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시대, 인간의 일'을 읽고..
어찌 보면 리첵 홍보성 글이 될 수 있는데,
전국 독후감 공모전에 당선됐어요^^;;
우리는 더 이상 신기해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첨단기기에 의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상에서는 스마트 폰으로 대표되는 IT기기로 인한 삶의 변화를, 일터에서는 자동화 설비와 업무시스템에 따른 편함을 느끼고 있다.
나와 같은 X세대는 중학교 이전에는 ‘oo야~ 놀자’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는 뮤직 라이프라는 잡지를 통해 펜팔 친구를 찾고, PC통신(천리안, 하이텔 등)으로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친구(심지어 나이도 성별도 모를 정도였다.)와 소통하는 설렘을 느꼈다.
우리 다음 세대는 어떨까. 태어날 때부터 지금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지금보다 더 발전된 환경에도 무척이나 잘 적응하며 살아갈 거라 생각한다. 마치 우리 할아버지 이전 세대의 환경과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다름에도 우리가 잘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책에서 말하는 ‘로봇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책에서는 다양한 변화상으로 메시지를 전해주지만 이 또한 걱정되지 않는다. 로봇 시대라는 것이 단기간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인간’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인간 문명에서 로봇은 오로지 ‘수단’ 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간으로 존재하고 인간으로서 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고 인간의 삶을 누리고자 한다. 로봇은 그것을 위해 사용되는 보조적인 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로봇에 수단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와 같이 사이버넷이라는 프로그램과 휴머노이드 터미네이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로봇이 많은 영향을 주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행동 세 가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로봇과 관련 기술이 주는 편함과 즐거움을 즐기면 된다. 무인자동차가 주는 편함과 여유로움. 세계의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자동번역기 활용성. 외울 필요 없이 찾는 지식의 풍요로움. 자동화로 위험이 줄어든 안정감. 자동화로 줄어든 노동시간과 늘어난 여가시간. 공감이 어려운 순간과 사람을 위한 휴머노이드의 위안 등 다양하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문명에 처음에는 낯설어하면서 금방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누려왔다. 동일하게 로봇이 주는 편함과 즐거움을 받아들이면 된다. 로봇이 주는 혜택을 거부하는 것은 그 외의 문명 발전과 그 혜택을 받아들였던 행위들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로봇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은 노동으로부터 해방이다. 과거 문화가 융성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예제도 인해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에서 해방된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0년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테드(TED. 다양한 주제의 세계적인 강연회)에서 세탁기를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았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여성의 가사 노동은 빨래였다. 세탁기는 여성을 이 강도 높은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냈다. 로봇시대에는 로봇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는 로봇에게 노동의 빼앗김을 불안해하기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집중할 수 있음을 즐겨야 한다.
두 번째. 궁금해하면 된다. 우리는 늘 그래 왔듯이 무수하게 많은 것들을 궁금해한다. 존재하고 있는 것도 왜 존재하는지 궁금해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상상력을 펼치며 궁금해한다. 굳이 질문을 던지고 호기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가면서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호기심을 가졌던 것처럼 매 순간에 물음표를 머릿속에 가지고 또는 누군가에게 질문으로 던지면서 살면 된다.
이 끝없는 질문, 호기심이 새로운 발전과 직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로봇으로 없어진 인간의 작업과 직업은 인간의 호기심이 채울 것이다. 이것은 다시 자동화되어 없어질 것이고 다시 인간의 호기심으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우리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례를 적잖게 볼 수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xxxx가 있다면 어떨까? OOO는 왜 그럴까?’등의 호기심(또는 의구심)에서 시작한다. 일례로 ‘리첵’이라는 웹서비스가 있다. 리첵은 전화로 하는 평판조회를 온라인이라는 환경으로 옮겨서 편파적인 평판조회를 줄이고자 하는 서비스이다. 리첵은 ‘평판조회는 왜 전화로만 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세 번째. 서로 교감하면 된다. 교감은 상호작용과 감정의 교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상호작용은 사전적 정의로 [ 둘 이상의 물체나 대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행동을 의미한다. 위키피디아]이다. 감정의 교류는 [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닌 자연스럽게 마음이나 생각이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이다. 우리는 상호작용과 감정의 교류 모두 필요하다.
2017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개의 사건(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17살 여학생의 8살 어린이 살인사건)이 있다. 모두 미성년자가 미성년자에게 위해(폭행과 살인)를 가한 사건이다. 가해자의 공통점은 피해자의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과하게 연관 짓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비대면 소통(SNS 등 활용)이 많아지면서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교감이 부족했던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로봇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교감의 대부분인 로봇시대가 오면 어떨까.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고 소통할 이유가 거의 없어질지도 모른다.
작가가 책에서 다양하게 제기한 이슈들과 그에 따른 제언을 읽으면서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인간다움을 잃지 말아야 하는구나.’였다. 로봇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으로써 로봇을 바라보지 않고 경쟁하거나 원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 것을 책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하고 이해하고 궁금해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현재의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는 것이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다. 로봇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말자. 우리는 현재와 같이 서로의 감정을 보듬어주고 이해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과 인간의 사회성을 유지시켜 나가며 인간답게 살면 된다. 또한 로봇이라는 수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그 혜택을 즐기면 된다. 즐기면 또 다른 목적과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첨단 로봇시대가 오는 것이 기쁘다. 어릴 적부터 얼리어답터를 자처할 정도로 IT기기와 자동화 등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로봇시대는 두려움보다 기대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아직 시대 발전과 약간은 동떨어진 우리 장모님과 같은 분도 계시다. KTX를 인터넷으로 예매하지 못하셔서 줄 서서 기다리시고, 인터넷뱅킹이 어려워서 은행에 가서 수수료를 내고 은행 일을 보신다. 아직은 인터넷 사용도 어려워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는 분들, 로봇시대와 동떨어져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즐기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사회적인 대비책이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
현재를 보다 소중하게 가질 수 있고, 인간으로서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작가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