간 소식을 듣고, 책을 사러 가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스러운 과정을  자세히 읽게 된다면 나의 수치심과 자책감 또한 몇 배로 더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머뭇거리다 김지은 씨의 활동을 꾸준히 지지해온 독립서점 책방 사춘기에서 책을 구입했다. 책을 소파 앞 커피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읽지 못하고 한 주를 흘려보냈다. 표지에 크게 쓰여진 '김지은입니다'라는 글씨가 매일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속죄 과정 중 하나라 여기며 겨우 책을 펼쳤다. 


"지금 내 삶은 선인장의 삶이다. 누군가의 취미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요기가 되기도 한다.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에 나는 매일 매시간 진열된다. 악성 댓글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낚시 글, 낚시 영상으로 광고 수익 요인이 되기도 한다. 희희낙락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성적대상화가 되어 외모며 몸매 품평을 당한다. 나를 보호해주던 가시조차 뽑혀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선인장을 그대로 놔두어주었으면 좋겠다. 왜 사막에 사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삶마저 위협하는 행위들을 이제는 멈추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폭행을 당했고, 살기 위해 도망쳤고, 살아내며 노력할 뿐이다. 그게 다다."  


<김지은입니다> 265- 266p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노동자 김지은 씨. 노동자로서 성실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들은 2차 가해자들에 의해 안희정을 향한 구애 노력으로 둔갑되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선택들은 도지사를 사랑하기에 내린 선택으로 덧칠됐다. 8개월에 걸쳐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겪었던 피해자 김지은 씨. 피해자인 그녀는 위로는 커녕, 오히려 한 단란한 가정과 촉망받던 미래 지도자를 파멸시킨 가해자로 뒤바뀌어 8개월보다 더 긴 2년 남짓의 세월 동안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호떡을 사 먹어도 될까요?"


사람들에게 신원이 노출될까봐 몇 겹의 마스크를 쓰고, 피해자답지 않다는 말을 들을까봐 지금 이 순간에도 검은 옷만 입고 외출한다는 김지은 씨는 평소 좋아하던 호떡을 내미는 활동가에게 되묻는다. 그 호떡을 한 입 베어무는 것이 혹여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일까봐. 지난 겨울 나는 호떡을 여러 번 사 먹었다. 호떡을 사 먹으며 안희정을 지지한 내가 이 호떡을 먹어도 될까 하고 망설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김지은입니다>를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눈물이 나서 멈추고, 자괴감에 멈추고, 화가 나서 멈추고, 무력감에 멈췄다. 여러 번 읽다 멈추다를 반복하다가 오늘에서야 완독했다. 힘겨웠지만 읽기를 잘했다. 참회에는 자기만족성이 있다. 이렇게 열심히 반성하는 나라니! 하며 자기의 잘못을 돌이키는 일마저 자신을 드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오만함을 더하는 일일뿐 참회가 아니다. 안희정이 3월 6일 새벽 페이스북에 게재한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라는 참회가 바로 그런 오만한 자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거리에서 안희정 구속의 구호를 외칠 때의 나는 그런 안희정과 정말로 달랐을까? 또 한 번 부끄럽지만 선을 그을 수 없다. 


나는 공범이다. 이 생각을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이 생각을 영원히 지우지 않는 것이 진정한 참회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안희정의 적극적 지지자였고, 그러므로 공범이었다. 그럴듯한 참회의 말을 반복하기보다 김지은 씨가 마음껏 호떡을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계속하겠다. 내가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 모쪼록 더 많은 분들이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공감하고, 반성하며 연대해주시길 바란다. 


2020. 6. 17. 멀고느린구름.




* 김지은 씨 미투 직후, 안희정의 페이스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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