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콜콜

기대하지 않은 삶

어느 하루의 이야기

by 장명진


나는 내 삶에 많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삶은 기대한 대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꿈에 가까이 다가갔나 싶은 순간 가장 깊은 절망으로 떨어졌고, 영원을 바랐던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런 결과에 대해 반은 내 탓이고, 반은 생의 저항이라 여긴다. 아무튼 내 탓에 큰 지분이 있으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어, 더 원통하다.


기대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의 밑바닥에 있을 때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럴 때면 원하지 않았으나 허망하게 떠난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무튼 목숨이 붙어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들보다는 형편이 아주 나은 거였다. 누군가를 알고,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순간 그와 나는 만나지 않아도 우주의 투명실 같은 것으로 연결된다. 그가 먼저 떠난 다음에도 그 실은 별 속에 흩어진 그들의 입자와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남루한 생이라도 내겐 그들을 사랑한 만큼 대신 살아낼 몫이 있다.


기어이 살아내는 사람에게 삶은 기대하지 않은 순간을 펼쳐 보인다.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과분한 믿음과 도움을 주고, 가슴 아린 결별 뒤에 가슴 뛰는 만남이 나타난다. 어떤 성취는 점진적이지 않고, 폭우처럼 몰아치며, 인생의 페이지는 단 며칠 사이에 수백 페이지가 넘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보면 깨닫게 된다. 바로 그게 내가 기대한 것이었음을. 그런 방식, 그런 순간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래 살고 볼일이다.


2025년에, 계획한 건 하나도 이루지 못했고, 계획하지 않았던 큰 일만 하나 미리 이루도록 강요받았다. 시간이란 건 어차피 편의상의 구획 단위일 뿐이다. 2025년 12월 31일이나, 2026년 1월 1일이나, 1996년 1월 1일이나 동일한 지평 위에 나란히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고 여기면 인생 고쳐 쓸 수 없다는 결론에 빠지게 되지만, 어제든 오늘이든 내일이든 같은 순간이라 여기면 땅바닥에 떨어뜨린 쿠키를 후다닥(3초) 주워 먹는 것처럼 망한 인생도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다. 인간 수명으로 한정치 말고, 대범하게 나를 우주물질로 정의하면 살아온 138억 년 중 1년은 뭣도 아닌 것이다.


아, 2025년을 얼마나 망쳤으면 이렇게 거창한 핑계가 필요하겠는가. 어쨌든 2026년은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기대하지 않은 도약과 영광, 그리고 사랑의 순간들이 내게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2026. 1. 1. 장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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