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길래

에리히프롬 사랑의기술

by 박세잎


1. 월요일이 싫어졌더니, 삶까지 싫어진 나는 월요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다녔고,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을 읽는다는 걸 알았다. 한 달에 한 번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읽은 책을 매개로 인터뷰를 하고 업로드를 하는데, 문득 나는 [사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인가라는 물음이 생겼다.


2. 몇 번의 연애는 대차게 실패했고, 월요일 또한 사랑하지 못해서 '일'에서 도망쳤던 내가 [사랑하는 법]을 말해도 되는 것인지 울적해졌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지 못하고, 잘못된 사랑을 말함으로써 타인의 월요일을 더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이 괴로우면, 삶이 얼마나 괴로워지는지 잘 알기에, 나는 사랑을 배워야 했다.


3. [사랑]이란 로맨스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망설임 없는 직선을 긋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요일을 사랑하지 못한 것도, [하고 싶은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로 삼을 만큼 잘하는 것도 없었고, 그저 부모님과 선생님, 타인이 요구하는 일에 응하듯 살면 삶이 살아졌다. 공부를 했고,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월요일이 싫어졌고, 삶이 싫어졌다. 일과 직선 같은 사랑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특별한 사람만 가능하다면, 나는 일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지? 그저 하기 싫은 일을 버텨내는 게 진짜 삶인가, 좌절했을 때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다. 프롬은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한 강렬한 감정이 아니며, 사랑은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4. 직선 같은 강렬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역사도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20세기 빅토리아시대가 끝나며 신분제가 폐지되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며 사랑은 인간의 감정을 따르는 '자유'를 얻었고, 낭만적 사랑으로 변화했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배우지 않아도도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게 중요하며, 그렇기에 사랑의 문제는 내가 아닌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건 나를 사랑해 줄 대상이 없어서라고 받아들인다. 20세기 사랑에 있어서 새로운 자유개념이 들어오고 낭만적 사랑으로 변화했다.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게 중요해졌고, 보통 자신과 교환 가능성 범위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느낌이 나타났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프롬, 쪽


5. 인간이 삶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실존조건은 타인과, 세계와 연결되어 '합일'을 이루는 것이고(그 누구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사랑'은 합일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직선 같은 사랑만 사랑이라고 말하게 된다면 공서적(公西赤) 합일이 이루어진다. 공서적 합일은 지금 외로우니깐, 고독하고 싶지 않으니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거나 일부가 되는 수동적인 합일방식이다. 생각해 보면 일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하고 싶은 일'은 없으니, '타인이 괜찮다고 인정해 줄 (나와 교환 가능성 범위에 있는) 일'에 집착했고, 더 많이 일했고, 일과 하나가 되려고 했고, 일이 없으면 내가 설명되지 않는 내가 되었고, 결국 월요일이 괴로워졌다. 일이 정말 싫었고, 그런 나 자신도 싫었다.


6. 프롬은 사랑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역설이 성립한다. 일과 나는 연결되면서도, 각자로써 존재해야 한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일을 할 때 성장과 행복에 대해 능동적으로 갈망해야 한다. 한눈에 반하는 성적인 끌림만을 가진(일의 경우, 자본적인 끌림) 사랑은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에만 머물러있을 뿐, 각자의 성장과 행복을 고양시키기 어렵다.


7. 각자 존재하면서,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서 [자기애]가 필요하다. 타인만 사랑하는 비이기주의와 나만 사랑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기 자신의 슬픔 -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에 대해 제대로 알고, 타인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롬은 사랑의 능력을 배우기 위한 불가결한 조건으로 첫째 홀로 있을 수 있는 것, 둘째 겸손과 객관성을 갖는 것을 내세운다. 그래서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을 읽는다. 책은 홀로 있게 하며, 자기 자신을 알게 해 줌으로써, 자기애를 갖게 한다.


8.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은 일과 직선 같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점을 찍고, 또 점을 찍고, 무수한 점을 찍으며 나아간다. 멀리서 보면 무수한 점들이 모여 직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점을 찍어보기 시작했다. 월요일을 사랑하기 위한 책 읽기를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고르고, 읽고, 소개하다 보니 월요일을 사랑하게 됐다. 삶을 사랑하게 됐다.


계속된 사랑의 실패로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괴로워진 사람에게 오늘은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서재》 인터뷰는 브런치에서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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