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 키 작은 남자의 연애(2)

키 작은 남자의 스물, 하나

키 작은 남자의 스물, 하나


왜 그랬을까


스무 살. 대학생이 되었다는 기쁨보다 더 이상 학교 선생님의 간섭이 없다는 것이 기뻤다. 대학생이 되면 여자 친구가 자동?으로 생길 것 같은 착각도 좋았다.


그녀를 만난 것은 같은 지역의 대학생회에서였다. 학교를 가리지 않는 연합 학생회여서 다른 학교 선배와 동기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엄청 이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외모였다. 성격도 다른 사람을 꺼려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정도였다.


학생회 모임에서 술도 마시고 학생회 방에서 몇 번 이야기하다 보니 그녀와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버스 정거장에서 그녀와 마주쳤고 그녀의 집 앞까지 걸어가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몇 번 함께 버스도 타고 걷다 보니 많이 친해졌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당시에서는 삐삐를 사용했다. 어느 날부터 그녀에게서 오는 삐삐에 삐삐 번호가 아닌 '7942'라는 번호가 찍히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서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친구들도 7942의 의미를 몰랐다. 참고로 당시에 내 주변 친구 중에 연애 해 본 인간이 없었다! 7942가 그녀의 생년월일인 줄 착각하기도 했다. 79년 4월 2일인가..? 자기 생일 선물 달라는 건가..? 자기는 한 살 어리니까 내가 오빠라는 건가..?


어느 날부터 그녀가 버스 타는 시간에 기다려도 정거장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강의가 빨리 끝나는 날이면 얼른 버스 정거장에 와서 막차 시간까지 그녀를 기다렸고 그런 날이 잦아졌다. 그래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삐삐를 남겨도 연락이 안 오거나 와도 이미 집에 도착했으니 조심히 들어가라는 메시지였다. 어김없이 남겨진 번호는 7942였다. 그녀를 못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에 그리움만 쌓여갔다.


오랜만에 학생회 엠티에서 그녀를 보게 되었다. 못 본 사이에 그녀는 학생회 친구(남자)의 여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알게 되었다. 7942는 친구 사이를 의미하는 숫자였다는 것을.


엠티 이후에 학교도 거의 안 가고 매일 술 마시고 술 안 마시는 시간에는 고민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너무 일방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이 나와 같을 거라는 착각이 심했다. 왜 일방향이었을까 연애를 몰라서였을까.


지금의 나는 스무 살 봄에 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너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그녀가 어떻게 느낄지 그녀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하면 그녀와 달콤한 연애를 할 수 있어.'


이렇게 스무 살 6월이 끝났다.




연애는 알바에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동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연애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점포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 동생 중에 커플이 안 된 사람이 드문 편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중 절반 이상은 고등학생이었다. 걔 중에 눈에 띄는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150 후반 대의 키에 단발, 이쁘고 귀여운 캐릭터였다. 나만 이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지, 그 여자아이가 주문대에 서 있을 때면 남자들이 줄을 섰다. 옆 주문대에서 주문할 수 있어도 굳이 줄을 서는 마음이란..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도 인기가 좋아서 고백도 여러 번 받았다. 매번 그 여자아이가 거절했지만.


오빠 동생으로 그 여자아이와 친하게 지냈다. 내 머릿속에는 성인인 내가 고등학생을 만나는 것은 범죄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귀여운 동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스무 살 여름의 끝 무렵.

점포의 친한 사람들과 함께 근처 계곡으로 엠티를 갔다. 무슨 생각인지 텐트 하나만 가지고 7명이 갔다. 늦은 밤에 전투모기와 싸워가며 모닥불도 피고 새벽까지 술 마시고 놀았다.


그 여자아이의 제안으로 진실게임을 하게 됐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여자아이가 질문했다.

'오빠 나 이쁘죠?'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OO 이쁘지~'


진실게임이 끝나고 사귀는 사람들은 산책하러 갔다.

나와 친한 친구(남자), 그 여자아이만 남았다.

그 여자아이가 말했다.

'오빠 나랑 산책해요.'

'그래(살짝 부담;;)'

5분 정도 걷다가 그 여자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오빠 나 오빠한테 관심 많은데 우리 사귈까?'

'야 야~ 너 고딩이야 왜 그래?'

'뭐 어때? B오빠도 스무 살인데 C랑 사귀잖아'

'그런가..^^;;'

'오빠 그럼 나랑 사귀는 거다.'


이렇게 내 첫 번째 여자 친구가 생겼다.

연애에 있어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여자와 손깍지도 껴 보고 달달한 연애를 했다. 고등학생 그녀를 위해 공부도 가르쳐 주고 캠퍼스도 함께 산책하곤 했다.

그렇게 잘 이어가던 연애는 고등학생과 군입대를 곧 앞둔 대학생의 한계였을까.

그녀가 고3이 되고 나는 군 입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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