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by 박세잎




주말에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습니다


평일동안 하기 싫은 출근을 억지로 해내느라 고생한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저를 보상해주려고 했습니다. 에너지 소비 없이 즉각적인 보상을 해주는 도파민에 절여지거나, '잘 먹었다'보다 '잘 떼웠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술도 왕왕 먹었습니다. 연애는 귀찮아졌고 인간관계는 환승연애와 솔로지옥과 같은 OTT프로그램으로 대신했습니다. 이렇게 주말내내 아무것도 안하고 제대로 쉰 것 같은데 이상하게 더욱 피곤합니다. 아니! 월요일 아침은 여전히 X같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저는 빛만이 존재할 것 같은 도시 뉴욕에서 빛을 쫓다 스스로를 태워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허먼 멜빌이 쓴『필경사 바틀비』입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가에서 '생기가 결여되어 무엇보다 활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던(13쪽)' 사무실에서 일의 방향감각을 찾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 바틀비에게서 20대의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사무실은 월가 00번지 위층에 있었다. 사무실의 한쪽 끝은 건물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관통하는 널찍한 수직공동 안쪽의 흰 벽을 마주 보고 있었다. 이 전망은 확실히 풍경화가 말하는 '생기'가 결여되어 있어 무엇보다 활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무실 반대쪽 끝에서 보이는 전망은 앞의 전망보다 더 나을 건 없더라도 적어도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쪽 방향의 창문을 내다보면 오래되고 늘 그늘이 져서 거무칙칙한 높다란 벽돌벽이 막힘없이 눈에 들어 오는데 (...) 13쪽



도시에 가면 뭐라도 될 것 같은 환상


저는 선택을 잘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하교길에 친구들이 뭐 먹을까라는 말에 아무거나라고 답했고 소개팅에서 산이 좋냐, 바다가 좋냐는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소개팅은 잘 안돼도 술 안중에 후룩 말아 먹으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인생에 중요한 것을 선택할 때 였습니다. 선택의 결과를 책임진다는 건 두려웠습니다. 실패자가 되면 어쩌지, 남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와 같은 이유들로요. 그래서 남들을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 공부를 했고, 모두 시골에서 도시로 떠날 때 함께 떠났습니다. 도시에 가면 뭐라도 될 것 같은 환상을 짐에 넣어서요.


제법 괜찮은 대학을 다녔고, 남들처럼 취업도 했습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사무실에 마련된 책상에 앉았습니다. 남들과 같은 사회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들뜬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기를, 목에 힘을 주고 눈을 크게 뜨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이 지나고 저는 어딘가 이상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아무도 제 이름을 부르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크게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걸어가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무슨 소리야? 자네 미쳣어? 내가 여기 이 서류를 비교하게 도와달란 말이야. 이거 받아"하고는 그 서류를 그를 향해 디밀었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31쪽


퇴근 후 곧장 침대에 웅크려 다음날이 오는 게 끔찍이도 싫어서 뜬 눈으로 잡히지 않을 밤을 붙잡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침이 온다는 사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해야하는 삶은 시지프스의 형벌같았습니다. 산꼭대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면 떨어지고, 다시 올리면 떨어지는. 영원히 되풀이 되는 이 삶이 계속 된다는 생각에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결국 회사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남들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벌면 되는 데, 왜 저는 안 될까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갓 지은 밥에 뜨끈한 시금치 된장국을 말아먹자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은 신기합니다. '여보세요'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나봅니다. 아버지가 너 밥은 못먹이며 살겠냐는 말에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기차를 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갓 지은 밥을 뜨끈한 시금치 된장국에 말아먹고 방청소를 했습니다. 구석에서 책 몇 권이 나왔습니다. 논어, 니체, 데미안... 논술입시 때 읽은 책입니다. 무엇을 얻고자 읽었던 때와 다르게 책속의 문장이 저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유독 와닿는 문장에서 와닿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저를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몇 백권의 책이 쌓였을 때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책을 골라오는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월요일을 싫어하자, 삶도 실어진 과거의 나를 위해, 그리고 지금의 당신을 위해서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보다, '잘 떼웠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배달음식만 시켜먹었습니다. 나를 위해, 진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월요일을 사랑하면 갓 지은 밥에 시금치 된장국 한 술 떠서 제대로 먹습니다. 봄이 오면 내이로 된장국을 끓이고, 여름이 오면 제철 과일을 찾아 먹을 겁니다. 나를 위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겁니다. 오늘은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를 읽으면서 왜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지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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