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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an 16. 2021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느 하루의 이야기

순간의 소동 탓에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아이유 <꽃갈피 둘>에 수록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쉽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내 노래방 넘버 중에서도 특히 아끼는 곡 중 하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옛 인연을 잊으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아 왔던 것만 같다. 오히려 반대로 잊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유년시절 이웃집 여자아이가 선물했던 작은 지우개조차도 아직 내 서랍 속 어딘가에 놓여 있다. 나는 왜 모든 것을 끈질기게 기억하고자 했을까. 아마도 잦았던 이사와 전학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친구를 길게 사귀지 못하고, 늘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니, 내 마음에는 늘 지금의 사람들이 아닌 지난 날의 그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다. 그 습관이 한참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도 좀 잊으려고 노력을 해봐야겠구나 싶어 무얼하면 될까 궁리해봤다. 옛 편지를 불태우거나, 사진들을 컴퓨터에서 모두 삭제하거나, 받았던 선물들을 쓰레기종량제 봉투 속에 담는 일들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소름이 돋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응당 치러야 할 자연스런 의식인 행위들이 내게는 손가락 마디 하나를 도려내는 일로 느껴졌다. 결국, 만들어진 모양대로 살기로 했으나 마음 속의 미련을 비워내는 일만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저 내버려두는 것만으로는 내 성향상 십수 년을 그렇게 흘려보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엉뚱한 얘기지만, 요즘 노자의 글을 다시 종종 읽는다. 씻어내지 못한 미련이 무언가 '유위'의 작용을 하려 할 때마다, '무위'를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쉽게 말해 늦은 밤 "자니?"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열심히 비워내고 있다는 말이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이 최선이다. 시간이 무척 더디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청춘이 시작된 지도 벌써 까마득한 날들이 흘렀다. 그 사이 잊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쌓여서 아무 것도 잊지 못하고 있다. 대체, 무엇부터 잊어야 할까.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2021. 1. 1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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