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하트를 기다리며 3(완)

인디언 하트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by 장명진


3. 인디언 하트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간단한 것들만 얘기했을 뿐인데도 아메리카원주민 각 부족 간의 차이가 확연히 눈에 띈다. 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대평원 원주민 사이에도, 또 남부와 동부, 북부 내에서도 부족마다 각기 다른 문화가 존재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체로키(구르는천둥이 체로키족이다)에 관심이 있어서 이들의 문화를 좀 더 심도 있게 연구를 하고 있다. 이 한 부족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수고가 필요하다.

200211140500026_2.jpg 체로키족 치료사 구르는천둥은 자신의 조상이 네덜란드인과 맞닿아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만하면 우리가 쉽게 아메리카원주민을 묶어서 ‘인디언’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럼, 인디언 하트라는 말도 잘못된 것 아닌가요!라고 눈에 불을 켜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좋은 지적이다. 인디언 하트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는 또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아메리카원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적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메리카원주민 전체를 표시하는 사회적인 상징성을 지닌 ‘인디언’이라는 용어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 때 서양인들은 아메리카원주민들을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라고 생각하여 거의 악마 취급을 하곤 했다. 그러한 관념이 지금까지 이어져 흔히 아메리카원주민을 태양의 신을 믿는 집단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딱 잘라 말해 아메리카원주민들은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지 않다. 수많은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메리카원주민을 하나로 묶어볼 수 있는 키워드를 찾으라고 한다면 ‘위대한 신비’라는 말을 들면 정답이 되겠다.

대자연의 우주적 힘이자 질서인 '위대한 신비'에 대한 종교적 심성은 아메리카원주민들의 구심점이다


아메리카원주민들은 사는 지역을 불문하고 거의 모두가 이 ‘위대한 신비’ 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 이 위대한 신비는 매우 독특한 개념으로 기독교의 유일신과도 유사하면서, 불교의 ‘다르마=법(法)’ 과도 유사하다. 나는 아메리카원주민의 이러한 독특한 신관을 ‘기신(氣神)’관이라고 명명한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영적인 에너지, 모든 생명 속에 깃들어서 그 힘을 발휘하는 에너지가 곧 위대한 신비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동아시아 전통의 기의 세계관과 매우 흡사하다. 아메리카원주민 중 상당수가 기원전 베링해협을 통해 넘어간 몽골리안이라는 사실은 다들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아메리카원주민들 중 일부 부족이 태양을 숭배하는 것도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에 깃든 위대한 신비를 숭배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분석이다.

나는 아메리카원주민 특유의 자연에 대한 애정은 이러한 기신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아시아 역시 기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으뜸 가치로 여기지 않았던가. 인디언 하트란 바로 그러한 기의 감성을 말한다. 자연과 사람, 지구별을 이루는 모든 생명 속에 존재하는 ‘위대한 신비’.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바로 아메리카원주민의 종교요 사상이다.

아메리카원주민의 종교야말로 그 어떤 종교보다 지구와 지구의 생명을 사랑하는 종교가 아닐까 싶다. 또한 아메리카원주민의 종교는 기독교처럼 배타적이지 않고, 불교처럼 정형화된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자유롭게 이어지는 것이다. 비록 이해를 돕기 위해 종교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위대한 신비’는 종교적 개념이 아니다. ‘위대한 신비’는 아메리카원주민의 삶의 하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한 조각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한 조각은 아메리카원주민뿐 아니라 이 지구별에 살아가는 우리 인류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가슴속에 숨어 있는 지구별에 대한 사랑 그것이 곧 인디언 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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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는 많은 문제점을 미처 해결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삐걱거리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자본의 빛에 마음의 시력을 잃은 사람들. 발전의 논리에 빠져 매일매일 지구를 살해하고 있는 우리 ‘인류’라는 공범자들.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낭떠러지는 아닐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눈 중에서도 특히 마음의 눈.


요즘의 서점가에는 수많은 명상서적들이 모두 자기가 최고의 책이라며 잔뜩 뽐을 내고 있다. 아메리카원주민과 관련된 책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좋은 일이다. 좋은 책과 좋은 독자가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허나 자본의 상업주의에 편승해서 적당히 기획된 책들만 번역되어 팔려나가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서점가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아메리카원주민이 쓴, 현대의 아메리카원주민 문제를 다룬 책은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사라져버린 과거의 아메리카원주민, 신비한 아메리카원주민, 위대한 아메리카원주민... 이렇게 정형화되어 버린 아메리카원주민에게서 우리는 그저 환상과 공상의 욕구만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메리카원주민도 마찬가지다.


‘인디언 하트’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신비 역시 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책을 읽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인디언 하트에 대해 알고, 인디언 하트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우리가 인디언 하트를 지닌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참으로 인디언 하트를 지닌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많이 알지 못해도 인디언 플루트의 깊은 선율처럼 깊은 사랑의 향으로 지구를 향기롭게 하지 않을까. 우리 마음속에 잠자는 인디언 하트를 깨우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2%의 이타적 사랑과 삶에 대한 2%의 감사면 족하다. 100명 중 두 사람에게 보여준 이타적 사랑과 감사가, 다시 네 사람에게로 여덟 사람에게로 따스한 온기처럼 번져갈 테니까. 우리가 전한 2%의 인디언 하트는, 지구의 2%로, 그리고 우주의 2%로 나아가고 나아가서 결국 우리 모두를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 지구별 이웃 모두의 가슴에서 인디언 하트가 깨어날 그날을 기다린다.


- 끝 -


* 이 글은 제가 2005년에 '인디언 하트 싸이월드 클럽'을 열며 썼던 글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 )

** 2000년부터 사용 중인 제 필명 '멀고느린구름'은 아메리카원주민의 작명법에 따라 만들어진 이름이랍니다.




아메리카원주민 중 상당수 | 아메리카원주민 모두가 몽골리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몽골리안이 넘어가기 이전에도 아메리카 대륙에는 고유의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다는 고고학적 사례들이 최근 많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체로키족 같은 경우 몽골리안과의 인종적 유사성이 거의 없다. 대신 네덜란드인과 체로키인은 매우 닮아 있다. 구르는천둥에 의하면 네덜란드인과 체로키인은 모두 고대 아틀란티스의 후예로서 아틀란티스가 바다 속으로 가라 앉을 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표류해갔던 것이라고 한다. 나는 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또한 초고대 문명에 대해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구르는천둥의 말은 아틀란티스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바다의 심해에서 체로키어가 쓰인 고대 유적지를 발견했다는 고고학적 사실이 뒷받침해준다.


몽골리안 | <몽골리안 일만년의 지혜. 폴라 언더우드. 그물코>- 이 책은 이뤄쿼이 족에 대대로 구전되어 오던 전설을 정리한 책이다. 이뤄쿼이 족이 기원전에 큰 홍수를 겪고 베링해협을 넘어서 새로운 땅으로 가는 과정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베링해협을 건너기 전의 이 이뤄쿼이 족의 선조들은 바로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었다.


현대의 아메리카원주민 문제를 다룬 책은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까지 오른 적이 있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의 부제와 광고띠에는 어처구니없게도 ‘미국 인디언 멸망사’라는 말이 쓰여 있다. 그 부제를 보는 순간 나는그 책을 낸 ‘나무심는사람’이라는 초록빛 이름의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우르르 무너졌다.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대한민국 멸망사’라고 쓰고 광고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아메리카원주민은 멸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출판계에 그들을 두 번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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