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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y 16. 2021

인지과학 실험실 / 마음의 빛은 온 우주로부터

김효은 <인지과학 실험실>


마음의 빛은 온 우주로부터


중성미자를 기다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중성미자는 우주가 탄생되던 시점에 빛의 입자와 함께 우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한때는 빛보다 빠른 입자로 잘못 알려져 우주 탄생 이전의 비밀을 알려줄 물질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본의 가미오카 광산 지하 1,100미터에는 태고의 중성미자를 기다리는 시설이 있다. 물질을 그냥 통과해버려서 (바로 지금 여러분의 몸도 중성미자가 지나다니고 있다) ‘유령입자’라고도 불리는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다.


최근 <인지과학 실험실>이라는 귀여운 표지의 책을 읽었다. 오리로도 보이고 토끼로도 보이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인지능력이 얼마나 허술한지 저격하는 핫핑크색의 도발적인 책이다. 나는 오리와 토끼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인간의 판단력이란 얼마나 허술한가!) 인지과학의 그간의 성과를 깔끔하게 정리하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훌륭한 책이지만, 말미에 갑자기 도핑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발달시키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시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저자인 김효은 교수의 일종의 인공진화에 대한 논의는 별도 담론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데카르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육신 속, 혹은 육신 너머 어딘가의 우리를 늘 인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간의 지능에 주목했던 뇌 연구는 점차 범위를 넓혀 심리의 영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지금의 ‘인지과학’이라는 용어로는 그 분야가 연구하고 있는 뇌과학, 심리학, 철학, 인지과학 전반을 포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의 과학’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마음의 과학은 오랜 연구를 통해 인간의 의식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지, 그 희미한 윤곽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뇌영상 촬영을 통해 마음의 흐름을 살피고, 거짓말을 어느 정도 분간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과학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은 도대체 마음이 어디서 ‘시작’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물음은 마치 우주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와 같다.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을 선택했다고 생각을 떠올리기 이전에 이미 뇌를 통해 그것을 결정 짓는다고 한다. 가령 떡볶이를 먹어야지 라는 생각을 머릿 속에 떠올리기 이전에, 뇌는 이미 떡볶이를 먹겠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드러나므로, 뇌의 신호가 언어화되어 우리 의식 속에 표면화될 때까지 딜레이가 있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언어 이전의 신호체계를 통해 이미 판단하고, 언어를 통해 그 판단을 해석 혹은 번역할 뿐이라는 말이다. 언어화되고 의식화되기 이전의 그 마음의 빛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축적되는 것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일본 가미오카 광산 지하의 중성미자 측정 시설


20대 시절, 불교의 무아론을 열심히 탐구하며 한 인간의 마음은 결국 온 우주로부터 온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싯다르타의 무아론이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생명들간의 강력한 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 생각, 내 주장, 내 판단, 내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웃으로부터, 나무와 바람, 강의 물결로부터, 아득한 과거와 미래로부터, 또 먼 우주로부터, 확장하면 차원의 너머로부터 마음의 빛은 우리에게 도달하고, 우리를 통과해 또 다른 우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주와 함께 탄생해 이 우주를 가득 채우며 지금 이 순간도 내 손가락과 입술과, 눈동자와, 뇌와 심장 사이를 통과하고 있는 중성미자를 생각한다.


나인 동시에 우주이고, 우주인 동시에 나인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멸시하고, 또 무엇을 배척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좋은 명상의 계기를 마련해준 <인지과학 실험실>의 저자 김효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2021. 5. 1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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