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어느 날 백석이 내게로 왔다

- 안도현의 <백석 평전>을 읽고 나서 -

by 푸코

어느 날 백석이 내게로 왔다

- 안도현의 <백석 평전>을 읽고 나서 -


하나.


내게 시인 백석은 흑백 사진 속의 잘 생기고 세련된 '모던 보이'의 모습으로 처음 다가왔다. 짙은 눈썹 아래 형형한 눈빛, 정갈한 곱슬머리에 멋들어진 수트 차림. 나라를 빼앗겨 모든 게 우울했을 1930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댄디한 모습은 너무나 강렬했다. 사진 속의 그 멋진 시인의 더 기막힌 문장을 제대로 마주하기까지는 그로부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92년만해도 백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찾은 논문이나 개론서에서도 그의 실체는 온전치 못했으니 말이다. 지금에야 그의 시적 성취와 가치를 인정받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인으로 자리 매김했지만, 당시 내가 찾아본 서적 속의 문장에서는 때론 xxxxx로, 백x로 지워진 이름인 경우가 허다했다. 어깨 너머로 들은 바로는 대단한 시인이었다는데, 북으로 갔다는 그 이유 하나로 모든 게 부정당해 버린 시인, 먼 나라의 고독한 땅에 사는 낯선 황제를 만나는 느낌 속에서, 그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가서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땅 파고 훈련하던 사이, 시 한 편, 소설 한 권 손에 잡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백석은 또 그렇게 내 기억속에서도 잊혀져 갔다. 여러모로 유령 같았던 그가 내 삶의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1999년, 지금의 학교에 국어 선생으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언급하면 사상의 의심을 받고, 금기시 되었던 백석, 정지용, 임화 같은 소위 월북 시인들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하는 시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당한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갑자기 너무도 중요한 작가가 되어 버린, '대접과 소환'에 당사자였던 시인 자신들도 조금은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세상은 어찌 그리 예상을 빗나가는 일 투성인 것인지, 삶의 예상이란 것이 있기는 한건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나는 일반 수업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심화 수업에서도, 심지어 기본기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기초 수업에서도 ‘잊혀졌던 시인’들을 이제는 절대 ‘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 때 다시 만난, 백석은, 확실히 배우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 하는 배우처럼 소위 ‘레벨’이 달랐고, ‘남 영랑, 북 소월’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충격으로 ‘북에는 소월’만 있는 것이 아님을 몇 편의 시로 바로 증명해 버렸다.(물론, 이 얘기는 전적으로 내 감상과 평가일 뿐이다. 진즉부터 백석의 시적 성취는 연구자 사이에 명성이 자자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와 나눈 가장 강렬하고도 웃픈 추억은 2004학년도 수능 시험일이 지난 며칠 뒤인 2003년의 겨울 고3 교실에서 벌어졌다. 그해 수능 언어 영역 17번 문항, 백석의 <고향>이란 시를 두고 벌어진 복수 정답 사태. 법정 공방 끝에 정답이 추가 인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 교실은 월드컵 4강이라도 간 듯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환호가 비탄과 아쉬움으로 바뀌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평가원이 처음 제시한 정답은 3번이었고 새로 인정된 것은 5번이었건만,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찍은 번호는 허망하게도 '2번'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답이 두 개가 되었음에도 정작 내가 쥔 이익은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하던 아이들의 뒷모습 위로 백석의 시구가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백석은 내게 문학적 감동보다 앞서, 입시의 소란스러운 해프닝으로 먼저 다시 소환되어 마음에 각인되었다.


둘.


수능의 소란이 지나간 뒤, 나는 비로소 '입시의 필수 관문'으로서의 백석이 아닌, 대학 시절의 그 궁금했던 백석을 다시 만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르쳐야만 할 텍스트로서의 그의 시와 수필이 아닌, 문학 작품으로서의 ‘그의 얘기를 하나씩 찾아 읽으며 깨달았다. 그가 왜 '시인들의 시인이었는지', 그가 시행 사이 사이 수필의 단락과 단락 사이에 배치한 국수, 가재미 같은 음식들이 왜 '해체된 가족 공동체나 고향'을 불러 내는 주문과도 같은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백석의 시를 읽다 보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 있던 어린 시절의 맛 하나가 비릿하게 올라오곤 한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구석진 어촌에는 엄마, 동생, 아빠가 함께 살고 있었고, 나만 홀로 도시의 외가에서 1년 반 정도를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기간은 대략 길어야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다. 정서적으로는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기간이 더 길었던 것만 같은데, 전학 학년과 당시의 추억을 종합해 보면 길어야 1년 반 정도였던 듯싶다. 그만큼 어린 마음에 외로움이 컸던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 오래된 외할머니가 언젠가 나를 보러 온 엄마에게 했다는 그 말 때문인지 – ‘없이 살아도 함께 가서 니 식구들끼리 사는 게 좋겠다. 어린 것이 눈치 보는 게 안쓰러워 보인다’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언젠가 말을 한 기억이 있다. -


드디어 가족 곁으로 가기 위해 도시에 오신 아버지를 따라 길을 나섰다. 가던 도중 고창 해리면의 어느 시장 통에 들어선 아버지는 토끼 고기를 볶음의 형태로 만든 토끼탕 비스무리 한 것을 시켰고, 처음 맛보는 토끼 고기와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당면의 탱탱함이 지금도 혀 끝에 미세하게 기억이 난다. 시장통의 소음과 식당 안의 눅눅했던 공기 속에서 맛 본 토끼 고기는 전학 가서 맞이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이제 다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으로 지금껏 맛 본 가장 맛있는 토끼 고기였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교직에 들어온 후, 20여년 이상을 친하게 지내던(변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동료들과 어느 유명하다는 토끼탕 집을 찾은 적이 있다. 30이 다 되어버린 내 입맛에 유명 식당의 토끼 고기는 그리 나쁘지 않은 맛이었음에도, 그날 그 시장통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 먹었던 어린시절의 가슴 벅찬 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쫄깃거리고 감칠맛 났던 토끼 고기의 뼈가 이리 억센 것이었나 하는 생각만 남게 해 주었다. 음식은 단순히 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간과 장소, 함께했던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함께 마음의 창고에 저장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백석이 그토록 고집스럽게 토속적 어휘를 나열하며 고향의 풍경을 복원하려 했던 이유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공기'를 붙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 원문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흑백 사진 속의 그 세련된 사내가 실제로 어떤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갔고, 평양과 통영과 경성과 만주를 헤맸는지,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과는 어떤 표정으로 이별했는지..시의 행간 속에 숨겨진 '인간 백석'의 진짜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시가 건네준 뜨거운 감동이 시인의 실제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질 무렵, 나는 자연스럽게 안도현의 《백석 평전》을 펼쳤다. 그 속에는 실제 시인인 저자가, 자신이 가장 존경한다는 그리고 닮고 싶다는 시인의 삶을 정성껏 복원해 낸 가슴 아프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제 우리는 여행 가이드인 저자의 안내에 따라 ‘백석 투어’를 떠나는 여행자가 되어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셋.


기존의 평전이 인물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일생을 서술하면서 비평을 곁들이는 데 비해, 이 책 『백석 평전』은 백석이란 시인의 생애를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구성해 내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인물에 대한 자료를 그저 옮겨 놓는데 그치지 않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독자에게 당시의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해 준다는 점은 친절한 독서경험을 가능케 하기에 인상적이다.



그는 옷차림에서부터 호사를 부렸다.

어느 날 백석이 연둣빛깔이 나는 더블버튼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양복은 매우 고급스럽게 보였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가 말했다.

“이건 이백원을 주고 맞춘 양복이야.”

신현중과 허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30원에서 4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양복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2백원이라면 서너 달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었다.

“역시 자네는 모던보이가 틀림없어.”

“당장 장가를 들어도 되겠군.”

백석은 보통 사람들이 한 켤레에 20~30전짜리 양말을 신고 다닐 때에도 1원이나 2원을 줘야 살 수 있는 양말을 신었다. “양말이라고 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나는 완벽하게 챙겨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지 않으면 대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백석은 빈틈이 없었다. 깔끔하지 않은 모든 것은 그의 적이었다. 백석이 신현중에게 말했다.

“내가 1원 50전쯤 하는 양말을 봐두었는데 그거 한 번 신어봐.”

신현중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백석은 재차 다그치듯 말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신어보래두. 아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걸?”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신현중은 팔자에 없는 값비싼 양말을 신어본 적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1949년 4월에 나온 《영문(嶺文)》 7집의 「서울 문단의 회상」이라는 수필을 통해 알려졌다.


-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116~117쪽 -


7월, 가늘게 실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백석은 친구 허준의 결혼 축하 회식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허준의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낙원동의 여관이었다.

“오늘 저녁 분명히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있게 될 거야.”

낙원동으로 걸어가던 신현중이 백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얼굴에는 짓궂은 표정이 역력했다.

“통영 여자들이 얼마나 예쁜지 감격하게 될 거라고!”

백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회식 모임 장소인 여관으로 가는 동안 백석은 가슴이 쿵쿵 뛰었다.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백석은 무덥고 습도가 높은 날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신현중은 자신의 여동생을 친구 허준에게 맡긴 뒤 백석에게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통영의 여자들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당시 신현중의 누나 신순정은 경기도 포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통영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가르친 제자들이 경성으로 유학을 와 옛 선생님을 자주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이화여고보에 다니던 박경련과 경성여고보의 김천금, 김윤연이 있었다. <중략> 이들은 모두 옛 스승의 동생인 신현중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신현중은 결혼 축하연을 핑계 삼아 이 처녀들과 백석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주선했던 것이다.

첫눈에 백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박경련이었다. 그녀의 까만 머리는 가르마를 타 정갈하게 보였고, 갸름한 얼굴에는 두 눈이 유난히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124~127쪽 부분 발췌 -


남쪽 바다ㅅ가 어떤 날근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 그가 열 살이 못 되어 젊디젊은 그 아버지는 가슴을 앓아 죽고 그는 아름다운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섣달에도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이 날근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에서 그늘진 풀가티 살아왔습니다.

여기에서 박경련의 실명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바로 그녀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게다가 일찍 부친을 여윈 박경련의 가정사까지 소상하게 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에 대한 마음의 쏠림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128쪽 부분 발췌 -


한편 1935년 12월 23일, 조선권번의 기생 한 사람이 경성의 종로경찰서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인사동 253번지에 살고 있는 김진향(金眞香)이었는데, 요릿집에서 고달프게 번 돈 65원 32전을 내놓으며 불쌍한 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살을 에능 듯한 삭풍은 불어오건만 찬 구들장에 조석도 간 곳 없는 불쌍한 그들을 위하여 적은 돈이나마 이것을 선처해주시오.”

지금으로 치면 5백만원이 넘는 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이 미담은 다음 날 《동아일보》에 ‘기생의 갸륵한 마음’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다. 그녀가 훗날 백석의 연인이 될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153쪽 부분 발췌 -



어느 순간 저자는 백석을 따라 통영의 연모하던 여인의 집을 서성대기도 하고, 때로는 백석의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 동석한 참여자처럼 그들의 당시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해 내기도 한다. 그럴 때 독자는 1930년대의 경성으로, 오산과 평양의 뒷골목으로, 남해의 어느 어촌 마을로 가볍게 길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재미있는 평전을 읽어 본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내 방 온기를 느끼며 편안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나는 흑백 사진 속의 그 모던 보이와 함께 평안도 정주의 시장통을 걷고 있거나, 회식 모임 장소를 몰래 뒤따라가며 오늘 만날 여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설렘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하되, 대화와 생생한 상황 묘사, 심리의 추측 덕분에, 나는 90년 전 우리나라의 이곳 저곳을 느끼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자신이 닮고 싶고 존경하는 선배 시인에 대해 바칠 수 있는 가장 극진한 예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갖는 두 번째 미덕은 저자인 시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백석의 알려지지 않은 인생 역정을 서술하되, 그 빈틈을 백석의 시 구절로 기막히게 메워나간다는 점이다. 저자는 백석의 시를 단순히 분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대신 시 원문을 삶의 결정적 증거로 삼아 인물의 상황과 사건 속으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품 전체를 고스란히 접하게 되는 절묘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야가 없는 쓸쓸하고 허전한 함흥에서 백석은 겨울을 보냈다. 그는 산이 깊다는 함경도의 산골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국수집을 겸하는 산골의 여인숙으로 가서 새까맣게 때가 오른 목침을 베어보기도 했다(「산숙山宿」). 밤새 종이등에 불을 밝히고 감자떡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향악鄕樂」), 자정이 지나서 닭을 잡고 메밀국수를 눌리는 마을에서 여우가 우는 소리도 들었다(「야반夜半」). 그곳은 산을 넘어가면 평안도 땅이 보인다는(「백화白樺」) 첩첩산중이었다.


-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313쪽 부분 발췌 -


예를 들어, 자야가 없는 쓸쓸한 함흥에서 백석이 보낸 겨울을 서술하는 대목을 보자. 이러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백석이 지낸 함흥의 겨울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되고 자연스레 그 시들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진다. 저자 역시 백석 못지 않은 이야기시의 대가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90년대 대학 도서관에서 내가 보았던 논문 속의 지워진 기호들이, 시인인 저자의 노력을 통해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서사로 내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러한 상상력이 가장 과감하게 발휘되는 지점은, 볼 때마다 당사자인 시인만큼이나 안타까운 감정을 갖게 되는 「흰 바람벽이 있어」를 다루는 시선이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이 시를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백석의 삶에서 가장 아픈 공백을 메우는 심리적 단서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1년 4월 <문장> 폐간호에 실린,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전문이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저자는,


우리는 이 시를 통해 1941년 초반을 통과하고 있던 백석의 두뇌 속에 어떤 갈등과 고뇌와 현실인식이 들어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마치 백석의 자서전을 읽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연민의 시선에 독자는 무장해제 당하듯이 동참하게 되고, 나아가 독자는 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에게 연민을 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이렇게 시인과 독자 사이에 희한한 페이소스가 형성되는 작품이 우리 시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는 빼어난 명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여기에서 ‘높고’라는 형용사를 빼고 시를 읽으면 이 문장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처참하고 저급한 벌거숭이가 된다. ‘외롭고’와 ‘쓸쓸하니’라는 상투적인 시어 사이에 ‘높고’를 끼워넣음으로써 시는 갑자기 쓸쓸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시인의 위치를 드높은 정신의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488~489쪽 -


처럼 한 편의 시에 대한 분석에 그치지 않고 백석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자의식과 현실 인식을 길어 올리는 '심리적 자서전'으로 시를 읽어내기 때문이다.


1940년에 가족과 지인의 만류에도 만주로 떠난 백석에게, 1941년의 만주는 '생존'이라는 비루한 현실과 '시적 자존'이라는 고결한 이상이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던 공간이었다. 세관 관리나 측량 보조원으로 일했다는 건조한 공식 기록 몇 줄은 그 시절 백석이 느꼈을 모멸감과 고독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하지만, 그 ‘심리적 공간의 해석’에 저자는 당시에 발표된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활용하여, 당시 시인의 일상이 고단한 유랑이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태어난 존재가 겪어야 할 숙명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자신을 다독이며 또 하루를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그를 이해하게 해준다.


자서전이 아닌 이상, 그 인물의 심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기에, 공적인 기록이 놓쳐 버린 시인의 ‘진짜 시간’을 복원해 보려는 그의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넷.


아무리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려 애써도 현실은 늘 녹록하지 않다. 인간관계는 시 속의 세상만큼 순결하지도, 명쾌하지도 않으며 때로는 이해관계의 그물망 속에 엉켜 복잡한 피로감을 안겨주곤 한다.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교단이라는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온 나에게도, 세상은 여전히 풀기 힘든 난제처럼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몇 편의 시를 펼쳐 그 속에 잠시 머무르며 숨을 고르곤 한다. 그 중 내게 가장 많은 위안을 주는 시인 중 한 명은 바로 백석이다. 흰 눈이 펄펄 나리는 산골 속 오두막 같은 그의 시 속으로 잠시 걸어 들어간다. 그곳은 현실의 소음이 차단된, 오로지 시인의 정결한 고독만이 흐르는 일종의 '정신적 대피소'다. 지친 마음을 정화하고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은 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공을 들여 백석의 시 몇 편을 찾아보는 소중한 이유이다.


더 이상 백석은 내게 형식상의 특징과 효과를 찾아 헤매야 하는, 정답을 맞히기를 기다리는 텍스트가 아니다. 세상의 더러움과 무지에 상처 받을 때, 올바른 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에 의해 조롱 받을 때, 나는 기어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의 그 산골에 들어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결한 풍경 속에서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며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잠시나마 잊곤 한다. 시인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며’ 자신의 산골행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버리는 것’이라고 시 속에서 강변했지만, 난 이 시 한편 가슴에 새기고 잠시 그곳에 있다 다시 현실에 돌아와 버리는 현실의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 전문 -


또, 어느 땐가 삶이 유독 버거워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고 힘이 쭉 빠지는 날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씨 방의 문간방’에 세들어 살며 그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던 시인처럼, 나도 그 드물다는 나무를 생각하며 인생에서 미처 보지 못한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 보려 마음을 추슬러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1948, 부분 -


어떤 사람의 기구하다 못해 처연한 인생 역정을 들었을 때는, 돈 벌러 나간 지아비와 돌무덤에 묻은 딸아이를 생각하며 불교에 귀의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여승’의 한 구절을 읽어 보기도 하고, 쇠락한 도시의 풍광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가득한 날에는, 무너진 성터 앞 헐리다 남은 성문에 청배를 팔러 오는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선명히 그려지는 ‘정주성’을 펼쳐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 책 <백석 평전>을 처음 접했던 2020년 4월 어느 날, 나는 이런 기록을 남긴 적이 있다.


요새는 밤 11시가 되면 휴대폰으로 1935년의 함흥, 경성, 통영을 헤매고 다닌다. 그것도 백석이라는 시인의 뒷모습을 따라. 침대의 등쿠션에 기대 듣기 좋은 피아노 음악을 켜 놓고, 당시 모던 보이 백석을 따라 1930년대 중반 조선의 거리를 다니노라면, 인력거와 전차가 지나는 종로 거리도 떠오르고, 생선 말리는 바닷가 통영의 모습도 보이고, 추운 겨울 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그래서 진짜 여우가 나올 것만 같은 골짜기 오두막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90년 전의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 요새 나의 밤 11시는 참 좋다...


- fucco, 『책으로 만난 나의 세상』, 북메이크, 2023에서 발췌 -


전자책으로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을 아주 짧게 메모해 둔 기록으로, 분량과 상관없이 독서하는 사람의 흡족한 마음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문학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복원하는지, 그리고 시인의 진심이 어떻게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네 일상의 살갗에 닿는지를 나는 이 책을 통해 목격했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도서관에서 종이책으로 빌려 읽고, 다시 전자책으로 구매하여 위안과 회복이 필요한 순간에 펼쳐보는 이유이다.


요사이, 꽤나 많은 날들에 나는 11시의 방 안에서 '흰 바람벽'을 마주한다. 비릿한 토끼 고기의 추억과 정주성의 눈 내리는 풍경 사이를 소요하며, 내 마음의 뜰에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흰 바람벽엔 오늘 어떤 글자들이 지나가고 있는가.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장들이 부디 당신의 밤도 따스하게 데워주기를, 그래서 당신의 '밤 11시'도 참 좋은 시간이기를 바란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