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진짜 웃기다고 생각해. 누구든 자기가 편한 것이 제일 좋지. 그러면서도 편하면 안 된대. 편한 인생은 얻는게 없는 인생이래. 그러니까 이력서에 역경 란이 있고... 그런 거잖아.
"너무 편하게만 살아오신 것 같네요."
이전 글에, 직장생활 6년차인 나는 현재 5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적었다.(이 글을 마칠 때에는 8년차를 넘어 9년차가 되고 있지만..)
이직만 4번을 하다보니 많은 회사를 돌아다녀보고, 이력서도 많이 써보고 면접도 많이 겪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가름 하기에는 어려운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나는 많은 면접을 경험하고 다양한 회사에서 여러가지 사업 아이템을 구경해 보았다는 점에서 그래도 나쁘지 않은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정말 조그만 소기업이나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참 많은 면접 분위기를 겪었으니 지금 같은 취업난 시대에는 좋은 일 아닐까?
사실 요즘에는 최소 중견기업 이상이거나 공채 방식의 인재 채용을 할 수준의 기업이 아니고서는 기업 입장에서도 구인난이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도 면접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자신들의 회사에 끌리도록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압박 면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보인다.
나 역시 압박 면접보다는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는, 협상 같은 면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긴장 팽팽한 면접은 두어군데 밖에 보지 못했던 것 것 같다. 특히 대놓고 압박 면접을 진행한 곳은 딱 한 군데였기에 제법 기억에 남는다. 업력이 꽤 오래 된, 아마도 온라인 광고 대행업 발생 초기부터 꾸준히 해당 분야를 지켜 온 한 중견기업이 그랬다.
당시의 나는 그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겪은 여러가지 일들로 몸과 정신 모두 병들어 해당 직장을 그만 두고 이직을 위해 면접을 다니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또 다른 글에서 서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때의 나는 마음이 꽤 급한 상태였다.
모아 둔 돈은 전혀 없는데 계속해서 내과와 정신과 2군데의 병원비가 지출되어야 했다. 내과의 경우 조금 특수한 치료가 진행되어야 해서 주마다 5만원 이상의 치료비가 필요했고, 정신과는 막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작은 동네 병원임에도 초기 검사비 등으로 20만원 이상의 지출이 발생한 상태에서 주에 1~2회씩 1만 몇천원 정도의 진료비와 약값의 지출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월세와 각종 공과금, 기본적인 생활비도 유지되어야 했다. 본가에서도 사정이 좋지 않아 원조해 주기 어렵다고 했다.
마지막 월급과 1년 분량의 퇴직금으로 (심지어 많지도 않은 쥐꼬리 같은 금액의 급여로) 버텨야 했고, 한달이 지나도 새 직장을 찾지 못하면 힘들어질 것을 계산했다.
그래서 다급하게 이력서를 갱신하고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보이는 대로 마구 지원을 넣으면서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문제의 그 중견기업은 그 때 어쩌다 '얻어 걸린' 곳이었다.
이력서를 한번이라도 작성해 보았다면 가질 의문이 있다고 본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인생에서 무슨 역경을 겪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할까?
이력서에는 항상 자기소개서를 첨부하도록 되어 있고, 그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의 인생스토리가 꼭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로는 '인생의 역경'을 적는 항목을 따로 두어 그곳에 어떤 역경과 삶의 풍파를 맞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같은 내용을 서술하기도 한다.
내 자기소개서에 적히는 '인생스토리'는 처음 적었던 신입 이력서부터 지금의 경력 이력서까지 모두 "평범하게 살았다"라고 적혀있다. 나는 정말 정말 평범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재산이 많거나 적은 것도 아닌 그럭저럭 남들만큼 가진 집안, 남들만큼 버는 부모님, 적당히 엄하고 적당히 유한 육아 방식, 딱 중간 정도의 성적, 남들 다 가는 평범한 학교를 나온 평범한 학력 수준...내 '인생스토리'에는 그다지 조미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력서를 쓸 때 고민하다가 그냥 '평범하다'라고 적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굳이 자식에게 짐을 지워주거나 불편함을 얹어주려는 사람들도 아니고, 방임주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않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집에서 적당히 교육 받으며 자란 사람은 굳이 내세울 역경이나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재산 수준도 집안도 평범하고 내가 특출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한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경험한 에피소드도 없다. 심지어 내 성격도 대부분 덤덤하고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보니 남들에게 조금 어려웠다고 느껴질 수 있었을 사건들도 딱히 특별히 힘들거나 어려운 역경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렇게 길지도 않았던 삶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을 골라 내어, 그걸 넘어 온 과정을 서술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 능력이나 잠재력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나는 구인구직 사이트의 이력서 입력 시 등장하는 자기소개서의 형식적 항목을 다 지우고 자유서술 형식으로 바꿔 작성했다. 형식에 들어간 항목이 오히려 내가 나를 소개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다.
난 그저 커다랗게 이어진 빈 화면에 내가 얼마나 평범하게 살았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 평범한 삶이 얼마나 큰 장점을 가지는지 적어 나갔다. 이제는 경력직 이력서로 바뀐 지금도 이런 맥락은 유지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이 자기소개서를 보고 '긍정적 인상'을 이유로 연락하는 기업도 꽤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단점보다는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대놓고 부정한 곳이 앞서 서술했던 그 중견기업이었다.
그곳에서 진행했던 면접은 그 이후 대략 1년 간 문득 떠오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는데,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시대에 잘 없는 전형적인 압박 면접이었고, 더 나아가 그 때 들었던 질문이 틈틈히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규모가 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면접은 단체 면접으로 진행이 되었다.
중견기업 이상 기업들의 면접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기 자랑'이다. 그들은 면접 자리에서 지원자들을 앉히고 먼저 자기 회사를 자랑한다. 정성스러운 곳은 PPT를 만들어 발표도 한다. 물론 그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류를 보고 자기들이 불러오긴 했지만, 아무튼 지원자들이 기업을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더 간절하게 입사를 원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 회사도 나를 포함해 총 5명의 지원자 앞에 3명의 면접관이 앉아서 한동안 '자기 자랑'을 했다.
보통 그 내용을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지원자들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아무튼 내가 들어 보기에는 기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기업의 프라이드가 높은 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그 기업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고, 그 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만큼의 프라이드를 가진 채 재직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 거기까지는 좋았다. 게다가 나는 의외로 면접 자리에서 여러 회사의 여러 직책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하는 자기 얘기를 듣는걸 꽤 재밌어하는 편이다. 각자의 삶과 사고 방식이 거기에서 보이고, 때로는 이런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반응하기도 하는구나 배워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의 면접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곳 면접관들은 자신들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를 포함한 총 5명의 면접자들을 향하여 각자의 이력서를 넘겨보며 그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들을 굳이 손으로 잡고 들춰내듯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그 부분을 부각하여 질문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앞에서 자꾸만 고개를 수그리고 마치 상사에게 잔뜩 혼이 난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주눅들어 갔다. 거기서부터 나는 이미 '이게 지금 뭐하자는 면접이지?' 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차례가 돌고 돌아 나에게 왔다.
그들은 내 이력서를 유독 한참 뒤적거리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레야 씨, 이력이 꽤 화려하시네요? 할줄 아는 것도 많으신 것 같고 특이해요. 그런데, 너무 편하게만 살아오신 것 같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머릿속에 마치 만화처럼 뎅- 하고 징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들이 내 이력서의 어떤 내용, 어떤 부분을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 나는 모르고,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하지만 대충 어느 부분 탓이었는지는 알 것도 같다.
당시 내 이력서에는 6년이 되는 이력에 최장 근속이 2년 정도로 적혀 있었고, 그 회사들의 규모도 대개 다 작았다. 그러니까 전체 사원 수가 200명쯤은 되는 중견기업에 마케팅 업계에서 상당한 업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작은 회사를 1~2년 간격으로 그냥 전전하면서, 다니다가 불편해지면 이직하기를 반복하는 사람 정도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해가 안 되지는 않는다.
한 회사를 꾸준이 다니기보다는 여러 회사를 짧게짧게 건너다닌 사람은 자신의 편안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끈기나 인내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내가 구태여 막아 당신들의 생각은 틀렸고 편협하다고 할 마음은 없고,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옛날과 다르게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약한 지금 우리 세대이지만, 그 안에서도 처음부터 자신과 잘 맞고 연봉도 잘 주는 큰 회사에 들어가 잘 자리를 잡고 쭉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경영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잦은 이직 이력을 가진 사람이 얕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편하게 사는 것이 나쁜 일인가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다시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편하게 산다는 건 모든 것을 그저 회피하며 내 맘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만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조금 더 건강하고자 했다. 올바른 역경, 그럴만한 어려움을 자신이 노력하고 방법을 찾아 해결해 간다면 그것은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역경과 어려움 자체가 일그러진 것인 경우도 많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체적으로도 사람마다 가진 체력이나 신체능력, 지구력이 각기 다른 것처럼 마음 역시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범위도 다르다. 그리고 유독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안타깝게도 그 역경과 어려움이 일그러진 형태로 나타난다.
내가 대학 졸업장도 받기 전에 입사했던 첫 회사는 업무 방식도 비효율적이고 대표도 마케팅 사업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인데 돈이 아깝다며 필요한 투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6개월 정도 다니고 지쳐서 나갈 정도의 아주 작고 경영 상태에 답이 없는 회사였고, 난 4개월차에 그만뒀다.
옮겨간 두번째 회사는 연봉은 위의 첫 회사와 별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20명 정도는 되는 사원 수에 규모나 체계도 좀더 잡혀 있는 곳이었고, 잘 된다면 성장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 회사였다. 대표나 임원진의 욕심도 제법 있는 편이라 조금 꾸준히 다녀볼까 생각하고 다니던 중, 1년을 조금 넘었을 때 대표가 무모한 신규 사업을 벌였다 실패하여 회사에 빚만 엄청 쌓인 꼴이 되는 상황이 생겨났다. 당시 그 대표는 본인의 스트레스 탓에 결국 모두의 앞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말았고, 그 이후 나름의 이미지 회복을 노렸던 것인지 친목동호회 같은 활동을 여러번 열곤 했는데 그것이 곧 업무에선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퇴사자가 급격히 늘어 사람은 줄어가는데, 개인 면담에서 '인당 업무 상황이 좀 빡빡하고 벅차다 해도 그 업무가 안 돌아가는건 아니니 그것이 그 업무의 최소 인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추가 채용 계획은 없다' 라고 나에게 말하여 역시 여기도 가망이 없겠다 생각하고 2년 조금 더 된 때에 그만두었다.
그 후 6개월 정도는 백수로 쉬다가 당시 이전 회사의 실장이었던 분이 내가 나온 뒤 다른 회사로 이직하였는데, 내가 와서 같이 일해줬으면 한다고 해서 마침 재취업을 고민하던 때라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10개월 정도 다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로 권고사직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어떤 실적을 내지 못하고 너무 기력 없이 회사를 다닌 탓이 아마 그 이유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막 독립하여 내 이름으로 계약한 월셋방에서 자취를 시작한 때와 권고사직 시기가 겹쳤기 때문에 당장 수입이 아예 없어지는건 곤란했고, 급히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구인구직 사이트에 오픈해 놓은 내 이력서를 보고 먼저 오는 연락들도 받으면서 급하게 미친듯 면접을 다니고 폰으로 컴으로 수없이 이력서 지원을 넣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한 스타트업으로, 나에게 연봉은 크게 주지 못할 것이라 했지만 당장 마케터가 필요해 채용하는 것이므로 서로 잘 돕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 점이나 면접 본 당일 저녁에 상당히 간절하게 꼭 와줬으면 한다고 연락이 와서 입사를 결정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면접 당시나 막 입사했을 때의 이미지, 분위기와는 너무 다르고 본격적인 마케팅을 하고자 마케터를 뽑았다면서 마케팅에 힘 쓰고 신경 쓰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모 대기업 출신이라는 대표가 자기가 교육을 해주겠다고 만들어 가져온 자료는 이미 2~3년 전에 바뀐 트렌드인 등 서로 돕고 배우며 성장하긴 커녕 내가 뭘 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만 1년을 꾸역꾸역 버티다, 몸도 마음도 병만 얻고 1년을 꼭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 뒤 면접에서 들은 질문이 '너무 편하게 산 것 같네요' 였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건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나는 무례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내가 위에 서술한 저 상황들을 알았을까?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여 그렇게 여러번의 이직을 거쳐온 것인지, 그럼에도 그냥 나는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자기소개서의 문구가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사실 면접이니까, 말을 듣고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저 질문만큼은 여전히 머리에 남아 종종 떠오른다.
'편하게 산다'는 건 나쁜 것이 아니며, 인생에 항상 어떤 큰 이슈나 역경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찾아오는 모든 역경과 고난을 꼭 정면으로 부딪혀 이기기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역경은 그 자체가 이미 일그러져 있어서 맞서고 넘어가려다 얻는 것은 하나도 없이 그저 구르고 다치고 상처만 입은 채 끝나는 경우도 분명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겪은 본인만 알고 겪은 본인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며, 이력서라는 서류에 기재된 몇 줄 문장만으로 남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나에게 한 '편하게만 산 것 같다' 라는 발언은 아무리 면접 자리였다 해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특히나 성인ADHD라는 특성을 갖고 있고, 그 외에도 몸이나 마음이나 각종 만성적인 질환을 줄줄이 달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비록 남들이 보기에 편하게만 산 것처럼 보여도 본인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많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서로 다른 여러 특징을 가진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다 함께 이 정신 없는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남의 삶에 함부로 편하게 살았다, 힘들게 살았다 같은 평가를 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유별난 역경과 고난 없이 그냥 살아가는 대로 살아 온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을 편하게 살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산게 아니라, 어떤 일에든 무난하게 대처하고 무던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나도 남도 덜 다치고 덜 아플 길을 능숙하게 탐색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면접장에서 들은 '편하게만 살았다'라는 말을 전해 들은, 우리 엄마가 해 준 말이다.
편한 인생은 얻는 것 없고 자기 멋대로인 인생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인생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면접자의 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음...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솔직하게 제법 기분 나쁘고, 죄송하지만 정말 무례하시네요. 제가 정말 편하게만 산 것인지 어떤 것인지 뭘 보고 어떻게 아셔서 초면에 비즈니스 목적인 공적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실까요? 이 회사에서 저는 채용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거절할게요."
성인ADHD 진단은 이 일이 있고 나서 약 1년쯤 후에 받았다.
분명 성인ADHD가 가진 특징 중 하나에는 잦은 이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ADHD라서 끈기가 부족하거나 마냥 충동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자기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더 잘 알기에 그럼에도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며 즐겁고 활력 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내가 더 잘 해서 인생의 한 계단을 더 올라갈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알아보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나름대로 노력하다 보니 생기는 특징이 아닐까?
실제로 저 일들을 겪은 뒤 지금 재직중인 회사는 3년 넘게 꾸준히 다니는 중이며, 이직할 생각 역시 없다.
현 회사에 입사하고 1년쯤 되어 내가 성인ADHD로 진단 받고 치료를 받게 된 영향도 있겠지만, 지금 회사는 나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원해주고, 불편한 것이 있으면 개선되도록 빠르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곳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인ADHD인 나 뿐 아니라 현재 회사에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평가한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함부로 '편하게만 살았다'고 말하며 마치 삶에 어떤 고난을 넘어 온 히스토리가 없으면 성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게 되었으면 한다.
누가 어떤 질환이나 장애, 갖가지 특성들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누구든 '적당히 무난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가 되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