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는 분명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 저녁이었다. 우리는 홍대 거리에 있는 ‘마음’에 가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그와 함께 가고 싶던 곳이었다. ‘마음’은 낮에는 홍차류를 파는 찻집으로, 저녁 이후로는 칵테일 바로 운영되는 독특한 가게였다. 패션 잡지 모퉁이 기사에 실린 사진이 인상 깊어 기억해두고 있었다. 이국의 신비를 자아내는 에스닉 천들이 곳곳에 둘러져 있고, 아늑한 패브릭 소파가 의자 대신 놓여 있었다. 인도산 향을 피워 둔다는 설명이 있었다. 나는 비틀즈의 명곡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떠올렸다. 홍대의 무수한 컨셉추얼 공간의 하나일 뿐이었지만 마음은 왠지 내게 더 특별했다. 어쩐지 그곳에 가면 그의 마음을, 감춰둔 진심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나는 길치였지만, 마음만은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게 머릿속에 약도를 세세하게 새겨놓았다. 주차장에서 냉면집과 스티커사진점 사잇길로 들어가면 라이브클럽이 나온다. 그 클럽이 정면으로 바라보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 편의점이 보이면 거기서 좌회전이고…. 그런 식으로 나는 수십 번도 넘게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온 것이다. 2호선 홍대역에서 만난 그와 나는 단지 몇 차례의 소박한 방황을 거쳐 마음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했다. 1층 - 자바. 2층 - 팀파니. 지하1층 - 빈 칸. 비록 상호가 쓰여 있지 않았지만, 지하 1층에 마음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래, 마음은 마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거지.
- 없는데. 여기 아닌 거 아냐?
- 아냐, 여기 맞아.
- 아닌데, 없잖아.
- 지하에. 저기 같아. 이름 안 붙이는 데도 있대 요즘은.
- 이름을 왜 안 붙여? 불법영업이야?
- 아니, 그런 건 아니구. 왔으니까 내려가보자 한번.
그는 갑자기 먼저 지하로 향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다섯 칸 정도 계단을 내려갔을 때, 그는 벌써 돌아와 말했다.
- 없어 없어.
- 진짜? 아무 것도 없어?
- 철문이 하나 있는데 잠겼어.
- 열어 봤어?
- 아니.
- 근데 잠긴 줄 어떻게 알아.
- 딱 봐도 그냥 창고야.
- 내가 열어 볼게.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싫은 기분이 드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물리 법칙이나 사회적 합리성과 무관한 자기만의 규범이었다. 그건 정말 참기 힘든 어리광이었으나, 그는 그게 쿨하다고 여겼다. 우리의 관계는 늘 내 마음과 무관하게 그의 기분에 따라 방향이 정해졌다. 그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없어 없어”에서 돌아갔을 테지만, 나는 그날 그러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의 철문은 정말 그의 말처럼 창고문 같았다. 그는 자기 팔장을 꼭 낀 채로 거봐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실물을 보니 그곳이 마음이라는 내 직감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 여기 맞는 거 같애.
- 아닌 것 같은데, 오늘 왜 이렇게 우겨?
- 내가 열어 볼게.
- 됐다 됐어. 내가 열게.
그는 투덜대며 슬쩍 문을 열고 머리를 집어 넣었다. 열린 문 틈으로 훈풍과 함께 음악이 새어나왔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비틀즈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여기구나. 우리가 드디어 마음에 도착했구나. 붉은색 패브릭 소파에 기대어 우리가 나눌 깊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따뜻하겠지. 향은 어떨까. 다음 곡은 뭘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문이 닫혔다. 눈앞에서 마음의 문이 닫히자, 왜? 라고 물을 의욕조차 사라졌다.
- 여기 아닌 거 같아.
- 아냐. 맞아. 맞는 거 같아.
- 아, 진짜. 아니래도!
개자식. 그는 혼자 계단을 성큼성큼 거슬러 올라갔다. 어딜 가느냐고 외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별 수 없이 뒤를 따랐다. 딴 데 가자. 그는 언제나처럼 자초지종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싫은 것이다. 자신이 싫은 것은 안 하기로 되어 있는 게 우리 관계의 조건이라고 그는 여겼다. 물론, 나는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 마음을 뒤로 하고, 그는 자기만의 마음을 찾아 홍대 거리 곳곳을 기웃거렸다. 1월의 바람은 흉기나 다름없었다. 몸도 마음도 시푸른 날에 베이고 있었다. 초조하게 어디에도 없을 장소를 찾는 그의 뒷모습은 길 잃은 아이처럼 보였다. 그는 나보다 20센티미터나 큰데도 말이다. 그는 늘 불안했다. 그는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를 먹구름 같았다. 시시콜콜 잘난 척을 해댔지만, 그는 사실 그 무엇에도 자신감이 없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됐다. 나는 먹구름을 피하는 대신 항시 가슴 속에 우산을 휴대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으므로.
- 배고프다.
그가 말했다. 이제 아무 데나 들어가자는 말이었다.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그는 강요적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도, 자기 뜻을 관철하는 방법을 대단히 잘 알았다. 그는 내게 무얼 먹고 싶느냐고 물어본 뒤, 내 대답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설렁탕을 선택했다. 너무 추워서 일부러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답 중에 넣은 것이었다. 이미 온 몸이 얼어 있었다. 내가 추위를 못 견딘다는 사실을 그는 기억하지 않았다. 다행히 신촌설농탕 간판을 곧 발견했다. 그는 밥을 얻고, 나는 온기를 얻었다.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나는 그가 밥 먹는 모습을 좋아했다. 온순한 초식동물의 먹방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침, 저녁 식탁에서 늘 부모의 훈계를 듣는 데 익숙했던 내게 그가 주는 평화는 귀했다.
다시 거리로 나온 우리는 그가 가고 싶은 어떤 곳을 발견하기 위해 찬 공기 속을 떠돌았다. 그는 필연보다 우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일으키는 우연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지난 여름에는 갑자기 아침 일찍 북악산을 올라가자고 했는데, 그곳 정상에서 돈 주고도 티켓을 구할 수 없는 가수의 라이브 영상 촬영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나는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아도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모든 건 순리대로 이뤄진다고 종종 말했다. 허세를 천운으로 극복하는 특이 유형의 인간. 그는 곧 잿빛 콘크리트 건물 구석에 자리한 ‘빛’이라는 이름의 바를 발견해냈다.
내부는 상호와 달리 캄캄했다. 점원은 호롱불을 들고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테이블에 비치된 엄지손가락 크기 촛대가 가까스로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테이블과 좌석은 90년대 초반의 교실을 고스란히 옮겨 온 것이었다. 의자는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귀여운 소리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몸을 움직였다. 그는 기겁했다. 소름끼치는 소리 좀 내지 말라고 했다. 그는 종종 서슴없이 냉혹한 말을 했다.
- 뭐 마실래?
그는 또 일순간 다정한 얼굴과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여러 배역을 동시에 연기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 블랙러시안. 오빤?
- 나두.
그는 점원을 부르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가 카운터에 주문을 하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작은 촛불은 수차례 꺼질듯이 흔들렸다. 빛. 그라는 먹구름 속에서 이따금 새어나오는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여기까지 왔다. 어쩌다 찾은 바도 어쩌면 딱 자기 같은 곳인지. 하여간 묘한 캐릭터다. 까막까막 춤추는 여린 빛이 낡은 테이블 위에 새겨진 낙서를 비췄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 ‘수능대박’, ‘민우 ♥ 지연 천일까지 D-900’, ‘Eternirty’, ‘내가 더 사랑할게’.
- 뭐 봐?
- 응? 수능 대박.
- 삼수하려고?
- 아아니.
나는 그와 같은 대학을 다니려고 재수를 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저녁에 우리는 처음 같이 술을 마셨다. 그때 마셨던 칵테일이 ‘블랙러시안’이었다. 대학로의 재즈바에 앉아 우리는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고, 푸른 새벽길을 걸어 그의 자취방으로 갔다. 그도 나도 처음이었다. 뜨거운 파도 속에 몸을 맡긴 듯했던 아침. 우리도 숱한 사랑의 맹세를 했다. 남산 타워 펜스에 자물쇠를 걸었고, 100일, 200일, 300일에 주고받은 편지에 영원이란 말을 썼고, 어느 밤의 해변에 서로의 이름을 새겼다. 파도가 쓸어간 우리 이름은 지금 태평양 어디쯤에 있을까.
-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그가 물었다. 나는 망설였다. 내가 하려던 얘기는 ‘마음’에서 했어야 한다. 그는 내게 세 번 헤어지자고 했다. 처음은 첫 수능을 치르고 그의 대학에 떨어졌을 때였다. 인근 대학이라도 붙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장거리 연애는 어렵겠다고 했다. 이듬해 가을까지 우리는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함께 첫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그의 고향 목포를 거쳐 여수와 통영을 보려던 계획이었는데, 그는 목포에서 나를 길에 두고 본가로 들어가버렸다. 같이하는 여행이 즐겁지 않다며. 숨이 막힌다며. 세 번째는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겼다며 알아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했다. 관심 가는 사람이 있음 이참에 너도 만나보라던 그의 말이 여전히 귓가에 선명하다.
나는 알았다. 그는 자기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두꺼운 껍질로 감싸고 감싸서, 그 자신조차 이제는 제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꼭 나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증오했다.
- 말이란 건 참 신기해.
- 무슨 말?
- 사랑한다고 하면 사랑하는 것 같고, 영원히… 라고 하면 영원할 것 같아. 어쩜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말이 먼저고. 우린 그 말에 이끌려 사는 것 같애. 별들 중에 말이 모여 사는 별이 있고, 어느 밤 유성우처럼 말이 우리들 속으로 떨어지는 거지. 우린, 그렇게 별의 말에 간택되어 살아가는 건지도 몰라.
- 신작이야?
- 응. 괜찮아?
- 멋있는데.
- 다행이다.
언젠가 동화를 그리고 싶었던 나는 종종 그에게 구상안을 얘기했다. 그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멋있는데. 나는 알았다. 그건 그의 깔끔한 진심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주눅이 들 때마다 담담한 그의 그 목소리가 나를 일으켰다. 멋있는데. 길을 걸으며 그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이면 마법의 주문처럼 어깨가 펴지는 것이었다. 빛은 왜 그림자와 함께일까. 깊은 사랑은 외려 짙은 고독을 부른다. 나는 끝내 하려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캄캄한 ‘빛’ 속에서 진심 외의 말들을 나누며 칵테일잔을 비웠다.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생일을 맞은 사람이 있어, 바의 모두가 함께 해피 벌스데이 투 유 노래를 불렀다. 의외로 너무나 다정한 저녁이었다.
그날로부터 며칠 뒤, 그는 이메일로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개자식. 먼훗날 그가 스스로에게 하게 될 말을 나는 먼저 입에 담았다. 쓰레기 같은 자식. 그는 늘 사랑은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그리움의 장마를 맞이할 것이다. 멈추지 않는 장대비 속에서 사랑을 추억하는 자신을 사랑할 것이다. 혼자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스스로를 벌할 것이다. 그곳의 음악에 취하며 애달픈 상념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나를 불러내 말하겠지.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오직 너뿐이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마음에 가지 못한 그날 저녁,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얼마나 추웠고, 얼마나 오래 그를 바라봤는지, 그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리라. 그의 머릿속에서 나를 사랑했다는 신념 하나를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그는 이제 세상의 어느 길에서도 다시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리라.
나선의 은하 귀퉁이에서 우리는 무한히 돌고 돌며 낯익은 계절들을 다시 만날 테지만, 지난 봄과 똑같은 봄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것이 진정한 형벌임을 그는 사는 동안 깨달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언제까지고 바로 눈앞에 있는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예정되지 않은 우연의 마음을 찾아 떠돌 것이다. 희미한 불빛들을 스스로 꺼트리며 붕괴해갈 것이다. 그리하여 상처 깊은 짐승처럼 여린 눈동자로 아무에게나 말하리라.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사람을 사랑한다고. 내게 머물러 달라고. 나를 머물게 해달라고.
벌써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그는 내 인생 최흉의 연인이자, 불행히도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 무엇도 그자리 그대로일 수 없다. 그것이 존재의 속성이다. 추억은 내면에 생긴 중력의 웅덩이여서, 때때로 우리를 지나온 자리로 끌어당긴다.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으로의 여행이다. 어떤 이들은 그 여행에 매료된다. 마치 빅뱅 이전의 우주에 탐닉하는 천문학자처럼.
하지만 나는 이제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아니,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어떤 날이 마지막이었대도, 기필코 그 다음으로. 그가 있다면 말하겠지. 멋있는데.
2006. 3. 13. 장명진.
(2024. 2. 28.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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