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셔젤 <바빌론>
하이볼의 매력에 빠진 때는 작년 겨울이다. 친구와 나는 2023년을 떠나보내기 위해 서울 은평구의 일식주점에서 만나 모처럼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처음 하이볼을 마셔봤는데, 이후로 내 주종은 칭다오에서 하이볼로 바뀌었다. 칭다오 전에는 버드와이저였다. 마치 세월처럼 내 주종도 세 번 바뀐 셈이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날, 깊은 밤에 홀로 하이볼을 홀짝이며 영화 <바빌론>을 시청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새벽 두 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 오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빌론>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할리우드가 자리 잡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후반까지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무성영화’ 배우와 감독, 제작자의 흥망성쇠가 적나라하게 담겼다. 무성영화계의 대스타 ‘잭 콘레드’ 역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와 무성영화계의 샛별 ‘넬리 라로이’ 역을 맡은 마고 로비의 연기는 대단하다.
내가 13년 가까이 유일하게 마셨던 술인 ‘버드와이저’는 오래전 연인과 처음 마셨던 술이었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차가운 버드와이저를 꺼낼 때면, 늘 그날 저녁 마로니에 공원의 서늘한 공기와 너울대던 푸른빛, 그리고 그이의 천진한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그 미소를 전혀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 버드와이저를 마실 때면, 언제나 가슴에 회환과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올랐다. 30대 중반 즈음이 되어서야 마음을 비우고 주종을 바꿨다. ‘칭다오’는 다른 의미는 없고, 실제 칭다오에 가서 먹었던 맥주가 참으로 맛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아는 ‘중국 현지의 그 사건’ 이후로 마시지 못하게 되어, 하이볼을 접하기 전에는 사실상 금주주의자로 살았다.
영화 속 ‘잭 콘레드’와 ‘넬리 라로이’는 무성영화無聲映畵계의 신구 스타로 각광받지만, 시대가 <재즈싱어>의 유성영화有聲映畫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며 몰락하기 시작한다.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에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그 가사를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랑이 올 거라 여기며, 사랑의 시절 속을 덧없이 질주했다. 순간순간 찬란했고, 때때로 영혼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다다른 듯했지만, 이윽고 어둠에 갇히고, 외로워졌다. 그러나 그마저 귀한 아픔이었음을 이제는 실감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외로움이 아닌, 무감無感이다. 영화 <바빌론>의 잭 콘레드는 ‘무감’을 견디지 못했다. 넬리 라로이는 사랑을 간직한 채로 소멸하길 원했다. 무성영화의 시절은 꽃잎처럼 스러졌지만, 무성영화는 그대로 남아 다음의 계절로, 아주 먼 미래로 이어진다. 잭 콘레드보다 100년 뒤에 태어난 소녀소년들이 그의 눈빛과 손짓에 마음을 흔들리고, 다시 그들만의 영화를 만든다. 사랑은 그렇게 영원의 별로 향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외로움이 아닌,
무감無感이다.
추모와 단죄는 별개의 일이라 여긴다. 그립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하지 못한다고, 그리워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영화 <바빌론>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용서할 수 없는 이들이지만, 한편으로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들이다. 나는 언제나 내 청춘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으면서도, 도저히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미화’라고 욕하겠지만, 나는 되려 그리움 탓에 늘 그때를 반추하며 오늘을 경계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있다. 어쩌면 잭 콘레드나 넬리 라로이처럼, 나 역시 지나버린 시절에 영영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절이 지나간 것은 알지만, 역시 진정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인지도.
하이볼은 언제까지 마시게 될까. 이렇게 쓰니 주당처럼 보이는데, 나는 1년 중에 술을 마시는 날이 열흘도 채 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술을 마셨던 모든 날이 특별히, 아주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듯하다. 이대로 독거노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사랑했던 날들이 더더욱 특별해지겠다. 나쁘지 않다.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무감한 날들을 살다 가겠지만.
2024.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