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재수'란 말에 놀라진 않으리라. 평범한 머리, 노 베이스 주제에 7개월 가지고 국가직을 바란 게 어리석었다. 이전 글에서도 은연중에 한번 더 할 거라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의지인 걸까, 아니면 집착인 걸까?) 여하튼 그렇게 됐다. 2022년까지 딱 한 번만 더하기로.
7, 8월 동안 뭘 했냐고 묻는다면 아주 놀지는 않았다. 스페인어 과외를 시작했고, 그동안 못 봤던 책을 읽으며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나머지 시간 동안은 장수생들의 사연을 찾아 읽었다. PSAT강사들과 전문강사를 만나 상담하고, 학원 투어를 했다. 와중에도 머릿속에선 '노력'과 '꿈'이란 단어가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5년이든 10년이든, 그게 대입이든 행정 고시든 간에 공부 꽤나 했다는 이들의 수기를 읽으며 특별한 판단이나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어떤 사연엔 눈물이 흘렀고, 또 어떤 사연엔 내 미래에 대한 예견인 것 같아 마음이 조여왔을 뿐. 공부하지 않은 두 달이건만 불면증은 여전했다. 언젠가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냐'던 댓글이 떠올랐다. '뭘 그런 걸 물어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도 묻고 싶은 말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쥐어짜 내 봐야 '먹고살기 위해'란 말 밖에 나오지 않아서. 나도 안다, 참으로 멍청한 대답이다.
하여간 걱정했던 PSAT는 앞으로도 초조함과 불안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사람은 하기 싫거나 본인이 못한다고 자각하는 일에 노력과 시간을 들일수록 절박해진다. 자꾸 본전 생각나고. 역설적이게도 절박할수록 못 보는 시험이 PSAT이다. 두 달 전 시험장을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1교시 징크스가 되살아난다. 선생들은 과거 청산을 해야 한다느니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느니 떠들지만, 과연 그런가? 나만큼 냉정하게 본인의 한계를 잘 아는 수험생이 어디 있다고. 나는 비관적일지언정 재능과 노력에 관한 판단에 꽤 정확한 편이다. 물론 공시판에서야, 노력으로 확률을 이길 수 있다고 믿기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운운하는 학생이 못마땅하겠지만.
그렇다고 지원 직렬에 엄청난 열정을 가졌나 하면, 수험생에겐 송구스럽지만, 아니올시다. 취준 전까지는 오히려 마뜩잖아했다. 일말의 환상을 가질만한 조직이 아니라고 아주 오래전에 결론 내렸거든. 늘 나가고 싶어 했고, 해외 거주 경험이 있으며, Cosmopolitan으로 살고자 한 입장에서 해당 부서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대학 시절 인턴이니 홍보대사니 이쪽 길만 열심히 파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뭐랄까... 복잡한 기분이었고. 물론 그들의 노력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과연 열정과 낙관만으로 그 분야가 나아지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이런, 위험한 발언은 여기까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이 하는 꼴을 보다 보면 회의감은 더 커진다. 사교다 협력이다 예쁘게 포장하지만 힘의 논리가 전부다. 그럼에도 이 일이 '요지경' 속 틈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라 받아친다면, '맞다.'라고 밖엔 할 말이 없다. 그저 꼬이고 게으른 소인의 부족이올시다. 진심으로.
며칠 동안 신림동 깊숙이와 광화문, 강남, 노량진 여러 곳을 쏘다녔다. 늦깎이로 대기업에 들어간 고시생,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나와 공시로 뛰어든 중년,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한다는 사무관까지. 날이 갈수록 합격이 어렵다는 뉴스에 아버지는 은근슬쩍 사기업도 시험 삼아 지원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내편이 아닌 시험, 내편이지만 언제까지고 서포트를 해줄 수는 없는 가족. 시국은 둘째치고 미래가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당장 굶어 죽을 정도로 암울하진 않다. 그저 기대되는 바가 없을 뿐이다. 10년, 1년 뒤는 고사하고 일주일 뒤를 그릴 수가 없다. 물 밖에 나와 숨을 헐떡이는 물고기처럼...
문득 지금까지의 공부인생에서 정말 겸손했던 적이 있나 싶다. 상위권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두꺼운 책을 팔에 끼고 다니면서 공부를 즐기는 척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시험이 곧 내 가치에 대한 증명이었고, 칭찬받고 싶단 이유로 주입식 공부를 향한 본심은 꾹꾹 눌러 담았다. 남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다면야 까짓 거. 20대 초 정신과를 들락거리고서야, 몸과 정신을 자해해가면서까지 합격할 가치가 있는 시험은 세상에 없다는 걸 배웠다. 있다고 생각한 내가 틀렸었다. 징크스를 깨는 건 좋아.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거 훌륭하지. 위험을 감수하는 거? 용감하네. 하지만 갖고 있는 재능과 자질을 깡그리 무시하고, 공부하다 조금만 벽에 부딪히면 자신을 밟고 두들겨 패는 건 '노력'이 아니다. 1차 시험 날, 고사 시간 내내 욕지기를 참다 화장실로 달려갔을 때, 지금까지 삼켜왔던 욕들이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 느껴지던 신맛은 '더러워서 더 이상 이딴 식으로는 못해먹겠다'는 염증에 찬 비명이었다. '붙고 싶어서 환장한 수험생들 안 보여? 넌 글렀어', '그런 정신머리로 공부가 되겠어'라는 비난. 기어코 SKY에 못 간 아쉬운 인간. 어렸을 적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어요'라고 단호히 대답하지 못한 엉터리. 졸업 후에도 백수인 패배자. 공시가 문제겠어, 공부할 때마다 들어온 이야기인걸. 자신을 비롯한, 날 아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입에서 나온 비수들. 만만한 게 자기 자신이지? 만만한 게 청춘이지?
더 이상 찍어 누를 '나'가 없다. 더 이상 지우고 괴롭힐 '나'가 얼마 남아있지 않다. 하라는 대로 해온 인생이었는데도 여기다. 그러니 오만하고 시니컬 한대로 할 거다. 나를 지킬 타이머와 울타리를 만들어서. 안되면 속상하고 안타깝기야 하겠지만 뭐, 생애 처음으로 간을 배 밖에 두고 공부하련다.