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 키 작은 남자의 연애(1)

키 작은 남자의 초중고

키 작은 남자의 초중고


손잡고 장난치고 설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여자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매일 양쪽에 한 명씩 손 잡고 하교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아이들과 손 잡는 게 좋았다. 여자 아이들과 하는 인형 놀이도 좋았고 공기놀이도 좋았고 쎄쎄쎄도 좋았다. 동네에서도 여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해서 동네 한 살 많은 누나를 '언니~'하면서 곧 잘 따라다니기도 했으며 동네에서 숨바꼭질할 때면 항상 여자 아이들과 함께 숨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다른 남자아이들이 놀려서 여자 아이들과 손 잡기를 안 하고 함께 숨기도 안 하면서 책상에 줄 긋고, 니 자리 내 자리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언니에서 누나로 호칭도 바꿔서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 아이들과 노는 게 좋았는지 주말이면 사촌 여동생들과 그 동네 여자 아이들과 놀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우리 집은 다른 두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다. (한 지붕 세 가족 - 주택이었으며 부자는 아니지만 집이 좀 컸음.) 나는 옥탑방에 형과 함께 지냈다. 형이 없을 때면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다. 옥탑 방은 부모님으로부터 약간 독립되어 있어서 친구들과 놀기 좋았다.


그 날은 다른 날과 같이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누군가 문을 열었다. 존재만 알았던 그 여자아이였다. (하얀 피부에 이쁜 그 여자아이는 6학년이었던 나 보다 키가 10센티는 컸다.) 당당하게 문을 열고 방을 들어온 그 여자아이가 한 말은 '뭐해? 같이 놀자~'였다.


당황한 친구들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잠시 앉아 있던 그 여자아이는 '재미없다, 안녕~'하고 내려갔다. 그 여자아이는 우리 집에 전세 살던 뒷 집의 막내딸이다. 그 날 이후 집에 오면 그 여자아이와 놀았다. 소꿉놀이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약수터에 가서 운동기구로 놀기도 하고 거의 매일 놀았다. 놀기의 시작은 그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 때였다. 같이 노는 시간이 끝나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모른 척했다.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큰 키가 문제였을까. 학교에서 나쁜 언니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나와 안 노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그러던 어느 날 나쁜 언니들에게 감금 당해 몇 날 며칠을 맞은 그 아이가 거의 죽을 지경이 돼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학교를 자퇴한 그 아이는 멀리 이사를 갔다.




수 천명의 소녀에게 받은 편지


자주 가던 동네 서점에서 뮤직 라이프라는 잡지를 보게 되었다. 뮤직 라이프는 새로운 뮤지션을 소개하기도 하고 신곡이나 다양한 음악을 소개해 주는 월간 잡지이다. 당시에 (故) 신해철, 김경호 등이 뮤직 라이프에 소개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잡지에 몇 페이지에는 펜팔 친구를 찾는 코너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간단한 소개, 사진 등이 나와 있었는데 95%는 여자였다.(참고로 사진은 희망하면 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 남자가 있어도 얼굴이 별 로거나 소개 내용이 별로인 남자가 대부분이라 호기심에 나도 한 번 도전해 봤다.

소개 내용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1학년이 펜팔 친구를 찾아요.' 정도였다. (사진 첨부 안 함)


다음 달 뮤직 라이프가 발간되고 오기 시작하는 편지. 하루에 최소 20~30통씩 오거나 어떤 날은 100통 이상도 온 날도 있었다. 집배원 아저씨가 내 이름을 외울 지경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편지에는 친구 하고 싶다는 내용이 가득이었고 더러는 껌과 자기 증명사진을 동봉하기도 했다. 동시에 수십 명의 이성 친구와 펜팔을 했다. 당시 우표와 편지지에 모든 용돈을 썼다. 이 사정을 짐작했는지 어떤 펜팔 친구는 편지 봉투 안에 자기와의 펜팔에 사용할 편지지와 우표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펜팔을 하며 증명사진을 주고받았는데, 당시 내 얼굴이 나쁘지 않았는지 내 사진을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이 반응이 진짠지 궁금한 나는 다음 달 뮤지 라이프에 사진까지 첨부해서 게재했다. 결과는 하루에 최소 100통의 편지였다. 쏟아지는 편지를 감당 못해서 읽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여파는 몇 달이 계속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사춘기라 그랬는지 통학하는 버스에 또래 이성이 있으면 온 몸이 긴장되고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어쩌다 초등학교 동창 이성 친구가 먼저 아는 척을 해도 도망가기 일수였다.

이성에 대한 부끄러움은 펜팔을 통해 알게 된 이성 누나, 동갑, 동생들과 번개와 통화를 열심히 하면서 여자가 남자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호전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작은 키 극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