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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Oct 24. 2019

김지영들의 알려지지 않은 헬조선 /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82년생 김지영>



???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유명 남가수의 물음표가 하루 종일 화제였다. 우리 중 누구도 그의 물음표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물음표를 아내의 글 아래에 단 그 자신 또한 온전히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겸허해져야 한다.


80년대에 태어나지도, 여성의 삶을 겪어 보지도 않은 젊은 남성들이 이제 막 개봉한 영화에 대하여 악평을 남기고, 보도되는 기사마다 달려가 저주의 글을 남기고 있다. 유명 남가수가 <82년생 김지영>의 개봉을 응원하는 아내의 글에 댓글을 달기 이전에, 그 아내의 인스타그램에는 아내를 향한 온갖 악플들이 가득했다. 


남편은 물음표를 달아야 할 위치를 크게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기대하는 영화의 개봉 소식을 알렸다는 것만으로 아내가 당해야 했던 기묘하고 부당한 공격들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붙일 필요가 없었던 걸까. 라고 내가 의문을 품을 수는 있지만, 내 멋대로 그것을 사실로 단정하고 그남의 모든 인격을 함부로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많은 남성들은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함부로 전능한 판결자가 되려 한다. 




김지영들의 세계


영화 <82년생 김지영> 개봉일에 맞추어 퇴근 후 곧바로 영화관을 찾았다. 나는 김지영과 같은 세대에 속한, 어느 계절, 어느 시절에는 나란히 길을 걷고, 함께 공간을 채웠을 사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아마도 우리가 겪은 세계는 전혀 다를 것이었다.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겪어온 세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선명히 말할 수 있지만, 김지영 씨가 겪은 세계에 대해서는 그저 조그만 창 하나를 두고 이따금 들여다보았을 뿐, 잘 알지 못한다. 그녀의 세계는 내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들, 조카와 친구, 후배들의 모습을 통해 김지영 씨의 세계를 엿보아 왔다. 아주 가끔은 나 자신이 그 세계로 넘어가보기도 했다. 경상도 출신, 가부장적인 노동자 가정의 형제 중 막내, 남중 졸업 등등 내가 처한 현실을 일별해보면 나는 어김없이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것을 자랑으로 삼는 경상도 싸나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불행은 내 강력한 여성성의 DNA 덕분에 생겨났다. 칼 구스타브 융은 100여 년 전에 인간의 마음 속에는 생물학적 성별과 무관하게 여성성(아니마)과 남성성(아니무스)이 공존한다고 밝혔지만, 한반도의 남쪽 도시에서는 터무니 없는 얘기였다. 음경을 달고 태어났으면 무조건 싸나이다워야 했고, 음부를 지니고 태어났으면 무조건 가시나다워야 했다. 나는 그다지 싸나이다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소꿉놀이를 하거나, 인형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99%의 어른들은 내 음경을 잘라버려야 한다거나,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내 앞에서 큰 목소리로 떠들곤 했었다. 비정상적인 성격이라고 두들겨 맞은 일도 허다했다. 


여성적인 것을 극도로 멸시하는 세계에서 상식을 어지럽히는 이단아로 자라난 덕에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접을 받는 수많은 김지영들을 다른 남성들보다 조금 더 목격할 수 있었다. 여성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한 마을을 나는 기억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어느 집에선가는 반드시 폭행을 당하는 아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면 누가 도망을 쳤고, 누가 죽을 뻔하다 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영이의 엄마 김지영, 김지영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여성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지워지고 마는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삶'


학교의 교사들은 여성, 남성을 불문하고 여자아이들에게 주의의 말들을 세뇌하듯 강요했다. 여자아이들은 또래의 남자와 열 살 터울의 남자와, 스무 살 터울의 남자, 삼촌과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을 반드시 주의해야 했다. 남자아이들이 주의할 것은 유괴범과 홍콩할매 정도였을 뿐이었다. 어떤 교사도 남자아이들에게 여자아이들이 주의해야 할만한 나쁜 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겁없이 자랐다. 우리는 우리보다 강한 남자들만 주의하면 됐다. 


명절이 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부엌에 발을 디디면 어디 남자가 부엌을 기웃거리냐며 크게 혼이 났다. 80년대생인 우리들에게 조선은 분명 끝나지 않은 왕조였다. 세배를 하고 받는 돈의 액수도 차이가 났다. 친척들 중 유이한 남자아이였던 나와 형은 분명 여자아이들보다 두 배를 받았다.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자들은 방바닥에 누워 있거나, 고스톱을 치거나, 소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내가 지나쳐온 그 수많은 명절의 시간 동안 나는 김지영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들을 나눴는지 알지 못한다. 


내 고장의 여성들은 싸나이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순응하거나, 그남들과 똑같은 싸나이(명예남성)가 되어야만 했다. 


내게 남자 중학교는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가뜩이나 조폭 양성 학교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나는 그 세계에서의 김지영이었다. 모두가 나를 멸시하고, 욕하고, 모함하고, 폭행하려 했다는 끔찍한 기억들만 생생하다. 남자 교사들이 야구방망이나 삽자루 같은 것을 들고 아이들의 종아리를 30대씩 구타하던 곳이었다. 단 두 분의 여선생님들만이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다. 


지옥을 피하고자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나의 세계와 김지영들의 세계는 훨씬 더 선명히 나뉘어지고 있었다.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공공연하게 가시나들이 좋은 대학가서 뭣하느냐고 주장했다. 전교 50등 안에 드는 남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사내자슥들의 기를 살리기 위한 조치들이 교무회의를 통과하고, 몹시 진지하게 시행되었다. 전교 100등 안에 드는 남학생들을 위한 자습공간이 별도 편성되고,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여학생들의 특별반은 평수가 넓어 어렵다는 이유로 에어컨이 없었다. 특단의 조치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운이 좋았던 남학생 1명(그는 특별반도 아니었다)을 제외하고는 남자아이 중 누구도 수도권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헬조선


전교 50등 안에 들었던, 혹은 학교가 정한 성적따위와는 무관하게 저마다의 꿈과 열정을 지니고 있었던 그 많던 김지영들이 졸업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나는 종종 상상해보곤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라는 포스터 속 문구를 볼 때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눈물이 고인다. 가시나 같다는 이유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자랐던 나는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된 뒤에는 생물학적 남성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예외없이 누렸다. 남자라서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아들 삼고 싶다는 중년 여성들의 호의 속에 좋은 기회를 쉽게 얻었다. 그래도 조금은 변한 사회 분위기 탓에 적당한 여성성은 플러스 요인이 되었고, 아주 상식적인 일을 했을 뿐인데도 지나친 고평가를 받았다. 결혼에 대한 쓸데 없는 간섭들도 잘라내고 나면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밤길을 마음껏 걸어다녔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혼자 여행을 갔고, 허름한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혼자 잠을 청할 때도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화장실에서 도촬장치를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그러기로 마음 먹는다면, 나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었다.


사실, 영화 <82년생 김지영>속 주인공 김지영의 삶은 2019년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삶이다. 아무런 해결책을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고, 적극적으로 가사와 육아를 거드는 착하디 착한 남편(공유)이 곁에 있다. 가부장적 세계에 매몰되어 여성의 삶에 연대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몹시 다행스럽게 멀리 떨어진 고장에 살고 있다. 착한 남편은 적당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시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한다. 마초적인 친아빠는 여전하지만 영향력을 잃었고, 친정의 모든 가족들이 전폭적인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고 말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좋은 여성들이 곁에 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는 작가로서의 삶도 시작된다. 그 뒤의 엄청난 성공을 우리는 실제 벌어진 조남주 소설가의 일과 연계해 그려볼 수 있다. 


여성들의 연대가 작동하는 김지영의 세계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조선 여성의 최상의 삶을 보며 나는 공포를 느꼈다. 마음가는 대로 살고 있는 내가 김지영이라면... 한 순간도 그 삶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자명했다. 알려지지 않은 헬조선 속을 수많은 김지영들이, 여성들이 오늘도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아마도 가장 비참한 사실은, 영화 속 김지영의 삶이야말로 어떤 여성들에게는 꿈에 그리는 이상의 삶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어떤 남성들은 아, 에어컨 설치해줬으니 됐잖아! 라고 호통을 치고, 어떤 여성들은 제발 선풍기만이라도 틀어달라고 애원을 한다. 어느 쪽이든 영혼은 타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물음표로 영화에 대한 소회를 밝힌 남가수와 달리, 한 유명 여가수(이자 배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82년생 김지영>을 소개했다. 그녀의 '우리' 속에 자신은 속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싶은 이들이 추잡한 말들을 여가수의 인스타그램에 배설하고 있다. 모쪼록 그들의 소원대로 그들을 '우리'로부터 추방하자. 


그러나 그들을 추방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가면을 쓴 채 누군가의 가부장적 남편으로, 도촬카메라를 설치하고 성희롱을 일삼는 직장 동료로, 카페에서 맘충을 입에 올리며 타인의 고통을 비웃는 자로, 노키즈존을 만들어 아이와 양육자를 혐오하고, 국가의 육아정책을 후퇴 시키는 행정가로, 표를 얻기 위해 대결과 차별을 조장하는 정치인으로 활약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동의한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한 사람의 우연한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82년생 김지영>의 한계를 현실의 우리들은 반드시 넘어서야만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우리에게 '김지영들의 알려지지 않은 헬조선'을 선명하게 보여준 것만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김지영들의 세계를 알지 못하던, 혹은 알고서도 외면하려 했던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더 많이 이 영화를 목격하기를 바란다. 영화 속 남편 정도가 되려 하지 말고, 그 이상을 꿈꾸고, 욕망하기를 바란다. 



많은 여성들이 새로운 세계의, 선명히 나뉘어 있던 두 세계가 만나는 세계의 출발선 앞에 벌써 오래 전에 서 있다. 극히 일부의 남성들만이 함께 그 출반선에 있고, 많은 다른 남성들은 멀리서 팔짱을 낀 채 낡은 세계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한 세계가 끝났음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모쪼록 <82년생 김지영>이 천만 관객 동원의 희소식과 함께 이미 끝난 그 세계를 다시 한 번 명백히 끝내버리기를 기원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모든 다양한 성별을 넘어서, 우리를 짓누르던 억압을 떨쳐내고 새로운 세계의 출발선 앞에 나란히 설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서로를 향해 다음과 같이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00아, 너 하고픈 거 해."


2019. 10. 2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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