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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와 이화동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엄마를 찾아갔다. 가파른 비탈길을 끙끙거리며 올라가면 사방이 시멘트로 둘러싸인 좁은 골목이 나왔고 미로 같은 길을 구불구불 헤매다 보면 엄마가 분홍색으로 칠해놓은 철문이 보였다. 5년 동안 혜화역 바닥의 껌을 떼고, 화장실의 토사물을 치우고,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를 닦고, 지하철 공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의 쓰레기통을 비워 온 엄마였다. 지난달 부로 지하철 공사가 거대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정리해고를 당해 현재 여기저기 구직 중이었다.
“좀 쉬어도 괜찮다니까요.”
“됐다 마. 내가 쉬면 뭐하노.”
엄마는 몇 달 동안은 생활비를 대줄 수 있으니 푹 쉬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더 닦달을 해볼까 싶다가 그만두었다. 티브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엄마의 완고한 목선이, 하얀 피부 위로 도드라진 푸르스름한 실핏줄이, 그 옛날 병실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짐짓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아침 드라마 같은 대사를 내뱉었었다. 엄마 같이 살지마 절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었다.
“애인은 잘 만나나?”
“그냥 뭐...”
엄마의 질문보다는 엄마가 보고 있던 티브이 화면에 더 신경이 갔다. 그저께 새벽에 보았던 고양이 구조 프로그램의 후편이었다.
“엄마...”
“응?”
“아냐.”
“와?”
“아냐...”
“와 뭔 일 있나? 애인이 잘 몬해주나?”
“아냐...”
엄마에게 헤이리에서 본 아기 고양이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엄마는 쓸쓸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걱정된다기보다 자기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아 주지 않는 딸에 대한 섭섭함에 쓸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다 엄마와 시시콜콜한 고민을 공유하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외려 비율을 따지면 그렇지 않은 쪽이 많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진짜 딸’을 가지지 못했다는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엄마와 내가 다시 만나기까지는 10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우리는 분명 모녀가 아니었다.
고양이 구조 프로그램 후편을 함께 끝까지 시청한 후 엄마와 나는 분홍색 철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잿빛 털을 지닌 고양이 한 마리가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멀리로 달아났다. 충분히 거리를 둔 다음 멈춰 서서 이쪽을 응시했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잿빛 고양이는 고개를 몇 번 갸우뚱거리더니 도도한 걸음으로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엄마와 팔짱을 끼고 가파른 비탈길을 다시 내려갔다. 평일에도 북적거리는 대학로 거리를 지나 병원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속이 자꾸 쓰리고 뭘 먹어도 역겹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함께 병원에 가보기로 한 것이었다. 특별히 불길한 예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약 처방을 위한 진단서를 끊는 김에 함께 종합검진도 한 번 받아보자는 계획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는 엄마와 나를 굳이 따로 불러서 진단 결과를 알려줬다. 엄마가 먼저였고, 내가 다음이었다. 엄마는 진단 결과를 듣고 돌아오며 대기석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멀리서부터 외쳤다.
“봐라, 별 꺼 아이란다이가.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약 지어 무면 다 낫는단다.”
엄마의 표정이 환했다.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의사가 나를 불렀다. 갑자기 무거운 돌이 배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의사의 첫 마디는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각오를?이라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드라마 대사는 현실을 복제했고 현실은 드라마 대사를 복제하는 세상이었으니까. 유방암이라고 했다. 비극의 드라마가 다 그렇듯이 초기는 아니었다. 중기와 말기의 사이라고 했다. 가파른 언덕을 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언덕을 넘어가면 쉼터가 나올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올라왔던 비탈길로 고꾸라져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의사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의 번역일 뿐.
병원을 나오는 길에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보다 작은 손. 창백한 손. 남자친구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해 지구를 표현하기를 즐겼다. 창백한 푸른 점. 엄마의 손은 창백한 하얀 점. 그 손에 지구의 운명이라도 달려있는 듯 조심스레 엄마의 손을 조물거렸다. 왔던 길을 짚어 엄마의 집으로 되돌아 갔다. 모든 풍경이 달라보였다. 여전히 사람들은 넘쳤지만 우리 모녀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돌계단을 올라 엄마의 집 앞에 도착했다. 분홍 철문은 앙다문 입술 같았다. 엄마는 집 안으로 좀처럼 들어가지 못하고 서있었다. 나도 들여보내지 못했다. 왼손으로 잡고 있던 엄마의 손에 오른 손을 포개어보았다. 더 따스해질 줄 알았는데 외려 한기가 훅 끼쳤다. 얼떨결에 왼손마저 놓고 말았다.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은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 나올 때 보았던 잿빛 고양이였다. 나는 웅크려 앉아 쭈쭈쭈 하며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이는 저 여자가 대체 뭘 하는 짓이지라는 표정이었다.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엄마의 목소리. 고양이는 다시 사라졌다. 일어서는데 무릎 관절에서 뚜두둑 소리가 났다. 엄마는 너도 다 늙었다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 나는 겸연쩍게 웃고 말았다. 엄마가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 걸었다. 고양이가 사라진 골목길 귀퉁이를 돌아나갈 때까지도 철문이 열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