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고양이가 있었다 2

by 장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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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니, 어쩌면 고양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는 다가오는 겨울 길냥이들이 동사하거나 로드킬 당할 것을 걱정하는 이들의 글이 많아졌다. 날이 추워질수록 다들 문을 꼭꼭 닫아 놓기에 고양이가 몸을 녹일 곳은 없어지고 결국 고양이는 가장 따뜻한 자동차 엔진 밑으로 기어들어가 있는다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동차 밑에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어했다. 타임라인에서는 모쪼록 차량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에 자동차 아래를 살펴봐달라는 당부를 했다. 나는 지킬 수 없었다. 나는 자동차가 없었다. 대신에 길을 걸을 때마다 자동차 아래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 자동차가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특히 유심하게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몇 번은 시동을 걸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나에게 뭐하고 있느냐고 동그란 눈으로 물은 적도 있었다. 대놓고 호통을 치는 일도.


남자친구는 고양이 때문이라는 내 지각 사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게 고양이 같은 년이라며 뺨을 올려붙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그것이 무슨 동의의 의사 표시라고 이해한 양 내 몸을 가지고 놀았다. 유희가 끝난 후 남자친구는 쌓인 일이 많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는 늦지 말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문을 나서는 남자친구의 곧은 등과 직각형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나는 저런 등과 어깨를 갖고 태어나지 못했을까 싶었다. 울 힘도 나지 않아 손이 묶인 채로 그대로 잠이 들었었다.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 티브이 앞에 앉아 티브이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고 있다. 타임라인의 글을 다 읽었다. 티브이에서는 고양이를 구조하는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영되고 있었다. 엊그제 헤이리에서 보았던 고양이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호랑이처럼 노란 털과 검은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를 구조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집과 집 사이의 조그만 틈새에 끼어 있었다. 어떻게 고양이가 그곳에 들어가 있는지는 제작진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좁은 틈 사이로 툭 던져 넣는 모습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일주일 째 그곳에서 울고 있었다고 제보자가 말했다. 제보자는 열 살쯤 돼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키티가 그려진 빨간 색 아동용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째서 아우슈피비츠의 가스실에 갇힌 안네 프랑크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목이 말랐다.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할 때에서야 여전히 오른쪽 손목에 밧줄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느슨해진 줄을 흔들어서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밧줄은 뱀의 허물처럼 보였다.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코플레이트형 전기레인지에 스테인리스로만 제작된 주전자를 올리고 물을 끓였다. 찬장을 살폈지만 보리차는 종이 상자만 남아 있었다. 가장 두꺼운 외투를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어슴새벽의 거리는 온통 푸른 멍으로 가득했다. 바람에 조금만 부딪혀도 온몸 곳곳이 쓰라렸다. 찬 공기는 몸 내부의 것들까지 타격했다. 의외의 기억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날 나는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내가 있던 다락방 아래에서 날카로운 소리들이 났다. 귀를 기울였고 이내 부모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쉼 없이 욕을 퍼붓고 있었다. 꿈속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잠이 들 수 없었다. 유리로 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 제품들이 벽에 날아가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수명을 마감하고 있었다. 단단한 무언가가 흡사 사람의 뼈 같은 것이 벽에 수차례 부딪혔다. 딱. 딱. 딱. 딱. 소리가 날 때마다 여자는 목숨을 담보로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비명 소리가 멎었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남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남자가 부엌을 지나 언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벌컥 다락방의 문을 여는 장면을 상상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조심스럽게 다락방 문쪽으로 기어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남자의 힘이라면 충분히 뜯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잠금 장치밖에는 없었다. 숨을 죽였다. 밖으로 난 조그만 창이 눈에 들어왔다. 뛰어내릴까 싶었다. 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훅하고 다락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창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슴새벽의 창백한 하늘과 푸른 멍이 든 오래된 집들의 지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새벽의 공기는 야속할 만큼 맑았다. 저 멀리 수평선이 보였다. 고기를 잡으러 갔던 배들이 하나 둘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다. 배는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항구를 떠났고 일정한 시간에 항구로 돌아왔다. 색색의 전구를 달고 항구를 떠나는 배들은 종종 보았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배를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늘 잠결에 소리로만 들었던 것이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요란한 경보음은 점점 커지더니 곧 눈 앞에 실체를 드러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함께 비좁은 골목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뛰어내리려는 것은 포기하게 되었다. 다시 창문을 닫으려는데 맞은편 아래의 지붕 위에 있는 것과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였다. 칠흑 같은 털을 지닌 고양이는 제 갈 길을 가려다 창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양이는 얼마나 오래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걸까. 어쩐지 고양이가 내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내 마음속에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 있었기에. 뺨을 간지럽히는 온기가 느껴져 고개를 들어 다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동이 트고 있었다. 고양이 쪽을 다시 보았을 때는 이미 제 갈 길을 간 후였다.


집과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서는 갖가지 이름의 생수를 팔았지만 보리차는 팔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옷깃을 여미고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까지 걸었다. 걷는 도중 진눈깨비를 맞았다. 첫눈이라면 첫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새벽 5시 36분. 시계를 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슈퍼마켓에 도착했다.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새벽 5시 39분에 문을 열고 있을 슈퍼마켓은 없다. 아마도 없을 것이었다. 소득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진눈깨비는 등과 어깨 이마, 볼, 입술, 손등과 손가락 마디에까지 내려앉았다가 이내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도깨비 같은 눈이라서 진눈깨비라고 했을까. 안개 속에서 귤빛 헤드라이트가 길게 뻗어나와 차도를 더듬고 다니기 시작했다. 생수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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