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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Sep 12. 2020

출장비 3만 원과 0원의 원고료

어느 하루의 이야기


며칠 전 태풍이 지나고 난 후, 두꺼비집의 두꺼비 한 마리가 내려가서는 아무리 해도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누전차단기함의 제일 오른 쪽 두꺼비는 부엌, 욕실, 침실, 다락방의 전등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 보직의 두꺼비였기에 그 피해는 심각했다. 불이 나간 것이 하필 주말이었기에 전기 기사분을 부르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이틀을 보냈다.


월요일이 되어 동네 기사분을 불렀다. 백마를 타고 오지는 않았지만 기사님은 어둠을 물리치고 나를 빛의 세계로 인도해주셨다. 집의 인테리어를 전면 손보면서도 나름 예뻐서 교체하지 않았던 욕실 전등이 역시 화근이었다. 오래된 전등의 안정기가 고장나서 누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에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백마를 타지 않은 기사님의 출장비는 3만 원이었다. 나는 흔쾌히 3만 원을 지불했고, 아무런 마음의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빛을 되찾아준 댓가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 정도였다.




기사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드디어 불이 들어온 부엌 의자에 앉아 문득 내가 받았던 원고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받은 원고료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금액은 단연 '0원'이었다. 브런치 제안하기를 통해 원고를 요청하는 대부분의 청탁 메일에는 원고료가 쓰여 있지 않았다. 거북하지만 원고료를 먼저 물으면, 무례하게 답이 없거나, 자신들이 아주 좋은 취지로 하는 행사라는 것을 설명하는 답장이 대부분이었다. 아주 희소한 비율로 우리가 잘 몰라서 그러니 원고료 액수를 말해달라는 메일이 있었다. 그마저 내가 합당한 원고료를 제시하면 무응답으로 돌아오곤 했다.


공공기관에서는 통상 A4 1장에 3 - 5만 원 정도를 원고료로 책정해두고 있다. 주제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글자 포인트 11 정도로 A4 한 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최소 1 - 2시간 이상의 시간이 든다. 거기에 자료를 조사하는 데 드는 시간은 3배에서 4배까지 소요된다. 속사포 같이 글을 쓸 수 있는 문필가를 기준으로 잡아도 한 편의 원고를 완성하는데, 최소 4시간은 쓰여야 할 것이다.


전기기사분의 10분에 3만 원의 출장비가 주어지는 것은 순전히 '전문가 수당'이 포함된 것이다. '전문가 수당'이란 기사분이 10분 안에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전문성을 기르는데 투여한 시간과 땀에 대해 보상하는 비용이다.


하지만 문필가의 원고료에는 '전문가 수당'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A4 1장 내외의 원고를 쓸 때 들이는 4시간을 최저임금으로 환산해도 3만 원은 훌쩍 초과한다. 그러나 문필가에게 공짜 글을 요구하는 자들은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 속에는 단지 당신이 아니어도 글을 쓸 사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 우리 매체에 글을 실어서 작가로서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넘쳐난다는 생각뿐이다. 그런 생각의 물줄기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들어 거대한 기만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의 방식도 그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플랫폼을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수천 수만의 문필가를 모아두고, 무료로 글을 활용하고, 그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다. 플랫폼의 수익과 시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유료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조차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비판의 글조차 대기업의 수익을 올리는 것에 사소한 일조를 할 뿐이라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낄 따름이다.


몇 달 전에는 인천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 평화를 주제로 지역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는 사업에 참여했다가,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방적 퇴출 통보를 받았다. 계약서에 문제 조항이 있어서 수정을 요구했다는 이유였다. 그들에게는 내가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스토리텔링 작업을 주도했다든가, 경북지역에서 주요한 스토리텔링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과를 낸 전문가라는 이력따위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계약서에 뭐라고 쓰여 있든 고분고분 말 잘 들을 작가가 필요했을 뿐인 것이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글을 존중하는 사람은 너무나 없다.

이 모순은 더욱 더 깊어만 가고 있다.


2020. 9. 1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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